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품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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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품 없이도 행복할 수 있다면
  • 이수일 목사
  • 승인 2019.03.0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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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 목사/음성흰돌교회

어느 날, 체육행사에 참여한 어린 손자 녀석이 경품추첨 시간이 다가오자 내게 푸념처럼 쏟아낸 말이 있다. “할아버지, 난 지금까지 저런 것 당첨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할아버지도 그래요?” 

이 녀석의 나이가 만 7세, 쉽게 말해 인생 7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행운권 추첨에 당첨된 적이 없다며 자신의 생을 한탄하는 말이니 이 얼마나 박장대소할 일인가! 그야말로 한참을 웃어댔다. 

두 달 전쯤 교단이 주최하는 영성대회가 있었다. 매 시간 훌륭한 강사들의 다양한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틈나는 대로 보고 싶었던 그리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가깝게 있어도 딱히 교제할 틈이 없는 같은 노회 가족들과 시간가는 줄도 모르게 밤새 이야기꽃을 쏟아낼 수 있는 것은 덤이었다. 이런 큰 행사를 치루는 데 있어서 총회 임원들과 해당 실무자들께서 얼마나 수고가 많았을까! 그 많은 행사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애를 썼을까를 생각하니 새삼 가슴이 저민다. 지면을 빌려 깊은 영혼 속에서 길어낸 진심어린 사랑을 담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러나 옥에도 티가 있다는 말처럼 금번 행사에도 티가 있어서 안타까웠다. 아니 어쩌면 두어 달 동안 기를 쓰고 애를 쓰면서 심혈을 기울인 준비위원들의 수고와 행사의 가치가 쉽게 사라지는 건 아닌가하여 너무 속상했다. 목사들이라면 누구나 익히 경험하는 바이지만, 설교에 큰 은혜를 끼친 후, 그 다음 순서에서 설교의 감동이 한 순간에 날아간다면 그 속상함은 얼마나 큰지 모른다. 따라서 의미 있는 시간, 특히 설교가 끝난 후엔 그 감동을 보존하고 싶은 간절한 생각에 때론 기도의 시간을, 때론 묵상의 시간을 가지면서 성령의 역사와 그 감동이 주는 여운을 즐기고자 하는 것이다. 

애당초 영성대회와 경품추첨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차라리 동문행사, 혹은 체육대회 등의 친목행사라면 귀엽게 봐줄 수 있겠으나 영성대회와 경품추첨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굳이 비유를 든다면 상의는 양복을 걸친 사람이 하의는 내복만 입은 꼴과 같은 모양새다. 영성대회는 내용뿐 아니라 모양도 영성대회와 어울려야한다. 

행사를 준비하는 측에선 인원 동원이 초미의 관심인지라 아마 그 하나의 방편으로 나온 고육지책일 수 있겠으나 앞으로 이 점은 우리가 반드시 시정해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 총회가 재정이 많든 적든 교인들의 눈물과 땀이 서린 헌금으로 운영되는 곳이라면 사용하는 담당자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길 바라고, 참여하는 많은 목회자 역시 동일한 의미를 가슴에 담아서 피차의 협력으로 하나님의 선을 이루었으면 한다. 

아주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다른 행사는 몰라도 “영성대회”라면 한 끼 정도는 금식, 혹은 주먹밥으로 대신해서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 끼니를 잇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체휼해보고, 여기서 얻어진 재정은 미자립 교회나 어려운 농촌교회, 힘들게 공부하는 신학생들을 섬기는데 사용하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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