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를 짓는 것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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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를 짓는 것이 어떤가?”
  • 정석준 목사
  • 승인 2018.03.20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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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의 시사영어 - 51

“만석꾼이에게는 만 가지, 천석꾼이 에게는 천 가지의 걱정거리가 있다”고 한다. 쌀 만석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있는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그 깊은 맛을 우려내길 좋아한다. 그리고 만석꾼은 만 가지의 근심을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람이므로 어쩌다 성공의 담론이 오고 갈 때면 스스로 몸을 낮춘다. 젊은 시절, 자타가 인정하는 뜨거운 열정으로 정상을 욕심냈었고, 그래서 비교적 앞서간다고 생각했지만, 육십을 훌쩍 넘기고야 내게는 만 가지 근심을 상대할 능력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의 격렬한 열정을 표현하는 영어단어에 ‘passion’이 있다. 이 단어의 라틴어 어원은 ‘passionem’이다. 그런데 뜻밖에 고난(suffering)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from Late Latin: passionem “suffering, enduring”) 그래서 “passion of Christ”가 우리말 번역에 ‘그리스도의 수난’이 된다. 여기에 ‘함께(together)’의 뜻을 가지고 있는 ‘com’이 접두 되어 ‘동정, 연민, 상대를 측은히 여기는 마음.’의 ‘compassion’이 만들어진다.
자신의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실에 사람들은 때로 절망하며 분노한다. 그리고 사람이 저지르는 죄의 모든 근원이 이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이로 인한 좌절에 앞서, 무엇보다 먼저, 내안에 있는 ‘compassion’의 크기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서울대 ‘배철현’교수는 이 단어를 더 확장해서 이렇게 해석했다. “자기 집안 식구에 국한된 연민의 사람은 ‘가장’으로, 동네 전체를 위할 수 있을 정도이면 ‘동장’으로, 적어도 그의 동정의 범위가 국가를 담아낼 수 있을 때 비로소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의 측근들과 환담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때 그는 절대적 공이 있는 인사에게 “자네는 정치를 하지 말고 농사를 짓는 것이 어떻겠냐?”고 한 말이 전해진다. 고인이 되신 분의 깊은 마음을 모두 헤아린 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불투명한 정치판의 현실에 그가 연루되기를 원치 않았거나, 적어도 곁에 두고 있는 야망의 젊은이에게, 그러나 당신이 보기엔 정치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성공하기엔 너무 부족한 그의 ‘compassion’을 본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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