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적 분노’ 키우는 한국사회…“개인·사회 같이 해결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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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 분노’ 키우는 한국사회…“개인·사회 같이 해결할 일”
  • 김수연 기자
  • 승인 2018.10.29 2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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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범죄 원인 ‘분노조절장애’ 대안은?
▲ 요즘 잔혹범죄로 이어지는 ‘분노조절장애’를 호소하는 현대인들이 늘고 있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른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면서 최근 우리사회에선 이른바 ‘분노조절장애’가 함께 조명 받고 있다. 국민들은 사소한 일로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의 목숨을 잔인하게 앗아가고 심신미약 핑계를 댄 가해자를 향해 공분하고 있다. 비단 이번 사건 뿐만은 아니다. 층간소음, 보복운전 등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흉악범죄는 늘 심각한 사회이슈였다. 대한민국은 어쩌다 ‘분노공화국’이 돼버렸을까.

분노하되 ‘죄’는 짓지 마라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에베소서 4장 26~32절) 성경은 ‘화’라는 감정을 무조건 나쁘게 여기고 참으라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노하기를 더디 하라”며 화를 다스리고 절제하라고 말한다. 다윗은 배신당하고 도망치면서 저주까지 받았지만 하나님께 자신의 원통함을 대신 감찰해달라고 기도하며 분노를 조절했다. 그런가하면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인간의 탐욕으로 더럽혀진데 대해 노하셨고 하나님 또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하고 불평했을 때 진노하시어 다 죽게 하셨다. 

전문가들도 분노는 기쁨과 슬픔처럼 인간이 가지는 기본정서 중 하나로, 살면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그 분노가 부정적 기분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제력을 잃은 분노가 스스로를 향하면 화병이나 우울증·자해로 나타나고, 반대로 타인을 향해 ‘욱’ 하고 폭발하면 폭력 또는 살인 등 끔찍한 사고로 이어지는 것이다. 특히 분노의 대상이 어린이나 여성·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인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분노조절장애는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제신학대 여한구 교수는 “하나님의 분노는 불의를 향해있고 증오나 악의, 원한이 없으나 연약한 인간의 분노는 자신이 무시당했을 때 나타나는 등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관계를 깨트리고 상처를 주는 파괴적 성향을 지닌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도운동, 촛불혁명 등 잘 다스려진 분노는 오히려 긍정적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며 “화를 전혀 내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분노를 건강하게 표출하고 해소하는 방법을 익히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분노사회로 가는 대한민국
하지만 안타깝게도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느는 추세다. 이는 ‘분노범죄’ 관련 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경찰청범죄통계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일어난 살인기수·미수 등 강력범죄 중 우발적인 사건은 각각 31.7%, 31.05%, 30.8%로 모두 30%를 넘었다. 상해·폭행 같은 폭력범죄에서도 각각 42.5%, 38.6%, 36.06%에 달했다. 분노범죄가 올해 들어 유독 큰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는 했지만 실상은 그간 꾸준히 증가해온 것이다.

일상에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정신질환인 ‘습관 및 충동장애’를 호소하는 이들도 해마다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3년 4,934명이던 환자 수는 지난해 5,986명으로 집계됐다. 4년 새 무려 1,052명(21.3%)이나 증가한 것이다. 급기야 스스로 분노조절 능력을 평가해보는 테스트도 생겼다. ‘내가 한 일을 인정받지 못하면 화가 난다’ 등 여러 항목 중 9개 이상에 해당되면 분노조절 장애를 의심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모두가 분노범죄의 ‘피해자’인 동시에 누구나 ‘가해자’도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분노조절장애는 개인의 결함이기도 하지만 결코 방관할 수 없는 심각한 사회문제임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다각도의 원인 분석과 대응방안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다.

개인과 사회 ‘함께’ 노력해야
그렇다면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분노조절장애를 ‘질병’으로 여기는 경우다. 사실 분노조절장애는 의학적·과학적으로 정의된 정식 진단명이 아니다. 그나마 가장 유사한 개념이 ‘간헐적 폭발장애’ 혹은 ‘외상 후 격분 장애’다.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떨어져 공격성을 보이는 정신질환이다. 이때는 병원을 찾아 약물·심리·행동치료 등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분노로 인한 극악한 ‘범죄’를 정신질환에서 비롯됐다고 여기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심신미약이 꼭 감형의 사유 또는 면죄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드시 면밀한 조사가 수반돼야 한다.

분노범죄를 야기하는 또 다른 배경에는 폭력적인 가정환경도 자리한다. 성장과정에서 알코올중독, 학대와 방임, 가정불화 등 여러 갈등에 노출된 자녀들은 정신적·신체적·언어적 폭력에 대응할 능력이 없어 내면에 상처와 분노를 켜켜이 쌓아가게 된다. 이따금씩 일가족 살해 등 가족 사이에서 분노범죄가 발생하는 연유도 이러한 탓이다. 따라서 뇌가 발달하고 인성이 형성되는 어린 시기에 가정과 학교에서 사전 예방 차원의 올바른 훈육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채정호 교수는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고 자란다. 이것이 분노를 조절하는 첫 단계”라면서 “분노하는 자녀를 참게도 하고, 적절하게 표현하게도 하는 조절능력을 키워주는 것은 어른들의 역할이자 책임이다. 그러나 크리스천 부모들조차 때로 감정의 노예가 돼 말씀에 순종한 성경적 분노조절 방법을 잘 모르는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이미 발생한 화를 스스로 지혜롭게 관리하는 능력도 요구된다. 부조리한 사건에 분을 표출해 일시적으로나마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을 갖게 되면 화는 점점 습관적으로 바뀐다. 이 같은 악순환을 막으려면 평소 자신의 화를 잠재우는 법을 찾아 실천하는 것도 한 방편이다.

진심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최삼욱 원장은 “일상화된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일기를 쓰는 등 자신의 정서에서 한 발짝 떨어져보는 훈련이나 자신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아내 감정을 통제하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반면 본인이 분노조절장애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부정하는 사례에 대해서는 주변인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요구된다. 그는 “화가 난 사람에게 맞서 싸우기 보다는 상처에서 비롯된 상대방의 분노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며 “아울러 분노조절장애는 가족이나 동료, 연인을 불행하게 만든다. 그저 성격 탓으로 그러려니 묻어버리지 말고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당사자가 전문의의 치료를 받도록 도와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밖에 사회구조의 모순 또한 분노조절장애를 야기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인명을 경시하는 풍토, 왜곡된 자존감으로 인한 피해의식, 도덕성 결여, 열등감 발현 등이 분노조절장애를 키운다는 진단이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결핍된 사회 전반에 ‘존중’ 등 기독교적 가치관을 확산시키는 게 시급하다.

채정호 교수는 “하나님의 형상인 개개인을 인정해주고 소통하는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현재 우리사회에 나타난 분노조절장애는 ‘집단 증후군’ 수준으로 스트레스 요인이 곳곳에 상존해 개인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며 분노범죄를 단순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사회 제반의 문제로 간주해 보다 폭 넓은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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