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도 흔적만 덩그러니… “스코틀랜드여 일어나라”
상태바
언약도 흔적만 덩그러니… “스코틀랜드여 일어나라”
  • 스코틀랜드=손동준 기자
  • 승인 2019.05.28 14: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스코틀랜드 순교 유적을 따라가다

죽음 무릅쓰고 신앙지켰던 장로교 발상지, 믿음의 역사 고스란히 간직
스트란라·에딘버러에서 팔려나간 교회들의 모습에 안타까운 탄식 일어

▲ 에딘버러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칼튼힐 언덕에서.

몸도 마음도 젖은 종이처럼 눅눅했던 때 스코틀랜드 땅을 밟았다. 그래서였을까. 스코틀랜드의 파란 하늘과 그곳에 가득했던 미세먼지 없는 건조하고 청정한 공기가 그 어느 때보다 큰 안도감과 활력을 불어넣었다. 


7박 8일은 길지 않았다. 8시간의 시차가 겨우 적응됐을 무렵 벌써 돌아갈 시간이 찾아왔다. 지난 13~19일 열린 2019년 총회 세계선교대회는 개최지가 스코틀랜드였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 의미가 남달랐다. 개신교, 특히 장로교의 역사를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이 땅에 살았던 언약도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신앙을 지켰다. 복음을 향한 그들의 열정이 바다 건너 조선 땅에까지 전해지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 선교사들이 세계 곳곳에서 지금처럼 복음을 전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대회 기간 선교사들은 스코틀랜드 남부와 중부 지역의 순교지를 탐방하며 언약도들의 흔적들을 직접 확인하고 돌아왔다. 이 여정을 되짚어보며 독자들께 소개한다. 
 

최초 복음 전래지와 수장터

첫 번째 탐방지였던 세인트 니니안의 동굴은 대회가 열린 지방 소도시 스트란라에서도 48km 가량 떨어진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었다. 여정을 떠난 15일은 일행 모두가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한 날이었다. 

세인트 니니안은 주후 432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로마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실존인물인지 여부는 명확하기 밝혀지지 않았으나 겔러웨이 지역을 중심으로 그가 남겼다는 유적지들이 다수 남아 있다.
그를 기념하기 위한 순례객들의 방문도 연중 꾸준히 이어진다고 한다. 세인트 니니안의 동굴은 바닷가 언덕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위 동굴이다. 버스에서 내려 20여분 가까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산책하듯 걷다보면 하얀 몽돌로 이뤄진 해변을 만날 수 있다.

동굴까지 결코 가볍지 않은 코스이기 때문에 걸을수록 마음 속에 동굴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그러나 한국의 환선굴이나 광명동굴 같은 거대한 동굴을 기대했다가는 실망하기 십상이다. 세인트 니니안이 교인들과 함께 일종의 수련회를 진행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는 이 곳은 그야말로 비를 피할만한 작은 공간에 불과하다. 동굴 벽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십자가 조형물이 부착돼 있고, 동굴 주변으로 나무로 만든 십자가들이 여럿 흩어져 있다. 

다시 한 시간여를 달려 위그타운교회에 도착했다. 이 곳은 1685년 언약도이던 두 명의 여인이 구교에 저항하다 숨진 장소다. 공교롭게도 마가렛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여인은 하나님만을 교회 주인으로 삼겠다는 언약도의 맹세를 지키려다 수장을 언도 받는다. 사형 집행 당일. 갯벌에 묶인 채 밀물이 차오르고, 주교는 지금이라도 언약을 취소한다면 살려주겠다며 제안한다. 하지만 두 명의 마가렛은 교회의 머리는 국왕이나 교황이 아닌 하나님임을 선포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지형이 변한 탓인지 그녀들이 죽음을 맞이했다는 갯벌에는 풀이 솟아나 있고, 나무 기둥 몇 개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이곳을 찾은 한국선교사 일행들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죽음을 불사한 선배들의 희생을 기리며 경건하게 기도를 드렸다. 
 

▲ 언약도들의 믿음을 볼 수 있는 지붕 없는 감옥.

에딘버러와 지붕 없는 감옥 

16일. 대회 일정에서 잠시 이탈해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로 향했다. 기차를 타고 네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에딘버러는 첫인상부터 오래된 유럽 도시의 중후한 풍모를 자랑했다. 곳곳에 자리한 유럽식 건축물과 저만치 멀리 보이는 에딘버러성의 위용. 성을 바라보며 언덕을 따라 걷다보니 에딘버러대학이 나온다. 무려 18명의 노벨수상자를 배출한 전통적인 명문이다. 

지난해부터 에딘버러대학에서 세계기독교를 공부하고 있는 서동준 강도사의 안내로 학교 도서관과 강의실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신학대학원에 속한 도서관임에도 규모가 상당했다. 고서를 비롯해 최근의 신학서적까지 잘 구비돼 있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학구열이 인상적이었다. 서 강도사의 경우만 해도 매일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도서관에 앉아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고 했다. 이곳을 거쳐간 한국 신학자들이 왜 그렇게 자부심을 나타냈는지 수긍이 가는 대목이었다.

서 강도사를 따라 학교 뒤편으로 나가는 길. 좁은 골목과 계단, 아치형 지붕을 지나는데 하늘 위로 뾰족하게 솟은 탑이 보인다. 십자가가 달려 있었을 탑 꼭대기에 지금은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다. 서 강도사에 따르면 이 건물은 1842년에 건축된 학교 소유의 교회였지만 수년 전 재정난으로 민간단체에 팔렸고 한다. 현재는 에딘버러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음악축제 ‘에딘버러 페스티벌’의 사무소인 ‘허브’로 사용중이다. 지금은 사무공간과 카페, 매표소가 들어서 축제와 관련된 여러 업무가 진행되고 있다. 

학교와 교회 사이로 난 좁은 길은 에딘버러성부터 시작되는 퀸즈로드다. 이 일대를 에딘버러 올드타운이라고 부른다. 퀸즈로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다 보면 양옆으로 존낙스가 시무했던 세인트 자일스교회를 비롯해 존낙스의 생가 등 기념비적인 장소들이 밀집해 있다.

에딘버러에서 절대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은 언약도들이 서약을 했던 그레이프라이스교회와 그 뒤에 자리한 ‘지붕 없는 감옥’이다. 이 곳에서 1,200명의 언약도들은 하나님과 민족 공동체와의 혼인서약이라 할 수 있는 국가언약을 체결했다. 국왕이나 교황이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주인이심을 선포한 것이다. 

국왕은 이들을 가두기 위해 높이 140cm의 얕은 돌담으로 감옥을 만들었다. 지붕도 없었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언약도들에게 담을 넘는 것은 신앙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언약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탈출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레이프라이스교회 뒷마당에 위치한 묘지에 묻혔다. 한참 동안 묘원를 거닐며 당시의 상황을 그려봤다. 나라면 어땠을까. 신앙을 위해 스스로 감옥에 갇히길 자청한 언약도들의 믿음에 마음이 절로 숙연해졌다.

▲ 김위식 선교사가 시무하는 스코틀랜드 스트란라 소재 홀리그라운드커뮤니치교회.

아름답지만 슬픈 

이번 대회가 열린 남부 스트란라 지방은 스코틀랜드 내에서도 특히 한적한 곳이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아일랜드와 마주보고 있는 이 곳은 10분이면 시내 중심가를 다 돌아볼 수 있을 만큼 작은 지방 소도시다. 

김위식 선교사는 2006년 10월부터 이곳에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동양인이라곤 김 선교사 가정과 새로 부임한 부목사 가정이 전부다. 매주 20명 가량의 현지인들이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린다. 대부분이 70대 이상 고령자들이다. 

1776년 지어진 이 교회는 과거 공동화로 인해 펍으로 팔릴 위기에 처한 것을 김 선교사가 구입하면서 교회로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전면에서 바라보면 작은 탑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건물은 좌우로 대칭을 이루는 오각형 모양을 띄고 있다. 2층의 좌석 배열이 인상적이다. 위에서 아래로 배치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곡선을 그리면서 예배당 전체를 감싼다. 의자마다 문이 달려 여닫을 수 있는 점이 흥미롭다. 1층에는 정면에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돼 있고 나선형 계단이 달린 2층 높이의 강대상이 놓여 있다. 과거 언약도들로 가득 찼을 예배당이 이제는 겨우 스무명 남짓 남았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 스코틀랜드의 평화로운 풍경. 여름이면 밤 10시가 넘도록 해가 지지 않는다.

수도 에딘버러와 달리 이 지역은 인종차별도 있다고 한다. 나이가 많거나 아주 적은 경우 이런 특징의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젊은이들은 갈수록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스코틀랜드에서 매주 교회를 출석하는 인구는 2%에 불과하다. 열매만을 생각한다면 선교사가 결코 즐겁게 일할 수 없는 환경이다. 그럼에도 세계 각지에서 온 선교사들은 스코틀랜드에서 진행되고 있는 홀리그라운드교회의 사역을 보며 “큰 자극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비슷한 모델을 유럽 곳곳에서 실행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사역하는 민경수 선교사에 따르면 영국의 한 교회는 얼마전 1파운드에 교회를 내놨다고 한다. 사역할 사람만 있다면 모든 것을 거저 넘기겠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사람이 없다. 교회를 지키고 있을 사람이 필요하다. 심겨진 씨앗이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의 열매를 맺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심겨지지 않고는 열매를 기대할 수 없다. 언약도들의 땅 스코틀랜드에 부흥의 불길이 다시 일어날 날을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