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후 처음 밟은 북한땅 “고향집 오얏나무야,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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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후 처음 밟은 북한땅 “고향집 오얏나무야, 보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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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08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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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희 작가의 창간 31주년 기념 소설 ‘오얏나무는 살아 있을까?’

통일이 된 지 어느 덧 한 해가 지났다. 철이는 휴전선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부터, 북에 두고 온 아빠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설랬다. 하지만 간병인으로 일하는 엄마가 시간을 낼 수 없어 마음만 졸일 뿐이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대학생인 누나가 <통일 후의 대한민국의 비전>이라는 공모전 당선이 되었다. 장학금과 부상으로 ‘북으로 가는 열차’ 티켓을 받았다. 누나는 철이에게 고향에 같이 가자고 했다. 대학 포기하지 말고 공부하라는 조건으로 말이다. 

철이는 밤마다 고향 뒤뜰에 심어 놓은 *오얏나무 꿈을 꾸었다. 아버지와 함께 철이의 생일 기념으로 심은 나무다. 심은 지 얼마 안 되어 주먹만한 자두가 주렁주렁 달렸다. 철이는 시지만 달고 맛있는 자두를 따다 온 동네 친구들에게 나눠 주었다. 덕분에 친구들에게 인기 짱이었다. 철이가 아빠만큼이나 만나고 싶은 나무라 꿈에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한에 와 사귄 여자친구 유리에게 ‘북으로 가는 열차’를 타게 되었다는 말을 했다.
“어머, 나도 누나에게 같이 가자고 말해 줘. 경비는 엄마에게 말씀 드려서 타 낼게. 북한 땅은 어떻게 생겼을까? 네가 살던 집에도 가보고 싶어.”

유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집으로 달려 간 후, 금방 허락을 받았다.

드디어 떠나기로 한 여름 방학이 돌아왔다. 철이와 누나 그리고 유리는 방학 다음 날, 강릉행 버스를 탔다. 북으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서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차창 밖을 내다본다. 철이는 푸르른 논과 밭을 보니 고향이 더욱 그리웠다.

“철아, 너 강릉 가 봤어? 난 자주 가족과 함께 강릉 바닷가에 놀러 왔었어. 근데 이번에는 너랑 강릉에 오게 되었네. 특별한 열차를 타러 말이야.”

철이와 나란히 앉은 유리가 물었다. 표정만으로도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었다.

“아니 한 번도 없어. 서울을 떠나 본 적조차 없으니까. 꿈만 같아!”

이름만 불러도 가슴이 뛰는 너와 함께여서 더 좋다는 말은 아꼈다. 말을 뱉는 순간, 진심이 날아갈까 두려웠다.

누나는 고속버스에서 내려 기차역까지 가는 내내 말이 없다. 긴장하면 말을 하지 않는 습관이 도진 것 같다. 철이는 유리의 손을 잡고, 누나의 눈치를 보며 뒤 따랐다. 강릉 역사 안은 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색색의 등산복을 입은 젊은이들도 눈에 띄지만, 대부분은 나이 든 분들이었다. 모두 고향을 향해 가는지 들떠 보였다. 사람들의 열기로 역사 안은 에어컨을 켜 놓았어도 찜통이다.

모퉁이에 가방을 놓고 열차 시간을 확인한 뒤에야 누나의 얼굴이 펴졌다. 

“물 좀 사 갖고 올게! 간식은 뭐 살까?”

누나가 매점을 가리키며 물었다. 

“언니, 물만 사세요. 우리 엄마가 과자며 과일이랑 한 보따리 싸 주셨어요. 언니에게 고맙다고요.”

유리가 생글거리며 가방을 열어 보였다. 작은 여행 가방이 먹을거리로 꽉 찼다. 과자는 물론 마른 과일 봉지며 사탕 등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김이며 마른 반찬과 소시지까지 반찬거리가 잔뜩이었다. 한 마디로 작은 슈퍼 같았다.

“와! 너 집 나왔니? 어마어마하게 싸 주셨네!”

철이가 큰 목소리로 외치자, 사람들이 열어 놓은 가방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누나는 가방 안의 물건을 살펴본 뒤, 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먹거리들. 우리 고향 동무들에게 나눠 줘도 되지? 엄마께 정말 고맙다고 전해 줘.”

누나는 복사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유리는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지, 가방에서 과자 봉지를 뜯어 언니에게 주었다. 

“우리 엄마가 정말 고맙다고 마구 싸는 거예요. 실은 엄마도 북한에 가 보고 싶대요.”

“엄마도 가시면 되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기차 탈 수 있는데…….뭐.”
“그래도 언니를 따라 가면, 가이드가 되잖아요.”

유리의 말에 누나는 어깨를 으쓱 한 뒤, 뭔가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나도 과자 좀 더 사야겠다. 나눠 주다 보면 부족할 수도 있으니까!”

누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매점을 향해 달렸다.

“너희 누나 똑똑한 줄만 알았는데, 굉장히 착하기도 하네.”
유리가 철이의 눈을 바라보며 농담처럼 말했다. 

“나한테는 잔소리쟁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천사처럼 구는 게 누나의 특징이야.”
“ 내 가방까지 끌고 플랫폼으로 나가. 곧 기차 올 거야.”

매점 앞에서 양 손에 검은 봉지를 든 채, 누나가 소리를 질렀다.

삼삼오오 모여 떠들던 사람들도 플랫 홈으로 나갔다. 며칠 째 계속 된 폭염으로 기찻길 옆 화단에 심은 봉숭아꽃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철도선이 녹아내릴까 두려울 정도로 여름 햇살이 뜨거웠다.

치이칙, 칙칙 폭폭. 빠아앙-
드디어 기적 소리와 함께 열차가 다가왔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기차에 올랐다. 철이는 넋을 놓고 열차에 그려진 그림과 글을 살폈다.
<부산에서 블라디보스톡까지> <고향으로 가는 열차>라는 문구와 함께 통일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지도 안에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이 빼곡히 그려진 것을 보니, 뭉클했다. 

"진짜, 고향에 가는구나! “
누나와 유리가 먼저 차에 올라 자리를 잡은 뒤, 소리쳤다.

“뭐해? 안 갈 거야?”

다행히 문이 가까운 자리라 깊이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실내에는 에어컨을 세게 틀었는지, 한기가 들 정도였다. 

“침대 열차네. 이 기차 타고 러시아까지 가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우리도 대학 가면 꼭 블라디보스톡까지 가자. 혁아!”

유리가 소풍 나온 것처럼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철이는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누나가 철이와 유리를 보며 귀엽다는 듯 씨익, 웃었다.

옆 좌석인 누나 옆에는 아주머니가 앉아 두리번거렸다. 짐을 모두 올린 뒤, 자리에 앉으려는 철이에게 유리가 상기된 목소리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얼떨결에 손뼉을 치고 앉는데, 아주머니가 떡을 건넸다.

“출출한데 가래떡 하나 줄까? 우리 영감이 좋아하던 떡이라 일부러 맞췄어. 가방이 무거워서 쬐금만 가져 왔지. 쫀득쫀득하고 맛있어.”

아주머니는 누나 따로, 유리 따로, 철이 따로 손에 하얀 가래떡을 쥐어 주었다. 유리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에도 살찐다고 탄수화물은 잘 안 먹는 편이라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철이는 아주머니가 눈치 채기 전에 유리의 떡까지 챙겼다. 철이도 떡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국경선 일대에서 꽃제비 생활을 할 때, 상한 떡을 먹고 고생 한 후론, 떡이 싫었다. 누나도 뜻하지 않은 떡을 받아 든 채, 멍 하니 앉아 있었다.

“가래떡 싫어하나 보네들……. 얼마나 쫀득하고 맛있는데…… 옛날에는 명절에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어. 우리 어머니는 밤새 방앗간에서 기다렸다 가래떡을 빼 오시곤 했지……. 우리 영감도 그랬어.”

아주머니의 눈가가 젖어 오는 것 같았다. 누나가 아주머니를 달래려는 듯 가래떡을 한 입 먹으며 물었다.

“어디 가세요? 저희는 청진에 가요. 어릴 때 살던 곳인데……. 아빠 소식을 알 수 있을까 해서요.”

누나의 말에 철이는 속으로 생각했다.‘아빠와 함께 심은 오얏나무가 너무 보고 싶어서요.’라고.

“어머나. 여기서 고향 사람을 만나네. 반갑구먼. 그런데, 어린 나이에 강을 건넜겠군. 젊은 나이에 서울서 고향 찾는 다는 걸 보면……. 난 서울에 온 지 10년이 되었고, 두 아들 모두 브로커 통해서 남한으로 데리고 왔지. 그런데 영감은 남한에 와 보지도 못하고 죽었어. 마누라와 자식 없이 혼자 병으로 죽으며 얼마나 애통했을꼬. 통일 되자마자 가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 땜에 이제야 남편 보러 가는 거야.”

아주머니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쳤다. 누나는 조용히 아주머니의 손을 잡아주었다.  

“북한이 고향인 사람들이 열차를 많이 탄 것 같네…….남자 친구 따라 열차를 탄 사람은 나 밖에 없나 봐. 새벽에 나왔더니 피곤하다.”

유리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한 정거장 정도 지나자, 유리는 곯아 떨어졌다. 잠든 유리의 얼굴을 보자 철이는 왠지 섭섭했다. 

‘역시 유리는 고향을 찾는 나와는 다르구나. 난, 유리랑 기차 안에서 간식도 나눠 먹고, 창밖의 풍경도 같이 보고 싶었는데…….’

“그나저나 고향에 갔다가 봉변당하는 건 아닌지 몰라. 날 보면, ‘배신자’ 라고 돌을 던질 까봐…… 걱정하느라…… 밤새 잠을 못 잤어. 그래도 남편 뼛가루가 묻힌 땅에 가 보고 싶어…….”

아주머니는 남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통일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고향 분들도 강을 건널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이해해 주지 않을까요?”

누나는 그러길 바란다는 투로 아주머니를 위로했다. 

그 때였다. 누나의 뒷자리에 앉았던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 냅다 고함을 질렀다.

“배신자? 우리가 배신자라고? 우린들 태어난 땅을 등지고……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강을 건너고 싶었겠어? 고향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으니 떠난 걸……. 이제 와 돌을 던지면…… 안 되지. 암…… 아주머니. 걱정 마시고 당당하 고향 땅 밟으시라요.”

술이 취했나 싶어 살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아저씨의 고함 소리에 열차 안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라 할 말이 많은 듯싶었다.   
“왜 이렇게 시끄러워? 다 왔어?”

잠자던 유리가 시끄러운지 눈을 뜨며 주위를 살폈다. 

“거의 다 왔어. 넌 저 사람들 마음 이해 못할 거야. 고향을 떠난 본 적이 없으니까.”

“어머나. 무슨 말을 그리 섭하게 해? 나 혼자 잤다고 삐쳤어? 싸나이가 그런 걸로 속 좁게 구냐. 얼굴 펴!”

철이는 종알거리는 모습이 귀여운 유리 앞에서는 절대로 화를 낼 수 없었다. 
얼마 가지 않아 ‘청진’ 역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나왔다. 누나와 아주머니는 어느 새 가방을 들고 내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드디어 고향에 왔네…….”

아주머니가 감격스러운 듯,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에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던 누나도 흥분을 감추지 못해, 가방을 들었다놨다를 반복했다. 유리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여기저기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철이는 강릉에서 기차를 탈 때보다 훨씬 더 가슴이 뛰었다. 

“아빠, 꼭 만나요. 오얏나무야, 보고 싶다.”

철이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향해 외쳤다.                          <끝>

* 오얏나무 : 자두나무

박경희 작가는 1960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자연에서 뛰어놀던 힘으로 글을 쓰고 있다. 20여 년간 라디오 방송에서 구성작가 일을 했다. 2006년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의‘한국방송라디오 부문 작가상’을 수상했다.

방송작가 생활을 하면서도 창작에 뜻을 두어 2002년도에 동서커피문학상 소설부문에 당선되었고 2004년도에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사루비아’로 등단했다. 현재, 탈북대안학교인 ‘하늘꿈 학교’에서 ‘책으로 만나는 인문학’수업을 하고, 통일부 주최 ‘남북 청년 창작 교실’ 지도 교수로, 남산도서관과 강동도서관에서 ‘청소년 문학교실’ 청소년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 밖에 전국 중고등학교 저자 간담회를 통해 독자와 소통하고 있다. 남산도서관 주최 ‘찾아가는 문학수업’으로 공릉중학교에서 강의 등을 하고 있다.

부산협성문화재단‘책만들어 주기 프로젝트’ 심사위원이며. 부산협성문화재단 전국 독후감대회 심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부산서부영재교육원 ‘작가와의 문학 수업’을 2년 째 진행 중이다. 서울 YMCA 청소년 문학상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한국어린이책작가연대 회원이며 방송작가 경력 20년 차다.

지은 책으로는 장편소설 <난민소녀 리도희>, 청소년 소설집 <류명성통일빵집>, 감성에세이 <여자나이 오십, 봄은 끝나지 않았다> 등 다수의 책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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