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되지 말고 어른이 되라 – 추석의 랩소디(rhaps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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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이 되지 말고 어른이 되라 – 추석의 랩소디(rhapsody)
  • 여상기 목사
  • 승인 2018.09.2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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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기 목사/예수로교회

낙엽을 떨구고 옷을 벗는 비움의 계절이다. 나목(裸木)의 힘으로 겨울을 견뎌야 하는 고독의 계절이다. 대나무는 그림자가 섬돌을 쓸어도 티끌하나 일지 않고, 달빛은 못물을 꿰뚫어도 흔적 하나 남기지 않는다. 뜨거웠던 여름의 사역(使役)도 소슬바람이 스쳐가야 영글어 가나보다. 서리 맞은 가을 국화가 내품는 그윽한 향기가 황금 들녘의 결실을 더욱 풍요롭게 노래한다.

인생의 가을이 다가온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기술 혁신이 현기증 날 정도로 전개되는 시대에, 노인은 이제 옛날처럼 불가결한 지식의 원천이 되지 못한다. 고령은 지둔(遲鈍)과 무지의 동의어가 되기 십상이다. 핵가족이 대세를 이루면서 경로정신이 전수되는 주요 현장인 가정교육도 대체로 소멸한 지 오래다. 마음에 새기고 눈여겨 볼 일이다.

하나님은 부모들에게 가정교육을 계명으로 주셨다.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고, 손목과 미간에 붙여 기호로 삼고 문설주와 바깥문에도 기록하라고 말씀하신다(신6:4~9). 지금이야말로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다(암8:11).

집안에 어른의 자리가 비좁아지고, 교탁에 스승이 설자리를 잃어가며, 강단에 목자의 기도와 눈물이 메말라지면 교회의 터가 흔들리고 가정과 사회의 바탕과 구조가 붕괴되기 마련이다. 노인이 어른의 자리를 놓치면 가정과 사회의 위계와 질서에 부조화가 수반되기 마련이다.

작년도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이미 711만 명을 넘었다고 하니 실질적으로 고령사회에 진입한 셈이다. 특히 기독교 인구 감소와 교회학교와 노인학교의 수적 반비례현상은 다음세대의 심각한 숙제로 대두되고 있다. 30대, 60대, 90대, 연령의 벨트(belt)대로 삶의 본질의 태도와 자세를 변혁해야하는 그야말로 트리플 써티(Triple-30)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외국에서는 노인을 ‘시니어 시티즌(Senior Citizen)’이라고 부른다. 시니어라는 어휘에는 풍부한 경륜이, 시티즌이라는 말에는 책임감이 무겁게 담겨져 있다. 의미 있는 용례(用例)다. ‘어르신’처럼 행동하면 인생의 황혼이 단풍처럼 곱게 비쳐지지만, 주책없는 ‘늙은이’로 살면 비에 젖은 낙엽처럼 추해 보이기 마련이다. 노인은 나이 따라 늙어가고 어른은 연륜 따라 존경을 받는다. 노인은 대우를 받지만 어른은 예우를 받고 노인은 초라하지만 어른은 근엄하다.

뭍으로 건너온 새들이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 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몰리지 않는가. 교회가 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복음의 능력이 회복되고, 목사가 모름지기 성도의 마음을 얻어야 하나님의 마음을 얻지 않겠는가. 자손들이 사랑하고 교인들이 흠모하고 존경하는 영원한 현역으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야 할 때이다.

철학자 탈레스(Thales of Miletus)가 어느 날 별을 관찰하면서 하늘을 바라보고 걷다가 그만 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이를 본 하녀가 자기 발밑도 살피지 못하는 자가 어찌 하늘의 이치를 깨닫겠느냐고 비웃었다고 한다. 하인의 눈에는 영웅이 없다는 서양 쪽 속담이 있다. 당장 눈앞의 일에만 몰두하면, 이지(理智)에 치우쳐 삶이 모 나기 마련이다. 감정에 말려들고 아집에 함몰되면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적응한다는 것은 적응하지 못하는 상태에 익숙한 것일 뿐이다.

모름지기 내려놓고 비우는 훈련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한다. 신령한 현역으로 튼실한 다음세대의 거룩한 밑거름이 되어 양들의 마음을 살피고 주님의 시선을 두려워해야한다. 인생의 가을이 다가온다. 행복한 귀향길에 본향을 그리는 소확행(小確幸)의 추석명절이 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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