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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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나기!
  • 이수일 목사
  • 승인 2018.04.03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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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 목사/흰돌교회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왕으로 일컫는 위인이 있다면 누구나 다윗을 지목하는데 주저하지 않으리라.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극적으로 이긴 다윗의 사건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다윗의 위대함을 역사가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다. 성경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뜻을 다 이루리라”(행13:22)라고 말한다. 우리가 다윗을 설교할 때마다 곧잘 사용하는 이 표현을 빌자면 다윗은 전 생애가 하나님 마음에 꼭 들었다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다윗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로 끌고 들어온다면 다윗은 왕으로서의 생애는 고사하고 장관이나 고위관료조차도 허용될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기름부음 받은 종이 되어 목회자의 생애를 살아내는 것도 버거울 것이 명확하다. 다윗의 많은 실수들 가운데서 한 가지만 이야기해 보자.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강간한 사건은 치명적인 실수요, 교활한 범죄행위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범죄를 가리기위해 우리야를 최전방 일선병사들 속에 내보내 죽게 했다. 우리야의 죽음은 다윗의 살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수많은 전쟁터에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생명들을 죽이고 죽어간 모습을 일상처럼 보고 자란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야 한 사람의 죽음정도는 너무나 평범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지금의 지도자가 다윗처럼 범죄했다면 어떻게 자리를 보존했을까? 혹자들은 다윗이 회개했다는 것을 강조하며 다윗의 명예를 간단히 회복시켜주고자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간단하고 쉬운 일인가? 오늘의 지도자나 목회자가 다윗처럼 범죄하고도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우리 모두가 그런 범죄자들을 다윗처럼 귀히 여기고 존중할 수 있을까?

어느 해인가, 청소년선교에 탁월하다고 인정받은 젊은 목회자가 십여 년 전, 청소년을 성추행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큰 난리가 났다. 각종 언론매체가 온갖 비난을 퍼부으며 총공세를 벌인 탓에 그 해당목회자는 자리에서 물러나고 은둔의 삶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가 잘못했다고 공개사과해도 소용이 없고 회개했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일단 자리부터 내려오라는 것이고 양지에서 사라지라는 것이다. 다윗의 범죄에 비하면 너무도 미미한 행위가 아닌가?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이유가 다윗 자신의 의로움에 근거한다면 동의할 수 있겠는가? 굳이 다윗의 의로움을 이야기한다면 평생토록 애통하던 눈물의 삶에서 찾아야 하리라. 다윗의 죄에 대한 애통은 시편에서 절절하게 다가온다. 

요즘 우리는 ‘미투운동’의 여파로 일순간에 무너지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한다. 바라기는 그들이 다윗처럼 철저하게 가슴을 치면서 회개하고 예수의 사랑과 용서를 힘입어 기사회생했으면 하는 것이다. 스스로 지은 죄의 댓가를 혹독하게 치룬 후, 주변의 질시와 비난을 온몸으로 이겨내면서 제2의 인생을 보람되게 살았으면 좋겠다. 부디 다시 일어나길, 부디 거듭난 인생으로 여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길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응원한다.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리라”(잠언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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