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오지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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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오지 마셔요”
  • 강석찬 목사
  • 승인 2017.12.2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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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 목사·예따람공동체

19세기 영국은 산업화가 급속하게 이뤄지면서 사회는 풍요로워졌지만, 빈부 차이가 너무나 컸다. 사랑과 나눔이 필요한 세상이었다. 이때 찰스 디킨스(1812~1870)는 영국의 서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의 소설들이 위로와 소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은, 성탄절에 단골메뉴로 연극무대에 오른다.

고리대금업자 스크루지, 그는 구두쇠답게 조카의 성탄절 식사초대도 거부하고, 성탄절 자선기금 모금도 거절한다. 한 명뿐인 직원에게 마지못해 성탄절 휴식을 허락하고 퇴근한다. 평소와 같이 깜깜한 방에 들어선다. 장면이 바뀌면서 7년 전 죽으면서 자신의 유산을 스크루지에게 넘겨준 동업자 말리가 쇠사슬에 묶여 고통 받는 유령으로 나타난다. 이날 밤 스크루지는 자신의 과거, 현재, 그리고 비참한 미래를 유령의 안내로 보면서 후회한다. 꿈에서 깨어난 성탄절 아침, 스크루지는 극적으로 새사람이 되었다.

성탄절 아침이 되면, 교회에서는 연례행사를 치르듯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송을 부를 것이다. 갑자기 물음이 생긴다. “정말 기쁜 성탄일까?”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은 재림 예수님의 ‘기다림’에 있다. 재림 예수님 때문에 이단과 사이비 종교가 나타나긴 했지만, 그리스도교의 신앙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마라나타) 기도에 담겨 있다. 그런데 성탄일이 다가오면서 근심과 걱정과 두려움이 생긴다. 오늘 한국교회에 주님이 오신다면 “잘 했구나, 청지기야. 네가 충성했으니 내 잔치자리에 있으라”라고 칭찬하실 만 할까? 아니면 “화 있을 것이다. 회칠한 무덤 같은 교회야!”하며, 혼을 내실까? 꾸중 들을 교회라면, 성탄이 기쁠 수 없다.

교계는 어떨까? 한 가지만 예를 든다. 스스로 한국의 대표적 교회의 목사라는 분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들어본다. “하나님이 하라는 것만 하니, 이렇게 큰 교회를 이루고 개척 38년 만에 세계 역사에서도 인정하는 교회를 하나님이 이루어주셨다. 철저한 순종으로 하나님이 하라는 것만 하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 하고는, 자신의 아들 목사에 대해서 “많이 힘든 길을 주님이 십자가를 지워주셨다”고 하였다. 아들 목사는 “본 교회의 어려움을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 없어서 청빙을 수락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줄 믿는다. 눈물로 세운 교회를 아름답게 이어가겠다”고 하였는데, 실제로 하고 싶었던 말은 “내가 세계교회가 인정하는 교회를 세워 아들에게 물려주려하는데,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한 것이다”이며, 아들의 속마음을 드러내어 보면, “아버지께 감사드린다. 이 좋은 자리를 다른 어떤 목사에게 넘겨주면 어려운 일이 생길 것이므로, 내가 짊어지려 한다. 이제 아버지가 잘 도와주실 줄 믿는다”라고 생각된다.

굳이 담임목사직 승계를 탓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이들은 절대로 교회 담임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문제가 될 것을 알면서도 전격적으로 승계한 것이다. 결국 거짓말을 한 것이다. 거짓말하는 성직자나, 눈감고 있는 교회들이나 다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올해 성탄을 맞이하면서 주님께 이런 부탁의 말씀을 드렸다. “오지 마셔요. 제발 오지 마셔요.” 주님이 오시면 한국교회의 꼴을 보시면서 심판의 종말을 선포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주님이 오시는 것이 두렵고 무섭다. 그랬더니 주님이 말씀하셨다. “그래서, 더 가야겠구나.” 바로 이것이 성탄이기 때문이다. 2,000년 전에도 어둡던 세상에 희망이요 소망이셨듯이, 우리 시대에 온갖 곳에 불 꺼진 등잔이 가득하기 때문에, “희망이 되기 위해서라도, 나는 그곳에 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한국교회는 성탄 아침에 스크루지가 변화하듯 바뀌어 기쁜 성탄을 맞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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