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와 약자의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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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자와 약자의 동거
  • 이수일 목사
  • 승인 2018.02.0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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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 목사/음성흰돌교회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면 언제나 동물의 왕국을 시청하곤 했다. 장성한 후에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했지만 당시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가 사람이 주인공으로 나타나야 하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사람 구경하기보단 동물만 실컷 구경하게 하셨으니 아버지와 나는 어릴 적부터 불통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싫든 좋든 봐야 하는 동물의 왕국에서의 교훈은 ‘약육강식’이었다. 

강자가 약자를 삼키는 정글의 모습, 그것은 어린 나에겐 너무나 아픈 기억이다. 약한 동물들이 강한 동물들에게 잡히면서 피를 쏟아내며 죽어가는 모습은 정말 불쌍하고 가여웠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동물의 왕국보다 더 처절하고 냉혹한 세계가 사람들이  사는 세계다. 동물들은 배가 고파야 강한 짐승이 약한 짐승을 삼키지만 일단 배가 부르고 나면 필요 이상의 싸움이 없다. 이에 반해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을 만큼 냉혹하고 처절한 전쟁을 언제든 어디서든 벌인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전형이며, 승자독식의 세계다. 배려도 나눔도 없다고 봐야 할 정도로 삭막하기 그지없는 사회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다. 강한 사람은 언제나 약한 사람들을 부리며 살았고,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자신들의 밥으로 여기며 푸대접한다. 약소국은 언제나 강대국의 전유물이었음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일반사회만 그런 건 아니다. 교회 안에서도 약육강식, 혹은 승자독식은 여전하다. 언제인가, 대형교회가 주최하는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경험했던 아픈 추억이 문득 생각이 난다. 주최하는 교회 측의 부목사가 강사로 나와서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자랑을 서슴없이 해댔다. “우리 교회는 전도하지 않아도 매주 이삼십명씩 등록교인이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만큼 행복한 교회는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까지 했다. 견딜 수 없어서 일어나 몇 마디 했다. “귀 교회가 새로 등록한 신자들을 환영하며 축복송을 부르고 있을 때, 그 교인들이 빠져 나간 작은 교회에선 슬픈 탄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본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교회 안에서도 강자는 약자를 지배하는 형국이 여전하다.

숲이 아름다운 것은 높이에서 크기에서 색상에서 다양성을 이루며 공존하는데 있다. 그 가운데 사는 동물들도 마찬가지로 공존을 이루며 나름 평화를 이루어 간다. 그러나 유독 사람들이 사는 사회만은 공존을 모른다. 늘 강자가 약자를 철저하게 짓밟고 유린한다. 법을 제정해 만들어내도 강자들 앞에서 법은 그리 큰 위력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성경의 정신은 강자가 약자의 연약함을 담당하는 것이다. 여자의 힘보다 남자의 힘이 크고 강하다면 그 남자의 힘으로 약한 여자를 부리며 사는 것이 아니라 목숨 걸고 지켜내며 보호하는데 사용해야 한다. 개인의 힘이, 그리고 개인의 지성이 타인보다 우월하다면 그 우월한 능력으로 타인을 지배하고 자신의 소욕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며 사는 것이 성경의 정신이다.

언젠가 강남의 한 지역에서 장애인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이들을 향해 장애아동을 둔 엄마들이 무릎을 꿇고 비는 장면이 소개된 적이 있다. 지성인들을 자처하는 지역, 부자들이 가득한 동네, 두 집 건너 한 집은 기독교인들이 사는 서울 한복판에서 비정상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부요하신 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케 되신 주님은, 자신의 가난을 인하여 우리를 부요케 하시는 분이시다. 강한 자가 자기의 힘을 비우는 삶, 부자가 가난해 지는 삶, 높은 자가 스스로 낮아지는 삶을 추구할 때 비로소 강자와 약자의 동거는 진정한 천국을 이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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