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이니 ‘호국’이니 하는 말이 ‘촌스럽게’ 느껴진다면
상태바
‘애국’이니 ‘호국’이니 하는 말이 ‘촌스럽게’ 느껴진다면
  • 손동준·정하라·한현구 기자
  • 승인 2019.06.04 16: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호국보훈의 달 특집 - ① 나에게 국가란

‘전쟁 발생 시 참전 의향’…젊은세대서 낮게 나타나
“이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쁘다”고 토로하는 젊은이들
“나라가 어려울수록 신앙인은 더욱 무릎으로 나가야”

▲ 호국보훈의 달이 올해도 찾아 왔다. 나라를 지킨 공훈에 보답하기 위해 1956년 ‘현충기념일’이 지정됐다. 이후 국가보훈처는 국민의 호국 및 보훈의식과 애국정신 함양을 위해 6월 한 달을 ‘호국보훈의 달’로 지키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은 어느 때보다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기에 알맞은 시간이다.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의 충성을 기념하는 현충일이 있고, 한국전쟁을 기념하는 6.25가 바로 이 ‘호국보훈의 달’ 안에 자리하고 있다. 

초등학생이던 시절을 돌아보면 해마다 이맘때면 나라 사랑 글쓰기와 포스터, 표어대회 등이 열렸고, 군인 아저씨들에게 손편지를 썼다. ‘나라를 지킨 공훈에 보답한다’는 호국보훈의 뜻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했지만, 이맘때면 태극기만 봐도 뭉클하고 애국가를 부를 때 힘이 잔뜩 들어가곤 했다.

6월이 찾아왔지만 ‘호국보훈의 달’이라는 기분은 갈수록 시들해짐을 느낀다. 미디어만 봐도 ‘애국’이니 ‘호국’이니 하는 말이 어딘가 모르게 촌스럽게 치부되는 경향이 감지된다. “나에게 국가가 해 준 것이 무엇이냐”고 항변하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발표한 ‘2017 나라 사랑 의식조사’(전국의 만 15세 이상 남녀 1000명 대상,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포인트) 결과에서도 이런 현상을 읽을 수 있다.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나라를 위해 싸울 의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응답이 74.1%,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6.6%로 나타났다. 긍정 비율을 보면 50대(83.44%)와 60대 이상(81.94%)이 높게 나타났지만 10대(65.76%)와 20대(70.44%), 30대(70.31%)에서는  전쟁발발 시 지원 의향이 낮게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묻는 말에서도 50대는 74.66%, 60대 이상은 78.22%의 긍정률을 보였지만 10대는 69.86%, 30대는 69.68%로 낮게 나왔고 20대는 가장 낮은 66.45%를 기록했다.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지, 특별히 기독교인에게 있어 ‘애국’은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봤다. 이번 호에서는 첫 번째 순서로 세대도, 성별도, 하는 일도 다른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나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들어봤다.
 

국가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

이제 갓 사회에 진출한 젊은이들에게 국가는 어떤 의미일까. 부산에서 직장생활 3년차를 보내고 있는 양인태 씨(30세)는 자신을 ‘애국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의무는 다했기 때문에 당당하다”고 말했다. 성실납세자인 데다 군대도 다녀왔기 때문이라는 것. 평소 흡연과 음주를 즐겨 남들보다 세금을 더 많이 냈을 것이라는 점도 우스갯소리로 전했다.

그는 “나라가 위기에 빠져도 스스로 희생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이 한 몸 건지기도 바쁠 것”이라는 입장이다. “막상 위기 상황이 닥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그런 생각할 여유가 없다”고 했다.

이 대답의 연장선상에서 양 씨는 “평소 나라와 민족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인생이 너무 팍팍하다”고 토로한 그는 “나도 그렇고 주변 친구들만 봐도 서른 살 청년이 살기 너무 힘든 세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먹고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나라에 대해 생각할 마음도 안 든다. 나라를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아직 사회에 발을 딛지 않은 학생들은 어떨까. 고등학교 3학년 정현석 군(대성고등학교)은 ‘국가’에 대해 “나를 지켜주고 만들어줘야 하는 울타리”라고 표현했다. 정 군은 그러나 오늘날의 대한민국에 대해 “그 역할이 잘 이뤄지지 않는 나라 같다”며 “특히 교육적인 측면에서 아이들이 생각하면서 자랄 수 있게 해주기보다는 어른들의 편의대로 정책을 펴나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입시 지옥’이라고도 불리는 한국의 교육상황을 돌아볼 때 정 군의 지적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정 군의 바람대로 ‘입시 위주’보다는 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키워나갈 수 있는 교육 현장의 개선이 시급하다.
 

나라가 있기에 내가 있다

그래도 국가의 존재로 인해 일상생활 속에서 안전함을 느낀다는 이들도 있었다. 경기도에서 3살 자녀를 키우고 있는 이성경 주부(35세)는 “우리나라 정도면 살기 좋은 편”이라며 “해외를 나가보면 그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평상시에 딱히 국가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다른 나라와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나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자각을 한다”고 밝혔다. 나라에 대해 고맙다고 밝힌 이 씨에게도 애국심을 위협하는 순간들이 있다.

“정치판이 이상하게 돌아갈 때, 부당함을 겪는 사람들이 많을 때 애국심에 금이 가는 느낌을 받아요. 특히 ‘태극기’를 볼 때 전에는 ‘독립운동’을 떠올리고 ‘자랑스러운’ 감정을 느꼈다면, 이제는 태극기 부대의 등장으로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는 학창시절 조회 시간을 떠올리면서 “선생님들께서 국기에 경례를 할 때 철저하게 감시하고 장난치는 아이들을 훈육하셨던 기억이 난다”며 “이 밖에도 애국심을 고취하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많았던 것 같다. 당시에는 귀찮기도 했지만, 개인의 국가관을 형성하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했다. 이 씨는 마지막으로 교과과목 가운데 ‘국사’ 교육의 강화가 필요하다면서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는 올바른 국가관을 심어줄 수 없다. 내 자녀에게도 우리 선조들의 역사를 잘 가르치고 싶다. 선배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있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현재 군 생활을 하는 9사단의 이상준 상병은 군인답게 “맡겨진 군 복무에 충실하게 임하는 것이 나라를 위한 충성”이라고 답했다. 그는 “입대 전에는 국가에 대한 특별한 생각이 없었다”며 “군에 온 뒤에 아무래도 바깥에 있을 때보다는 나라가 무엇인지, 애국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과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도 군인이 아니었다면 쉽게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라 위한 기도는 신앙인의 의무

한국에스더구국기도회에서 20년이 넘도록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 온 새문안교회 이은화 권사(83세)는 대한민국에 대한 높은 자부심을 나타냈다. 이 권사는 “나라란 내 삶의 터전이 되는 곳으로 우리나라는 깊은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름다운 이 나라를 오랫동안 보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살다 보니 나라에 위기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마다 어떻게 잘 대처하고 국민이 단합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역사를 잘 이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되기까지는 나라를 세운 건국이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았던 선조들이 계셨지요. 그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권사는 특히 ‘믿는 사람’으로서 나라에 대한 특별한 마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따라 우리나라가 잘 성장했고 세계적으로도 알려지는 민족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호국보훈의 달이 되면, 우리나라를 돌봐주신 하나님과 이렇게 나라의 위기마다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낍니다. 우리의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우리의 미래를 약속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가 20년이 넘도록 나라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리고 ‘분단’이라는 아픈 현실은 기도를 더욱 간절하게 만든다. 이 권사는 “신앙인으로서 한 나라의 분단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세워주셨고 복음을 주셨는데, 선조 때부터 같은 복음의 은혜로 자라난 북한 교회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북한의 평양이 성경의 옛 예루살렘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하루빨리 북한이 회복돼 남한과 북한이 통일되기를 소망한다. 남과 북이 같은 이념을 가지고 생명의 복음으로 통일된 나라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자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기도해야 할 일”라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