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목사가 “헌금내면 복받는다” 설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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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목사가 “헌금내면 복받는다” 설교한다면?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8.11.13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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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미래를 말하다(38) - 세속화된 교회의 미래

“대기업이 된 교회”…한국교회의 가장 큰 과제 ‘세속화’

성장주의·세속화 지속된다면 위기…거룩한 교회 회복해야

“값싼 은혜는 우리 교회의 치명적인 적이다. 오늘 우리의 싸움은 값비싼 은혜를 얻기 위한 싸움이다. 값싼 은혜는 교회의 무진장한 창고에서 생각도 없이, 끝도 없이 경박한 손으로 털어내는 은혜이다. 싸구려 상품 같은 은혜이며 싸구려 죄의 용서, 싸구려 위로, 싸구려 성만찬이다.”

히틀러 나치 정권에 적극 저항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의 목회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자신의 책 ‘나를 따르라’에서 교회 안에 만연한 ‘값싼 은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값싼 은혜란 ‘복음의 진리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 없이 그저 공장에서 찍어내듯 가볍게 뿌려지는 은혜’다. ‘회개 없이도 죄를 용서하는 설교요, 공동체 훈련도 없이 베푸는 세례요, 죄의 고백도 없이 참여하는 성만찬이요, 인격적인 참회 없는 면죄의 확인’이다.

값싼 은혜는 많은 성도들에게 다소 생소한 개념일지 모른다. 하지만 1900년대 초반 독일교회를 바라본 한 목회자의 치열한 고민은 21세기 한국교회에 적용해도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저자와 저작 연도를 가린 후 한국교회를 향해 쓴 책이라고 소개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기독교는 처음으로 불교를 제치고 제1 종교의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상 처음으로 무종교 인구가 종교 인구를 앞지른 것으로도 나타났다. 결국 실질적인 제1 종교는 ‘무신론’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지난주엔 무종교 인구 증가의 원인을 인구 구조 변화와 포스트모더니즘 등 교회 밖에서 찾았다면 이번엔 세속화에 잠식된 교회의 속살을 파헤친다. 이제 한국교회에서 ‘은총’이라는 단어는 ‘물질의 축복’으로 변질됐고 ‘교회는 한국에 와서 대기업이 됐다’는 조롱마저 등장했다. 약 100년 전 값비싼 은혜를 얻기 위한 본회퍼의 싸움은 지금 한국교회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세속화된 교회의 미래는?

기독교 웹툰 사이트 에끌툰에 연재되는 ‘생각 많은 판다’라는 작품에 ‘미래 교회’의 모습이 연재된 일이 있다. 만화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뒤인 2118년 인공지능 목사로봇이 강대상에 올라선 교회의 모습을 그린다. 주인공은 갑자기 미래로 이동해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궁금한 마음에 설교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듣다보니 뭔가 설교 내용이 이상하다. 인공지능 목사의 설교엔 “하나님 예수님 잘 믿고 복된 삶 누리시길 바랍니다. 원하는 거 다 될 줄로 믿습니다”라는 기복주의 내용이 가득하다. 심지어 “저를 따라 외치십시오. ‘나는 복덩어리입니다’”라며 사람흉내까지 낸다.

주인공은 인공지능 목사로봇을 만나 설교 내용이 이상하지 않냐며 따진다. 그런데 이 로봇의 대답이 가관이다. 대답인 즉 인공지능은 설교할 때마다 청중들의 반응을 데이터로 기록하고 어떤 내용에 만족하는지 분석해 발전했다는 것. 그래서 성도들이 가장 좋아하는 설교 형태가 완성된 것이 지금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발언은 더 충격적이다. ‘고난’, ‘섬김’, ‘그리스도’를 설교하던 인공지능들도 만들어졌지만 팔리지 않아 폐기 처분됐다는 것이다.

아기자기한 그림체로 그려진 만화지만 한국교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진정한 회개 없는 신앙생활,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 복음을 입으로만 외치는 것이 반복된다면 피할 수 없는 한국교회의 미래일 수 있다. 세속화는 교회가 직면한 그 어떤 외부의 문제보다 심각한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이 된 시장, 시장이 된 교회

교회가 세속화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은 “교회는 한국에 와서 대기업이 됐다”는 비판일 것이다. 원래 교회와 기업은 스테이크에 곁들인 김치찌개처럼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었다. 기업은 이윤 추구가 목적인 속된 것의 대명사였고 교회는 언제나 한 줄기 햇빛이 비칠 것만 같은 성스러운 공간이었다. 하지만 교회와 기업은 함께 있어도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단어들이 돼버렸다.

‘신이 된 시장’의 저자 하비 콕스에 따르면 초대형교회가 기업과 가장 흡사한 특징은 ‘혹독하게 성장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그는 대형교회는 여느 기업에서 추구하듯 더 많은 멤버(교인 수)와 자본(헌금)을 모으는 데 노력을 집중한다면서 “이런 활동들이 대부분 노골적인 물질주의고 진정한 영적 의미는 전혀 없다는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볼 때 대형교회는 종종 성경의 해석보다 현대 경영 기법에 관심 있는 대표 성직자를 둔 대기업 조직을 모방한다”고 꼬집었다.

교회의 ‘기업 코스프레’는 지나친 성장과 물질 추구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형교회와 소형교회 사이 나타나는 차이에서도 기업의 ‘마케팅’ 요소가 발견된다. 하비 콕스는 “소규모 교회는 대부분 대형교회 같은 편의 시설을 제공할 여력이 없고 점점 대형교회와의 경쟁에서 밀려난다”면서 대형교회와 소형교회의 구도가 마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마케팅 경쟁과 유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복음의 본질에 답이 있다

그렇다면 미래 교회의 모습은 어때야 할까.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자문위원장 손봉호 교수는 “세속화된 교회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엄중하게 경고한다. 그는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세속을 초월하기는커녕 세속적인 가치에 지나치게 감염돼있다”면서 “교회가 전하는 복음은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 같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미래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수 천, 수 만개의 직업이 생겼다 사라지더라도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복음의 본질과 거룩에 있다. 손 교수의 지적대로 세상과 똑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교회, 세상의 속성을 닮아가는 교회라면 존재할 이유를 찾기 어려울뿐더러 유지되기도 힘들다.

복음의 본질이 말에서 머무르지 않고 실천에 옮기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하다. 손 교수는 “교회가 입으로 외친 복음의 본질을 삶으로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의 몸이란 명예를 유지할 수 없고 세속적 사회에도 아무 소용없는 것이 되고 만다”고 말했다.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정재영 교수 역시 미래 사회에는 거룩하고 경건한 교회의 본질을 사람들이 더 필요로 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한국교회가 기존의 성장주의 패러다임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신앙생활을 영위한다면 세속화를 피할 수 없다. 이제 교회가 속한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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