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도 다르지 않아요” 장애인 예배 동행하며 발견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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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도 다르지 않아요” 장애인 예배 동행하며 발견한 희망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9.04.23 15: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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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날 특집-뇌병변 1급 정석무 형제와 함께한 반나절

장애의 장벽 허문 기술… 문자 주고받으며 깊은 대화
많은 개선 이뤄졌지만 여전히 장애인 이동권은 ‘열악’
생각지 못한 섬김 분야 많다…교회의 섬세한 배려 필요

▲ 석무 형제(왼쪽)와 어머니 오순남 목사. 기자의 인사에 석무 형제는 환한 미소로 답했다.

외부신체기능 장애의 일종인 뇌병변. 뇌의 기질적 손상으로 인해 보행 또는 일상생활동작 등에 현저한 제약을 받는 중추신경장애를 총칭한다. 이 가운데서도 장애 등급이 가장 높은 1급은 독립적인 보행이 불가능하며 보행에 전적으로 타인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하다. 

처음 한국밀알선교단(단장:조병성 목사)에서 정석무 형제를 소개 받기 전까지 내가 알던 뇌병변에 대한 인식도 이 수준을 넘지 못했다. 얼마나 새로울 것이 있을까 생각했지만 막상 그를 만나기 전부터 내 선입견은 깨지기 시작했다. 
 

“질문은 지금 해주세요”

장애인의 날을 맞아 기획 기사를 쓰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장애인의 이동권’과 관련해 집에서부터 교회에 도착하기까지 험난한 여정을 소개하는 쪽으로 일단 갈피를 잡았다. 

평소 잘 아는 장애인 친구라도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기에 장애인 사역을 하는 한국밀알선교단의 도움을 받았다. 선교단에서 소개해준 사람은 38살 뇌병변 1급의 정석무 형제. 전화번호를 전달 받고 스마트폰에 저장하자 곧 메신저 친구 목록에 그의 이름이 뜬다. 

인사를 나누고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하는 과정까지 매끄럽게 흘러갔다. 석무 형제는 요즘 유행하는 이모티콘을 시기적절하게 사용하면서 필요한 정보들을 전달했다.
“그럼 12일에 뵙겠습니다”하고 대화를 마무리 하려는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저한테 궁금하신거 있으시면 지금 말씀 해주세요. 제가 말도 잘 못하고 타이핑도 발로 하는 거라 좀 느려서 당일에 하시려면 못할 듯…”

아차. 발로 타이핑을 치고 있다는 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워낙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서 석무 형제의 장애 정도에 대해 간과한 것이다.  
 

그저 미소로 밖에

약속한 12일 석무 형제가 사는 노량진으로 갔다. 이날은 석무 형제가 한국밀알선교단 강서지역 금요예배에 참석하는 날이었다. 예배 시작 시간은 2시였지만 석무형제는 11시에 집을 나선다고 했다. 왜일까. 휠체어를 끌고 가느라 오래 걸려서 일까.

속으로 추측해보면서 초인종을 누르자 석무 형제의 어머니 오순남 목사(믿음교회 시무, 68세)가 반기며 인사를 한다. 석무형제는 이미 씻고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 석무형제에게도 웃으며 인사를 했다. 

석무 형제는 대답 대신 미소로 가득 찬 얼굴을 내게 향해 보였다. 분명 만나서는 대화가 쉽지 않을 거라고 미리 언질을 줬건만… 뭔가 음성으로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을 타일렀다.

이때부터 대화 상대는 석무 형제보다 어머니 오 목사의 몫이었다. 그녀는 “하나님께서 석무를 통해서 나를 목회의 길로 인도하셨다”며 뒤늦게 목사가 된 사연을 털어 놓았다.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는 중에 오 목사의 전화벨이 울렸다. 석무 형제의 활동보조인 주영현 목사가 차를 가지고 아파트 1층에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 활동보조인 주영현 목사가 휠체어를 끌고 석무 형제와 함께 예배를 위해 집을 나서고 있다.

“겨울 사이 20킬로가 늘었어요”

활동보조인이 동행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의 차로 이동을 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직접 석무 형제의 수동 휠체어를 끌고 대중교통과 대중교통을 환승해가며 겪는 좌충우돌 고생기는 물거품이 됐다. 대신 새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졌다.

석무 형제와 활동보조인 주영현 목사의 동행은 올해로 5년째다. 목회 사역의 일환으로 장애인 활동보조를 하고 있다는 주 목사는 석무 형제를 번쩍 안아 올려 휠체어에 태웠다. 아파트 밖으로 나와 주 목사의 차로 석무 형제를 옮겨 태우던 주 목사는 “석무 몸무게가 최근 20킬로 늘었다”며 “잘 먹고 잘 소화한다는 뜻이어서 기분 좋은데 이렇게 들고 옮기려면 좀 무겁다”고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은 평소 문자 메시지로 소통을 한다. 정작 만나서는 기본적인 의사표현 외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다. 휴대용 발가락 키보드 같은 기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석무 형제와 주 목사는 장애인의 이동 환경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주 목사는 “우선 장애인들을 위해 마련된 장애인콜택시의 경우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장단거리 이동이 어렵고, 공공시설 가운데에도 여전히 문턱이 높은 경우가 많아 휠체어로는 이동이 어려운 때가 많다”고 말했다. 석무 형제는 “엘리베이터는 고사하고 경사로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곳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장애인 화장실이 있어도 매우 작거나 가끔 장애인 화장실을 창고로 쓰는 경우도 봤다며 한국교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 목동 지구촌교회에서 매주 금요일 드려지는 한국밀알선교단 금요예배. 매주 많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성도들이 이곳에 모여 함께 은혜를 나누고 있다.

세심한 섬김이 장벽을 허문다

이날 우리 일행은 예상보다 빠른 시간에 예배 장소인 목동지구촌교회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이지만 일찍 온 몇몇 사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 목사가 예배 준비를 위해 선교회 간사와 함께 기자재를 옮기러 간 사이 석무 형제는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인사를 건네는 동료 선교회 회원들이 있긴 했지만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웠다. 

곧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석무 형제 곁에는 역시 주 목사가 앉아 밥과 반찬, 물을 먹여준다. 석무 형제를 도우면서 본인의 식사까지 틈틈이 해결하는 것이 여간 오래 해본 솜씨가 아니다. 

과거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가 10년 전 뇌병변 장애를 앓게 됐다는 한 여자 집사님은 “이 곳에는 여러 장애 유형을 가진 분들이 계신다”며 “지적장애를 가진 분도 있고, 신체장애를 가진 분도 있다. 보통 신체가 자유로운 분들이 그렇지 않은 분들을 돕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큰 교회에는 장애인들이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식사를 떠먹여주거나 휠체어를 밀어주는 봉사 시스템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에서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 힘들다. 교회 크기에 상관없이 이런 세심한 섬김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식사가 끝난 뒤 회원들은 함께 모여 성경 통독 어플리케이션을 틀고 함께 말씀을 들었다. 이후 예배 시간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모여 찬양인도를 비롯한 ‘보통’의 예배를 드렸다. 조금 특별한 점이라면 석무 형제가 맡았던 기도 시간에 발견할 수 있었다. 그가 집에서 미리 발로 쳐서 작성한 기도문을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회중들에게 읽어준 것. 프로그래밍을 거친 기계 소리가 다소 어색하긴 했지만 타인의 도움 없이 그의 기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하고 오히려 은혜롭게 다가왔다.

한편 석무 형제는 지난해부터 숭실사이버대학교 ICT공학과에 진학해 늦깎이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삭막하고 차가운 IT가 아닌 행복하고 따뜻한 IT를 만들어 장애인들도 쉽게 이용하여 세상과 좀 더 쉽게 소통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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