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 빈곤에 테러까지…스리랑카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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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성 빈곤에 테러까지…스리랑카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9.06.14 1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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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대신총회 김경성 선교사

부활절 대형 테러 이후 선교 사역에도 ‘빨간불’

지난 주 센터 재가동…전화위복 위한 후원 절실

▲ 스리랑카에서 사역중인 김경성 선교사.

부활절이던 지난 4월 21일 스리랑카에서 충격적인 뉴스가 전해졌다. 수도 콜롬보를 비롯한 여러 도시에 위치한 성당과 교회, 호텔에서 8차례 폭탄 테러가 다발적으로 발생했다. 이 사고로 최소 35개 나라에서 온 외국인과 3명의 경찰관을 포함한 290명이 사망하고 5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기독교와 상류층을 겨냥한 종교적 목적의 테러로 추정되며 수니파 극단주의세력인 IS가 테러의 배후를 자처하기도 했다.

테러가 발생했던 당일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대신총회가 파송한 김경성 선교사는 현장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지역에 있었다. 김 선교사는 이날 개신교인들의 부활절연합예배 행사에서 말씀을 전했다. 테러가 발생한 뒤 위기가 고조되면서 외교부의 권유에 따라 스리랑카를 떠나 한국에 머무르고 있다. 자칫하면 자신도 테러에 휘말릴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스스로의 안위보다 현지에 두고 온 센터와 아이들, 테러로 인해 위축되어 버린 선교의 기회에 대한 염려가 앞선다.

김 선교사는 스리랑카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역들을 소개하면서 그곳의 영혼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함께 기도해달라고 당부했다.

 

아버지 유골 팔아 떠난 선교

김 선교사가 스리랑카에 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젊은 시절 경찰 그는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하나님께 서원했던 것을 기억해 뒤늦게 신학을 했다. 목회자가 된 그의 관심은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에게 있었다. 특히 사회에서 낙오된 이들이야 말로 하나님이 자신을 사역자로 부르신 이유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는 발이 닿는 대로 사역을 했다. 열정이 넘치던 때였다. 서울역 근처에서 노숙자 사역을 오래 했고 안양교도소 소년 분류심사원에서 13~18세 청소년들을 맡아 복음을 전하기도 했다. 분당과 의왕에서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늘 찜찜함이 있었다. 그가 하나님께 서원했던 내용이 ‘목회’보다는 ‘선교’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선교로 몰고 가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교사 훈련을 받고 사역지를 달라고 기도했다. 중남미의 아이티에서 대형 지진이 발생했던 무렵이었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죽어가고 있었다. 김 선교사의 마음에 그들의 영혼이 들어왔다.

아내와 함께 아이티로 향했다. 뭐라도 자신이 할 일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떠났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교단에 아이티 구호를 위한 위원회까지 결성됐지만 정작 교단 선교사인 자신이 통로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꼈다. 현지에서 사역은커녕 체류하기에도 힘에 부쳤다. 그렇게 철수를 한 뒤 한참을 방황했다. 그동안 모아뒀던 돈도 아이티에서 다 써버린 상황. 마침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300여 만원이 수중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향한 곳이 스리랑카였다.

김 선교사는 “아이티를 나오면서 영혼들을 버리고 도망 나온 것 같은 마음에 우울증이 왔었다”며 “아버지의 유골을 팔아서 왔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 준비된 영혼을 붙여 주셨다. 남은 생애를 스리랑카의 영혼들을 위해 끝까지 헌신하고 싶다”고 말했다.

 

▲ 김 선교사는 대규모 테러가 발생했던 4월 21일 수도 콜롬보에서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메시지를 전했다.

위기의 스리랑카

국토는 한반도보다 작지만 2천만명 가량의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 스리랑카. 불교 신자가 인구의 70%가 넘는다. 나머지 약 30%에 무슬림과 힌두교, 기독교가 각각 12%, 10%, 6%로 뒤엉켜 살아가고 있다. 기독교인 중에서도 개신교는 전체의 2%도 채 되지 않는 그야말로 ‘소수’다. 다른 종교들 이상으로 박해가 심하다.

더 심각한 상황은 스리랑카에서 종교 간 갈등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 불과 10년 전까지 인종과 종교의 문제로 내전이 계속됐다. 무려 26년간 이어진 이 내전으로 나라는 성장 동력을 잃었고 국민들은 혼란에 빠졌다.

김 선교사는 “내전이 다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며 현지 상황을 전했다. 테러가 발생했던 당일만 해도 김 선교사는 폭탄이 터진 곳으로부터 불과 버스 2정거장 거리에 있었다. 테러 이후에는 국가의 행정 및 치안 기능이 마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고 대중교통도 운행을 멈췄다. 차가 없는 김 선교사는 센터에 갇혀 이틀을 굶어야 했다. 그는 “현재까지도 국가 비상사태가 이어지고 있다”며 “사태의 추이를 살피며 복귀 일정을 타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귀를 서두르는 까닭

그가 복귀를 서두르는 까닭은 자신이 가르쳐 온 아이들 때문이다. 그는 현지에 위치한 Tea AN(Teach All Nation의 약자) 이라는 이름의 센터에서 스리랑카의 어린이들에게 영어와 수학, 싱아어 등을 가르쳐 왔다. 기회가 되는대로 성경도 가르쳤다. 월요일마다 진행되는 성경공부 과정은 참석을 강요하거나 요란스럽게 홍보하지 않음에도 자발적인 참여가 이어졌다. “일반적인 공부를 하는 날보다 오히려 더 많은 아이들이 찾아오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선교가 제도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나라임에도 센터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고 성경도 비치하고 있다. 히잡을 쓰는 무슬림 학부모도, 불교도도 그가 목사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싶은 마음에 센터를 찾는다고. 김 선교사는 이같은 상황을 결코 간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복음으로 연결되도록 하고 있다. 인근의 건강한 현지교회와 관계를 맺고 센터의 아이들과 학부모 가운데 관심을 갖는 이들을 연결해 준 것이다. 직접 사역이 쉽지 않은 탓에 대안으로 마련한 방법이다. 본인은 한 달에 한 번 그곳에서 설교를 할 뿐 나머지는 현지인 목사에게 맡긴다.

스리랑카에 도착해 사역을 시작한 지 2년 6개월. 불교를 믿는 2가정과, 무슬림 1가정이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 한창 사역이 열매를 맺을 무렵 테러가 발생했다. 위험한 상황이지만 그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현장으로 복귀할 계획이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사고 이후에 우리 아이들(학생들)을 한 번도 못 만났다는 점입니다. 40~50명가량 되는데 다들 15세 미만의 초중생들입니다. 테러가 발생했던 당시는 우리 센터가 방학이던 때라 피해 상황을 파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원래 5월 22일부터 개학이 예정돼 있었지만 학교들도 휴교를 연장하는 상황이어서 저희도 방학이 길어졌고, 지난주에야 개학을 했습니다. 정상화가 되려면 제가 빨리 센터로 복귀해야 합니다. 영사관에서는 한인들에게 가급적 예배도 모이지 말고 영상으로 각자 가정에서 드리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서로를 자극할 수 있는 것들을 자제하라는 것이죠. 모든 것이 조심스럽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의지하며 나아갈 계획입니다. 스리랑카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 김 선교사가 사역중인 Tea AN센터의 아이들. 센터에서는 영어와 수학, 싱아어 뿐 아니라 기회가 되는대로 성경도 가르친다.

함께 동역해주세요

김 선교사는 앞으로도 교육을 통해 다음세대의 영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궁극적으로는 복음을 전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진행중인 Tea AN센터 사역이 중심이지만 새로운 사역의 통로도 개척하려고 한다. 최근에는 수도 콜롬보에 위치한 ‘세종학당’의 법인대표직을 맡기로 해 사역의 지평이 보다 넓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종학당은 한국어와 한국문화로 세계와 소통하는 기관이다. 스리랑카에서도 한국 취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다.

또 스리랑카의 신학교와 업무협약을 통해 신학생들과 함께 적극적인 복음 전도에도 나설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는 “전도 용품을 싣고 전국을 누비며 전도할 차량이 꼭 필요하다”면서 “450년 식민지배로 인한 만성 빈곤과 30년 가까이 이어진 내전, 최근의 테러와 쓰나미까지 … 스리랑카의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함께 동역해 달라”고 후원을 요청했다. 특히 함께 일할 후임 사역자가 발굴되도록 함께 기도해줄 것과 교회의 단기선교 팀의 방문 등 실질적인 사역의 지원이 일어나도록 관심을 가져줄 것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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