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모든 걸 앗아간 화마(火魔)…남은 것 없어 눈앞이 ‘깜깜’
상태바
하룻밤에 모든 걸 앗아간 화마(火魔)…남은 것 없어 눈앞이 ‘깜깜’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9.04.16 17: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르포//특별재난지역, 강원도 산불 피해 현장을 가다

3일 만에 여의도 면적 6배 태운 산불, 교회 피해도 막심

피해 현장 속 빛난 한국교회 섬김…“예수 사랑 전해지길”

▲ 불길이 지나간 자리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생필품과 옷, 가구 할 것 없이 모두 잿더미로 변한다.

그곳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새까맣게 그을린 채 앙상한 골격만 남은 건물은 폭격을 맞은 것 마냥 처참했다. 맹렬한 불길에 풍성한 겉옷을 잃어버린 강원도의 숲은 벌거벗겨진 듯 추위에 떨고 있었다. 다행스레 불씨를 빗겨간 길가의 벚꽃나무 몇몇만이 그을린 나무와 묘한 대조를 이루며 고독하게 봄이 왔음을 알렸다.

지난 4일 강원도 고성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은 3일 만에 여의도 면적의 6배가 넘는 1757만㎡의 산림을 태우고 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휘몰아치는 강풍에 불씨가 옮겨 붙은 건물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교회도 불길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적지 않은 교회가 불타고 성도들은 예배드릴 장소를 잃었다. 지난 9일 아직 혼란이 가시지 않은 강원도 산불 피해 현장을 찾았다.

 

20년 땀 흘린 사역지, 하룻밤에 잿더미

▲ 이스라엘교회 앞 사택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타버렸다.

가까스로 불길은 잡혔지만 쓰라린 상처는 전혀 아물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차량이 화재 피해 지역에 멈춰 설 때마다 아직도 가시지 않은 매캐한 냄새가 풍겨왔다. 화마(火魔)라는 이름에 걸맞게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 더 가혹했다. 제대로 된 자재로 번듯이 지은 건물은 비교적 불길을 잘 버텨낸 반면 샌드위치 판넬로 지어진 가벼운 건물은 여지없이 타들어가 형체를 잃었다.

고성군 토성면 산자락 맑은 공기를 맘껏 마실 수 있던 이스라엘교회(담임:김미옥 목사)도 사택과 수양관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다. 그리 크진 않지만 아늑한 터전이던 교회 앞 사택은 원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앙상한 골격만이 남아 있었고 교회 건물도 전면이 그을려 수리가 불가피했다.

120평 규모로 마련돼 있던 12동의 수양관은 반파된 2동만을 남기고 모조리 불타 스러졌다. 그나마 형태만이라도 유지하고 있는 2개동 역시 다른 동과 보일러 등 기반시설을 공유하고 있었던 터라 전혀 사용할 수 없는 처지다. 김미옥 목사는 당시 급박했던 상황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했다.

“화재방송을 듣지도 못했어요. 사역을 마치고 사택에 들어와 잠시 숨을 돌리려는데 저 멀리 산에서 불이 번지는 걸 발견했죠. 거동이 불편한 언니와 함께 대피하느라 옷가지 하나 챙길 겨를도 없이 뛰쳐나왔습니다.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버리려고 마음먹었던 신발이 제 발에 신겨 있더군요.”

가까스로 몸은 건졌지만 사택과 수양관은 손 쓸 도리가 없었다. 김미옥 목사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사역한지도 벌써 20여년. 강산이 변해도 두 번은 변했을 시간을 함께해 온 사역 현장이 단 하루 만에 거짓말같이 사라져버렸다.

▲ 김미옥 목사가 전소된 사택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다.

지진 피해의 경우 건물이 완파되더라도 그나마 잔해 속 생필품 몇몇은 건질 수 있다. 하지만 화재 피해는 다르다. 불길이 쓸고 지나간 자리는 시꺼먼 잿더미 외에 무엇도 찾아볼 수 없다. 불이 붙는 소재의 옷과 가구, 차곡차곡 모아둔 책들은 죄다 한줌의 재로 변했다. 주방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공간에는 새까맣게 그을린 스테인리스 그릇들이 나뒹굴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들의 심경은 참담하다는 짧은 말로는 감히 다 표현하기 힘들 듯 싶었다.

교회와 사택, 그리고 수양관은 안타깝게도 화재보험조차 들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정부의 특별재난구역 지정으로 세대당 1,400만원 가량의 지원금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교회와 사택, 수양관이 같은 주소로 등록된 탓에 1세대 분량의 지원금밖에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12동의 수양관과 사택을 다시 세우고 예배당을 수리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다시 돌아와서 현장을 보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기분이었어요. 타버린 잿더미처럼 눈앞이 깜깜합니다. 한국교회의 기도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스라엘교회 바로 아래에 위치한 밀알교회(담임:한기흥 목사) 역시 노인요양시설을 겸하고 있던 예배당이 완전히 불타 버리는 피해를 입었다. 건물 뼈대조차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기 버거워 보이는 모습에서 화재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가늠해볼 수 있었다.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없었다. 당시 요양원에는 8명의 어르신들이 머물고 있었지만 한기흥 목사와 송순진 사모의 발 빠른 대처로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한기흥 목사는 어르신들이 다치지 않고 건물 밖으로 대피할 수 있었던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다.

“건물 주변의 숲에도 불이 붙어 조금만 대피가 늦었어도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모를 아찔한 상황이었어요. 지금은 다행히도 어르신들이 주변의 다른 요양원으로 인계돼 머물고 계십니다. 불타버린 건물을 보면 마음이 암담하지만 다친 사람 없이 지켜주셨다는 것이 무엇보다 감사합니다.”

한 목사 부부와 어르신들이 무사히 대피했다고는 해도 재만 남은 건물을 바라보면 마음이 갑갑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피해지역이 언제쯤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감조차 오지 않는 상황입니다. 좌절감에 힘들어하는 강원도 주민들이 다시 힘을 얻고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한기흥 목사가 전소된 밀알교회 앞에서 화재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한국교회

주민들이 모두 떠난 피해 지역엔 쓸쓸한 바람만이 빈자리를 채웠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주민들은 급하게 마련된 임시 대피소로 자리를 옮겼다. 머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도 그나마 다행이지만 학교 체육관에 텐트를 치고 수십, 수백 명이 화장실을 함께 쓰는 생활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전국 각지에서 강원도를 위한 따뜻한 마음이 모아지고 있다. 기업을 비롯해 배우와 운동선수 등 유명인사들도 기부에 참여하며 힘을 보탰다. 그리고 그 중심에 한국교회와 크리스천들도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임시 대피소가 마련된 고성군 토성면 천진초등학교에는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이 부스를 마련해 이재민들에게 생필품과 간식, 담요 등 구호물품을 나누는데 한창이었다. 지난 9일엔 서울에서 구호품을 가지고 찾았던 본부 봉사팀이 현지 교회에게 사역을 이양하고 강원도 현지 목회자들이 현장에서 이재민을 돌보고 있었다.

예장 합동 강동노회를 중심으로 태백, 영월, 동해 등 인근 지역에서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현장을 찾았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부스에서 이재민들에게 구호품을 나누던 태백장로교회 이강선 목사는 “여기 부스에 나온 목사님들 중에도 화재 피해를 입은 분들이 계신다. 하지만 더 큰 아픔을 겪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며 “상처 입은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소망을 얻고 힘을 얻길 기도한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부스 옆에서는 한국구세군이 마련한 사랑의 밥차가 이재민들의 허기를 채우고 있었다. 화재 발생 소식을 듣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달려온 한국구세군은 이재민들과 함께 불편을 감수하며 정성을 다해 섬기고 있었다.

한국구세군 사회복지부 행정실장 김노정 사관은 “이곳에 함께한 모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에 망설임 없이 달려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은 것이지만 우리를 통해 이재민들이 조금이라도 위로를 얻고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길 소망한다”고 전했다.

▲ 천진초등학교 앞에 마련된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부스에서 이재민들을 돕고 있는 강원지역 목회자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