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해년(己亥年)에, 살 좀 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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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己亥年)에, 살 좀 뺍시다”
  • 강석찬 목사
  • 승인 2019.01.23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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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기미년(己未年) 3월 1일 독립선언 100주년의 해이다. 3.1정신은 헌법의 전문에도 기록된 우리 민족과 나라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운동이다. 그 당시 우리나라 국민이 2,400만 명이었다. 기독교인은 20만 명이었다. 전체 국민의 1%도 안 되었다. 그러나 민족사적 운동에 기독교인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는 것 외에도, 교회는 만세운동에 앞장을 섰고, 독립군 재정적지원에 적극적이었다. 

수많은 성직자와 신도들이 투옥당하며 고난을 겪었지만, 나라와 민족 사랑을 믿음의 사명으로 여기어 해방의 날까지 멈추지 않았다. 당시 성직자들은 한결같이 가난했다. 성 프란시스의 청빈(淸貧)을 몸으로 실천했다. 교회도 가난했지만 절약하면서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 그 결과 교회와 신도들, 그리고 성직자들은 세상으로부터 존경받았다. 저절로 복음은 세상 속에서 빛을 발했다. 교회에서 어두운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빛을 발견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났다. 국민은 5,000만 명이다. 기독교인의 수는 1,200만 명이 넘어선 때도 있었지만, 현재 가나안 교인의 증가로 800만 명이라는 설도 있고, 1,000만 명이라는 통계도 있다. 국민의 약20%가 기독교인이라는 통계이다. 숫자로 보면 정말 100년 사이에 크게 성장했다. 국민의 1%도 안 되었었는데, 20%를 넘나들고 있으니 소위 성공했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이렇게 되었다고 믿고, 선전한다. 그러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영향력도 20% 증가하였을까? 비대해진 교세처럼, 나라와 민족 앞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커졌을까? 일제의 탄압도 없는데, 민주주의 국가를 이룬 지금, 시련과 고난을 주는 외압은 사라졌는데, 3.1운동 당시에 가졌던 지도력이 더 발전했을까? “그렇다.”라고 인정할 국민은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불행하게도 “아니!”라고 부정하는 소리와 비난의 소리가 훨씬 더 클 것이다. 오히려 혐오집단이 되고, 세상에 악영향을 미치는 종교라고 비판받게 되었다. 세상에 대하여 한 소리 내어 보면, 금방 “너나 잘해라.”는 반응이 망치나 화살이 되어, 부끄러움과 창피만 당하는 오늘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사람의 몸으로 비유한다면 복부비만이다. 비개덩어리라고 해도 과한 비난이 아니다. 교회는 쌓아두면 주님의 교회가 아니다. 어떻게 교회의 예산을 저축할 정도로 남길 수 있나? 나누라고 바친 헌금을 창고 속에 쌓아두는 것은 ‘어리석은 부자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와 같은데도, 게걸스러운 탐욕의 죄를 쌓고 있다. 넘치고 넘치는데도 더 소유하려고 추한 욕심의 유혹에 넘어간 교회들도 많다. 비만교회는 걷지를 못해 가난한 자를 돌보는 그곳까지 가질 못한다. 몸의 봉사는 사라지고, 제 교회 살림 풍족하게 살고 남는 헌금 찔끔 생색내기로 이곳저곳 선교비로 송금하고는 거만을 떨기도 한다.

사람의 몸의 비만은 만병의 원인이다. 특히 복부비만은 온갖 성인병의 출발점이라고 한다. 왜 비만이 되는가? 먹은 것보다 몸에 남기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쌓아두면 그것이 썩고, 부패한 것에서 독소를 뿜어대어 생명을 갉아먹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 생명의 존재인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부의 축적은 교회를, 성직자를 타락하게 한다. 

새해에는 살 좀 빼자. 가난해 지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주님의 교회를 이루어, 잃어버린 100년 전의 세상으로부터의 존경을 회복하는 한 해를 만들자.

예따람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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