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주권 의지해 ‘제비뽑기’로 후임 선출한 교회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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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주권 의지해 ‘제비뽑기’로 후임 선출한 교회공동체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9.10.22 0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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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교회, 지난 19일 공동의회 열어 후임 목회자 청빙결정

일 년 준비해 3명 최종 후보자 중 제비뽑기… “결과 순종”
영광교회가 지난 19일 공동의회를 열어 제비뽑기로 후임 목회자를 결정했다.
영광교회가 지난 19일 공동의회를 열어 제비뽑기로 후임 목회자를 결정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원로목사와 후임목사 갈등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갈등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세습을 정당화 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교회는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제비뽑기로 후임을 선출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19일 경기도 광명시 영광교회(담임:박광재 목사)는 일 년 동안 기도로 준비해온 후임목회자 청빙을 위해 공동의회를 개최했다. 선출방식은 제비뽑기. 후임 청빙을 제비뽑기로 진행한 경우는 얼마나 될까. 박광재 담임목사는 공식적인 차원에서는 아마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주일예배 후 진행된 공동의회를 위해 교인 중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시무장로는 청빙 후보자 세 명의 이름이 기록된 두루마리 종이를 각각 교인들에게 보여준 후 돌돌 말아 제비뽑기함에 넣었다. 교회가 늘 활용하고 있는 함이다. 결과를 확인하는 데 걸린 시간은 잠깐이었다. 박광재 목사는 자신이 확인하기 앞서 교인들에게 종이를 펼쳐보였다.

영광교회 박재광 목사가 제비뽑기함에서 후임 목회자 이름을 선택해 교인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하만규 목사’

교인들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마침내 영광교회 후임목회자가 선정되는 순간이었다.  예상치 못했다는 듯 일부 교인들은 놀라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정하며 전원 기립박수로 환영했다. 

이날 후임 목회자들을 청빙하는 중요한 순간을, 결단코 운에 맡기지는 않았을 터. 박 목사로부터 그간 어떤 절차가 진행됐는지 답을 듣고 이날 제비뽑기 청빙을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영광교회 박광재 목사는 한국교회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맨 앞에서 오랫동안 주창해온 홍보대사라고 할 수 있다. 2년 전 직선제로 바뀌었지만, 예장 합동총회는 17년 동안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운영했다. 그 배경에서 박광재 목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박 목사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제1회 총회장상 ‘밀알상’을 받기도 했다. 

영광교회에서는 ‘제비뽑기’가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의지하고자 하는 선언과 다짐 같은 것이었다. 

박 목사는 사도행전에서 ‘가룟 유다’를 대신해 ‘맛디아’가 제비를 뽑아 선출된 것처럼 가장 성경적인 방식이 제비뽑기라고 50년 목회사역 내내 교인들에게 이야기해왔다. 영광교회를 개척하고 40년 동안 교회 산하 부서 임원과 임직자를 선출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회나 부서에서 복수의 후보자를 추천하고 최종 선출은 제비뽑기로 진행됐다. 이날 자신의 후임을 결정할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광교회는 이미 일 년 전 후임목사 청빙공고를 냈고 74명의 지원자를 받았다. 당회에서 14명의 후보를 선발해 매주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었고, 예배 참석한 모든 세례교인들이 평가했다. 
다른 여러 요소들이 있지만 설교 비중은 100점 만점 중 70점으로 가장 높았다. 담임목사나 중직자가 개입할 여지없이 평가 결과만을 가지고 3명의 최종후보자를 선발했다. 이날 공동의회에서 하나님께 결과를 맡긴 것이다. 평가기준을 두고 내부 토론도 치열하게 진행됐다. 그저 운에 맡긴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준비한 시간이다.  

강단 앞에 늘 놓여있는 제비뽑기

“오늘 예배 전에 기도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삶과 사역의 현장에서 부족하지만 저를 붙잡아주신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할 수 있어서 그것이 감사하고 영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제비를 뽑지만 모든 것은 여호와에게 있는 말씀에 근거해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박광재 목사는 교인들에게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순종하자고 했다. 수원 온사랑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 중이던 하만규 목사는 청빙 소식을 유선으로 전해 들었다. 하 목사는 주일 오후 서둘러 영광교회를 찾아 박광재 목사를 만났다. 

이제 두 목회자는 동사목사로 일년 동안 사역하며 아름다운 이양을 준비할 계획이다. 박 목사는 당장 내년 1월 5일부터 사역의 90%를 넘길 계획이라고 했다. 그동안 비전센터 등을 건축하며 남아있던 대출금도 모두 상환해 후임의 부담을 줄여 두었다. 

놀라운 이야기는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박광재 목사가 내년 11월 위임투표를 하면서 자신의 원로목사 여부도 제비뽑기로 결론을 내겠다고 밝힌 것이다. 부채를 상환하며 현금자산이 없는 교회 사정을 고려해 전별금뿐 아니라 퇴직금 일체를 받지 않겠다고 사양한 상태이다.

“모두가 저처럼 하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 앞에 다 내려놓겠다는 의미입니다.” 박광재 목사에게 제비뽑기는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고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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