무엇을 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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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열 것인가?
  • 김학중 목사
  • 승인 2019.12.2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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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중 목사/꿈의교회

한 시대를 풍미하던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 얼마 전에 있었던 인공지능 ‘한돌’과의 대국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2000년 32연승을 달렸던 ‘불패소년’,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에 이어 약 6년간 세계 최강으로 군림했고, 인공지능 알파고에게 승리한 인류 유일의 바둑기사라는 명예도 얻었지만, 흘러가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세돌 9단은 그동안 대중들에게 거침없는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그것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없어요. 질 자신이요’라는 말이었다. 또 그는 그동안 감각적이고 거침없는 자신만의 바둑을 둔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모습을 한순간에 바꾸어준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2016년에 있었던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다섯 번 대국이었다. 결과에 상관없이 알파고를 분석하는 모습, 진지하게 복기하고, 진지하게 게임에 임하는 모습, 그리고 고심 끝에  ‘신의 한 수’라 불리는 ‘78수’를 내놓는 모습에서, 대중들은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이세돌 9단의 모습을 보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면에서, 그도 입을 열지 않고 오히려 귀를 열어서 상대를 분석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며칠 전에 있었던 그의 은퇴 대국 때도 드러났다. 인공지능 ‘한돌’에 맞서서 치열하게 싸웠지만, 180수 만에 불계패로 마지막 대국을 끝낸다.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려고 했지만,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알파고와의 대국 때와 마찬가지로, 진지한 표정으로 복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지막 대국이었다. 다시 경기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더 배울 것이 남은 아이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하나하나 복기했다. 이세돌 9단이 오랜 기간 최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처럼 입보다 귀를 열었기 때문이다.

겨울이 되니까 한파가 무섭다. 모든 게 ‘꽁꽁’ 얼어붙는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몸보다 마음이 얼어붙어서 좀처럼 녹아내리지 않는 것이다. 겨울 한파에 불어 닥치는 칼바람처럼 쌩한 마음이 상대방과 단절을 일으키고 굳이 부리지 말아야 할 고집까지 버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 이것에 자기 자신을, 그리고 보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우연히 TV프로그램에 나온 두 가게를 보았다. 둘 다 오랜 장사의 시간을 보냈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아서 고민인 집이었다. 이 때 소위 ‘요식업계의 마이다스의 손’이라 불리는 사람이 두 가게를 찾아가서 자신의 방법을 이야기하는데, 두 집의 반응이 서로 달랐다. 장사한 지 23년이 된 가게 사장은 자신이 했던 양념장을 버린다. 자신의 세월이 녹아있는 양념장이었을 텐데도, 오히려 더 성공을 거둔 사람의 조언을 듣고 과감하게 버린다. 그 결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던 완판을 몇 차례나 기록했고, 사장님은 눈물을 훔쳤다.

한편 장사한 지 14년 된 가게 사장님은 애써서 준 조언을 무시한다. 자신이 그렇게 고심하면서 만들었던 소스를 ‘맛없다’고 말하자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것이다. 그 결과 그 집의 장사는 달라지지 않았다. 수많은 재료비가 들었을 테고, 밤잠을 설쳐가면서 제대로 쉬는 날도 없이 매출을 올리기에 힘썼을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손님의 이목을 끌지 못하고 입맛을 당기지 못하는 현실은 똑같다.

귀를 열어서 누군가의 조언이나 쓴 소리를 태세 전환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내 입을 열어 내 생각만 말할 것인가? 그것은 본인에게 달려있다. 지금 내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버리지 못하면, 다른 새로운 것을 손에 쥘 수 없다. 인생이 그렇다. 각자의 자존심이 걸려 있고, 나름의 철학과 한평생이 담겨 있는 것도 안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한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열었는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열어서 새해를 맞을 것인가? 답은 주어졌다. 새해에는 귀를 여는 ‘옹고집 ver. 2’를 열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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