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봄날의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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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봄날의 동상이몽
  • 정석준 목사
  • 승인 2018.04.1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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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의 시사영어 - 52

한번은 동네 형들이 ‘산에 독수리가 나타났다’고 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이리 저리 형들을 쫓아 산을 올랐으나 끝내 독수리는 보지 못하고 목 줄기에 흐르는 때 국물만 씻어냈다. 김포평야에서 익숙히 참새만 쫓던 중, 귀로만 듣던 독수리를 보면 알 수 없는 큰 자랑거리가 생겨날 것처럼 흥분하고 가슴이 설레였다. 

새를 가지고 ‘점’을 치는 것을 ‘augury(새점)’라고 한다. 그리고 새를 뜻하는 ‘au’와 ‘관찰하다’라는 ‘spicious’가 합성되어 ‘상서로운 새, 길조’가 됐다. 그 길조중의 하나가 독수리다. 재미있는 일은, 성전을 의미하는 영어 ‘temple’이 “신이계신 곳, 제단,(structure reserved for religious or spiritual rituals)”이란 라틴어 ‘templum’에서 나왔다. 그리고 중세 기독교인들이 영적인 수련의 장소로 사용했던 곳을 ‘con-templatio’라 하는데, 하늘의 뜻과 사람의 소원이 함께(con-) 만나는 제단이란 뜻이다. 그런데 그곳에서 하늘의 계시를 받아내는데 매개가 되었던 새가 또한 독수리다. 

개인이든 국가든 앞으로 가야할 길이 있다. 꼭 가야만 하는 유일한 길이다. 따라서 미래에 가야할 그 길을 나와 이 나라가 지금 잘 가고 있는지를, 그리스인들은 높은 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의 눈으로 살펴내길 원했다. 그리고 하늘에서 땅의 모든 것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그 독수리의 날아가는 모습과 방향을 보고 계시를 얻어냈다. 사실 생계에 막막한 대다수의 서민들은 점을 볼 여유조차 없다. 그러나 한 순간의 판단을 가지고 나라의 운명을 좌우지할 수 있는 지도자들에게는 절실한 필요였다.  

급속한 화해의 물결 속에 남한의 예술단이 평양을 방문하고, 교회단체들은 부활절 예배에서 남북 공동기도문을 가지고 기도했다. 나른한 봄날에 정신이 번쩍 들도록 기분 좋은 소식들이다. 다만 동족상잔의 비극을 안고 끌어온 남북 간 동상이몽의 재현이아니라 적어도 번영된 자유 대한민국의 10년 20년 후를 내다보는 깊은 안목을 통해 진행됐으면 한다. 날아가는 독수리에게라도 물어, 가고 있는 길의 내일을 보려했던 그리스인들이나 사제들의 절박한 지혜로움에 새삼 동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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