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순수한 장애인들, 오히려 우리가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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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순수한 장애인들, 오히려 우리가 배워갑니다”
  • 한현구 기자
  • 승인 2018.09.17 2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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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중증장애인과 가족 돌보는 ‘토리학교’

자녀 맡길 곳 없어 시작한 토리학교, 하나님 나라 꿈꾸는 공동체로

죄책감에 시달리는 장애인 부모들, “장애도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장애인을 돕는다고 하면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만 장애인 가족을 돕겠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장애인을 직접 돌보는 것만큼이나 장애인들을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가족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아직 많지 않다.

경기도 고양시 상가 건물 한편에 자리한 ‘토리학교’는 중증장애인들의 쉼터인 동시에 장애인 가족들의 동반자다. 그 자신부터 장애인 가족이면서 중증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섬기고 있는 박성균 목사(44·일산은혜교회)를 지난 13일 고양에서 만나 토리학교 이야기를 들어봤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궁금해요”

장애인에 대한 관심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됐다. 2005년 생후 7개월밖에 되지 않은 딸이 갑자기 경기를 일으켰다. 다급하게 달려간 병원에서 받은 진단은 이름도 생소했던 모야모야병.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희귀질환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딸을 생각하면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2년 넘게 병원을 전전하며 딸을 돌봤다. 딸이 태어나던 해 목사 안수를 받았던 박성균 목사는 교회의 배려로 평일에도 병원을 직장처럼 출근했다. 고된 생활과 어려운 재정, 딸아이의 상황마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박 목사 부부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런 부부를 보며 주변 부모들이 하나둘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남편들은 저녁에 가끔 들르지만 전 매일 병원에서 살다보니 일손이 남았어요. 그래서 같은 병실에 입원한 다른 가족들 젖병도 닦아주고 병실 청소도 하면서 섬겼죠. 그러다보니 병실에서 가장 상태가 좋은 우리 부부가 어떻게 저렇게 밝게 섬길 수 있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생기더군요.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고 싶다’며 다른 장애인 부모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같은 병실에 아이를 두고 있는 부모들의 연령대도 비슷했다. 박 목사 부부를 중심으로 10여 가정이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마음을 나누기 위한 부모 모임이 만들어졌다. 종교적인 성격으로 시작한 모임이 아니었지만 박 목사 부부의 삶을 보며 교회에 가고 싶다는 부모들이 점점 늘어났다.

아이가 어릴 때도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학교를 입학할 나이가 됐을 때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중증장애인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가 거의 없었다. 부모들이 믿고 맡길 수 있을만한 중증장애인 교육시설이 절실했다.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학교가 절실했지만 각자 직장을 갖고 있는 다른 부모들은 엄두를 낼 수 없었습니다. 목사인 제가 섬겨야겠다는 마음에 저희 집에서 모여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돌봄 시설 토리학교를 시작했던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됐네요.”

 

학생과 선생이 함께 자라는 학교

토리학교엔 장애인들을 돌보는 7명의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한다.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10명에서 15명 정도. 여느 학교처럼 오전 9시부터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 프로그램을 함께하고 저녁이면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간다. 부모의 사정에 따라선 늦은 시간까지 아이를 돌보기도 한다.

중증장애인을 돌본다는 것은 어지간한 각오로는 헌신하기 힘든 일이다. 지친 기색이 보일만도 한데 선생님들의 얼굴에는 웃음만이 가득하다. 박 목사는 자신과 선생님들이 장애인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우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일반적인 학교에선 지식이 많은 사람이 스승이지만 이곳은 하나님 나라 공동체잖아요. 이곳이 거룩함을 배우고 순수하게 하나님 바라보는 것을 배우는 학교라고 한다면, 장애인들이 우리의 교사이고 스승이지 않을까요? 겉모습으로 오해할지 몰라도 누구보다 거룩하고 순수한 이들이 바로 장애인들입니다.”

물론 평범한 학교는 아니다. 중증장애인들의 행동은 언제나 예상을 벗어난다. 평소엔 자기 신변을 처리할 수 있는 친구임에도 갑자기 길에서 멈춰 용변을 보기도 한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달라는 지극히 순수한 표현이다.

상태가 각기 다른 중증장애인들이 어떻게 학교에서 적응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박 목사는 보는 시각이 달랐다. 장애인들이 학교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들이 장애인들에게 적응해야 한다는 것. 그는 장애인들을 돌보는 선생님이 오히려 더 훈련받는 학교라고 말했다.

“정말 상태가 심한 중증장애인들도 많아요. 이들에게 학교에 적응해 달라고 말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가 이들에게 적응해야 해요. 학교란 이름으로 장애인들을 가르친다곤 하지만 이 과정 속에 선생님들이 배우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장애인들의 순수함에서 배우고, 또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보는 법을 배우죠. 토리학교는 장애인과 선생님이 함께 성장하는 곳입니다.”

장애는 죄가 아닙니다

토리학교의 ‘토리’는 도토리에서 나왔다. 옹골찬, 속이 꽉 찬 이란 뜻이 담긴 순우리말이다. 다른 기독교 복지단체처럼 성경에 나오는 단어로 이름을 짓지 않은 것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장애인 가정도 부담 없이 학교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박성균 목사는 장애인 가족들에게 ‘산다’는 표현은 사치라고 말했다. 대신 ‘버틴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했다. 박 목사가 연말에 장애인 가족들과 모여 인사를 나눌 때도 빠지지 않는 말이 ‘올 한해도 잘 버텼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이다.

“중증장애인을 돌보는 가정의 삶은 평범한 가정이 상상하기 쉽지 않아요. 그래서 장애인만큼이나 장애인 가정을 돌보는 사역이 정말 중요합니다. 남들이 감당하기 힘든 중증장애인을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가족들이니까요. 그런데 그런 가족들이 지쳐 쓰러지면 어떻게 장애인을 돌볼 수 있겠습니까.”

장애인들을 향한 복지는 점점 좋아지고 있는 추세지만 장애인 가족들을 위한 복지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만큼이나 어려운 삶을 함께 하고 있는 장애인 가족을 섬기기 위한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때문에 토리학교는 처음부터 장애인 가족사역으로 출발해 장애인과 가족들이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 성장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장애가 그저 불편함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장애가 때론 다리 역할을 하더군요. 믿음이 없는 부모들이 자녀의 장애를 통해 교회에 나오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셨듯이 토리학교의 장애인을 통해 장애인 가족들까지 하나님을 만나게 되길 기도하며 섬기고 있어요.”

하나님을 몰랐던 장애인 가족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일도 중요한 사역 중 하나지만 교회에 다니는 가족들이라 해서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수의 부모들이 자녀의 장애가 자신의 탓이라며 죄책감을 안고 산다. 자녀가 장애를 갖고 나면 부모에게도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사슬처럼 딸려 온다. 그래서 박 목사는 장애인 가족부터 장애를 보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애는 누군가의 죄의 결과도 아니고 벌도 아닙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전혀 다르지 않은 거룩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장애인 부모들부터 죄책감을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었으면 해요. 그리고 교회도 판단하고 계산하기보단 먼저 따뜻한 사랑으로 장애인 가족을 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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