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하나님 사랑 노래로 전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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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하나님 사랑 노래로 전할래요”
  • 승인 2001.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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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고 위로를 받았으면 합니다. 아무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없던 나를 이만큼 세워주셨는데 하나님의 뜻만 따르면 어느 누구의 삶 속에도 불가능이란 없다는 믿음으로 말입니다.”찬양사역자 한수연(EMI)이 이야기하는 신앙관이다.
마라나타, 컨티네탈싱어즈, 박종호, 송정미, 소리엘 등 국내 유수의 CCM아티스트의 음반에 참여하며 실력을 인정받고 활발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는 그녀가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데는 남다른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알콜릭으로 완악했던 아버지, 네번의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된 어머니, 5살 때부터 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던 소녀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사는 줄 알고 아무런 불평없이 참담한 인생을 살았다. 가냘픈 체구에 청순한 외모. 해맑은 웃음을 가진 20대의 그녀에게 이렇게 상상도 할 수 없는 파란만장한 삶이 있었다면 누가 믿겠는가?

외동딸로 부모의 귀여움을 독차지해야 할 그녀였지만 현실은 너무도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를 따라 아프리카, 이란, 이탈리아, 미국, 한국 등 10개국이 넘는 나라를 돌아다녔고 가난했던 집안형편으로 인해 힘겨운 삶의 연속이었다. 가난의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거주하는 나라마다 특색있는 종교는 다 믿었고, 어떤 나라에서는 햄스터 피를 나누며 악마를 숭배하는 사탄종교를 믿기도 했다. 그러나 구속이 많고 배타적인 성향이 많다는 이유로 기독교는 거부했다. 왠지 그녀의 취향이 아닌 듯 싶었다.

13살이 되던 해부터는 정부의 허가를 받아 방과후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다. 일주일에 40시간. 친구들과 어울리며 한창 공부해야 할 꿈 많은 소녀는 냄새나는 식당과 담배연기 자욱한 술집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일을 해야 했다. 만나는 친구들도 그녀의 불행한 어린 시절에 한몫 했다. 흡사 히피족을 연상케 하는 옷차림에 마약, 술, 담배 등을 즐기며 밑바닥 인생을 즐겼다. 답답하고 힘든 삶 속에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낙이었다. 이처럼 평범치 않은 삶을 사는 그녀에게 꿈과 소망이 있었을까.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수차례 자살을 기도했다. 어머니의 병간호가 너무 힘들어 삶을 포기하려고 했으며 고된 일을 마치고 매일 12시 파김치가 돼서 집으로 향하면서 죽음을 생각했다. 13살 소녀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삶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고된 삶의 연속이었던 그녀에게 변화가 일어났던 건 정말 우연한 기회였다.

당시 그녀는 한국인 가정 지하실 방에 세를 살고 있었다. 어느날 주인집 여자는 막무가내로 그녀를 데리고 어디론가 갔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그녀는 교회증축 공사로 학교건물을 임대해 예배를 드리던 교회란 곳에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80여 명의 청소년들은 수련회를 마치고 마무리 기도회를 하던 중이었고 한 씨는 난생처음 교회란 곳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짧은 반바지에 삭발머리, 짙은 화장, 누가 봐도 교회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그녀였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찬양과 기도를 하며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 미친 사람들 다보겠네’라는 심정으로 교실을 나가고 싶었지만 집에 갈 차도 없었고 돈도 없어서 선뜻 나서지 못하고 미적미적하는 사이에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참동안 사람들을 지켜보던 그녀는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곳에 모여있는 모든 사람이 미치진 않았을테구, 저 사람들이 저토록 열성적인 건 무엇 때문일까?’ 이 사건으로 한 씨는 교회와 인연을 맺게 됐고 하나님은 절망 속에서 허우적대던 그녀를 붙들어 주시며 온전한 신앙인으로 세워주기 시작하셨다.

신앙을 갖게 된 그녀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반문했다. 학교생활, 직장, 신앙, 친구관계 등 그냥 일상생활 속의 너무도 많은 것들이 궁금해졌다. 생각과 환경의 변화 속에 하나님은 그녀를 변화시키셨고 교회밴드에서 드럼을 치며 60여 개의 주옥같은 곡들을 작곡할 정도의 음악적 소질을 키워주셨다.

그녀가 처음부터 노래에 실력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소질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새벽마다 기도하던 어느날. ‘하나님이 주신 삶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며 매달리며 헌신의 마음으로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찬양을 부르면서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무도 아름다운, 그리고 힘있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찬양사역자로서의 삶을 예고하며 영혼의 목소리를 주신 것이다.

한 씨는 그날부터 한달 동안 부흥회,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회, 금요철야 등 집회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열심을 다하는 그녀에게 하나님은 ‘한 달란트로 열 달란트를 만들라’며 더욱 독려하셨고 편협한 신앙을 벗어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해 철학, 신학, 윤리학 등을 배우면서 폭넓은 신앙관을 가질 수 있었다.

안정을 찾은 그녀는 노래연습, 일과 학업 등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이 주신 미래를 기다렸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 그녀는 찬양사역을 통해 많은 CCM가수들과 어깨를 견주며 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그녀는 하나님이 주신 귀한 삶을 노래를 통해 다시 살게 하셨다.

또한 신앙안에 바로선 그녀를 축복하신 하나님은 교회라면 진저리를 칠 정도로 반대를 하던 아버지도 10년만에 구원시켜 주셨고 미국에 남아있던 히피 친구들도 주님을 영접하게 해주셨다. 그녀 자신도 신앙을 떠나있는 자신의 삶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붙들어 주시고 있다. 그리고 외소한 몸짓에 걸맞지 않게 그녀의 노래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단순히 음에 맞춰 가사만 읍조리는 평범한 가수가 아닌 노래에 자신의 삶과 신앙을 실어 노래하는 특별한 가수이기 때문이다.

머지 않아 우리는 그녀를 가요계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처음 대중 앞에 나서기 전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는 물론 진실한 모습을 대중에게 솔직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자신 안의 하나님을 보여줌으로써 ‘예수님 믿으세요’라며 전도자로 나서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노래에서 하나님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녀에게는 꿈이 있다. 자신의 불행했던 과거를 아쉬워하며 소년소녀가장, 미혼모, 독거노인 등 사회로부터 소외받은 사람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들의 아픈 상처들을 싸매주며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는 것이 그녀의 소박한 꿈이다.

김광오기자(kimko@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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