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100년 전 믿음의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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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100년 전 믿음의 사람들처럼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9.12.18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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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기획 - ‘그들이 꿈꾸었던 조국, 우리가 꿈꾸는 대한민국’ - 연중기획 결산 (상)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은 16명이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기독교인은 16명이었다.

2019년은 민족적 거사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는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본지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2월 한 달 동안 ‘3.1절 100주년 한국교회에 되묻다’ 기획시리즈에 이어 연중기획을 시작하면 기념 열기를 이어가고자 했다. 올 3.1절에 맞춰 남강 이승훈 선생부터 지난 12월 15일자 신문에서 손양원 목사까지 36명의 신앙선배들의 믿음과 구국의 생애를 밀도 있게 살펴보았다.

그들이 목숨까지 내어놓으며 꿈꾸었던 조국과 우리가 꿈꾸는 대한민국은 같은 것일까. 누군가는 일제의 무단통치 아래에서 복음과 조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도 했다. 때론 변절해 버리고 결국 매국의 길로 떠난 인물도 있었다. 현재 역사적 평가가 엇갈린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생애를 면면히 들여다보면 진짜가 무엇인지는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다. 

1.5% 교세에도 독립운동 앞장선 한국교회
우선 연중기획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인 16명에 초점을 두었다. 100년 전 민족대표 33인은 모두 종교인들로 구성됐다. 천도교는 15명, 불교는 2명이었다. 당대 가장 활발했던 천도교에 비해 1919년 당시 기독교 교세는 1.3~1.5%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참여 열기만큼은 전국에서 광범위하게 뜨거웠다. 일제는 그 만큼 심각하게 박해를 일삼았다.

1919년 3.1 만세시위 이후 6월 30일까지 전국에서 투옥된 9,458명 가운데 기독교인은 2,087명으로 전체 22%나 차지했다. 1919년 12월 말 투옥된 19,525명 중 기독교인은 3,373명이었다. 20만 명에 불과한 당시 기독교 교세를 생각하면 당대 신앙인들은 엄청난 일을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장로교 제8회 총회에서 보고된 집계자료를 보면, 사살과 타살된 교인은 52명, 체포된 신자는 134명 목사와 장로를 포함해 3,804명이나 됐다.  

100년 전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고백 아래에서 민족과 조국을 향한 사랑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무수히 많은 기독교인들은 순교적 각오를 하고 만세운동에 참여하며 해방된 조국을 꿈꾸었다. 

3.1 만세운동을 기독교 역할론에만 초점을 둔 것은 아니다. 종교계로 구성된 민족대표 33인이 독립선언문에서 서명하고 발표될 수 있었던 것은 종교 간 대화와 양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지만 3월 1일 이후 한반도 각처에서 만세시위가 확산되는 데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한 종교가 기독교였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가장 격렬하게 전개됐던 만세시위는 교회와 기독교 학교를 중심에 두고 진행됐다. 

숙명여대 이만열 명예교수는 “3.1운동 진행과정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이 단연 돋보였던 것은 교단이 조직화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며 “장로교가 총회와 노회, 시찰회 당회로 조직되고, 감리회가 연회와 지방회, 구역회로 연결된 조직망이 조직적인 3.1운동 전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민족의 위기 앞에 교파를 초월해 협력했던 신앙 선배들의 모습을 볼 때 현재 370여 교단으로 분열해 있는 지금 한국교회가 어디에서부터 변화해야 할지 배울 수 있었다. 

“100년 전 순수함과 열정, 헌신 회복해야”
일제 치하에서 전개된 독립운동에는 목회자 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적으로 애국운동을 하는 신앙인들이 많았다. 애국운동가를 배출하는 요람 같은 상동교회의 전덕기 목사, 비겁한 삶보다 우상숭배를 단호히 거절하고 순교의 길을 선택한 주기철 목사를 비롯해 신석구 목사, 김병조 목사, 양전백 목사, 오화영 목사, 손정도 목사 등 많은 목회자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우당 이회영 선생, 도산 안창호 선생, 월남 이상재 선생, 일제의 박해를 전 세계 고발한 스코필드 박사와 헐버트 선교사, 민족 지도자로서 역할을 했던 백범 김구 선생, 이승만 초대대통령, 몽양 여운형, 윤동주 시인 등 무수하게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신앙인이었다. 독립운동의 어머니 김마리아 여사, 무장독립 투쟁에 가담한 남자현 지사 등 존경할 만한 여성 신앙인들도 감동을 주었다. 

일제에서 해방된 지 75년 세월이 흘렀지만, 당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독립은 신기루 같은 것이었을지 모른다. 신앙을 가진 애국지사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를 조국의 독립을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주실 것이라고 믿고 꿈을 잃지 않았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행동했다. 

연세대학교 정종훈 교수는 “한국교회는 3.1운동 당시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가졌던 순수함과 열정, 헌신을 회복해야 한다. 그들은 천국에 가는 것만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작은 예수가 되는 자리까지 나가고자 했다”며 “지금의 한국교회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희생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배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특별히 우리 민족에게는 분단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남겨진 최대의 꿈으로 남아 있다. 바로 통일이다. 100년 전 신앙인들에게 도저히 이뤄지기 어려워보였던 꿈이 독립이었다면 우리에게 한반도 평화적 통일이 그런 것이다. 독립의 꿈이 이뤄졌던 것처럼 통일의 꿈도 이뤄질 것을 우리는 기대해야 할 것이다.
정종훈 교수는 “한국교회는 분단을 극복하고 생명평화통일을 증진하는 마중물이 되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꿈꾸어야 할 미래가 통일된 한반도에 있다”고 전했다. 

흔히 자신이 조국의 위기가 닥쳤을 때 목숨을 걸고 나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곤 한다.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그런 상황이 온다면 믿음의 절개를 지키고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질 믿음의 사람들은 분명 나타날 것이다. 그러한 신앙인들이 더 많아지는 세상과 조국을 우리는 꿈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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