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의 뿌리 신한청년당은 기독교적 민주국가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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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의 뿌리 신한청년당은 기독교적 민주국가 꿈꿨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9.03.2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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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 박명수 교수, 지난 27일 영익기념강좌서 연구 발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뿌리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망명정당인 신한청년당이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한 자주국가 건설에 힘썼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는 지난 27일 서울신대 우석기념관에서 ‘3.1운동과 기독교’를 주제로 제23회 영익기념강좌를 개최했다.

이날 현대기독교연구소장 박명수 교수는 ‘신한청년당의 형성과정과 기독교의 역할’에 대해 발제하면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의 뿌리가 되는 신한청년당은 기독 청년들을 중심으로 세워져 기독교 가치관을 바탕에 둔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꿈꿨다”고 발표했다.

신한청년당은 1918년 중국 상하이에서 여운형, 선우혁, 한진교, 장덕수, 김철, 조동호 등 6인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망명 정당이자 독립운동단체다.

이들은 대한독립·사회개량·세계대동 등 세 가지를 당의 강령으로 삼고 미국의 윌슨 대통령에게 독립청원서를 전달했으며 김규식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해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등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이런 활동을 바탕으로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에도 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동안 신한청년당의 형성과 활동에 대해서는 중요한 연구들이 있었지만 기독교 정신과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는 빈약한 실정이었다. 박명수 교수는 “지금까지는 신한청년당을 대종교 계열인 동제사와의 연속선상에서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신한청년당의 바탕에는 기독교가 있었다”며 “신한청년당의 발기인 6인이 기독교인이었고 이들의 배후에는 상해한인교회(당시 이름 상해선인교회)가 있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중국의 대표적 기독교대학인 금릉대학 출신들이 신한청년당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금릉대학 출신에는 신한청년당의 당수였던 여운형을 비롯해 초기 멤버로 활동했던 조동호, 서병호 등이 있다.

신한청년당의 기독교적 성향은 미국 우리슨 대통령에게 보내는 독립청원서에도 확인할 수 있다. 청원서를 보면 이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단순한 인간의 전쟁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으로 이해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미래를 위해 기독교가 중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대목에서 기독교적 가치관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박명수 교수는 “신한청년당은 기독교는 한국에 민주주의를 가져왔으며 국교와 같은 위치에 있다고 말하면서 기독교적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고자 했다”며 “그 생각과 정신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정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논찬을 맡은 오일환 교수(전 보훈교육연구원장)는 “지금의 역사교과서는 기독교와의 관련성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인들조차 한국 근현대사에 끼친 기독교의 역할에 대해 잘 모르는 실정”이라며 “박명수 교수의 연구는 기독교의 역할이 역사교과서에 당당히 반영되는 기회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뜻 깊고 귀중한 학술적 생산물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했다.

이날 강좌에서는 홍선표 교수(나라역사연구소장)의 ‘3.1운동에 대한 미국 언론의 보도’ 발제도 있었으며 논찬은 오영섭 교수(연세대 이승만연구원)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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