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이 들국화처럼’ 버려진 삶을 붙잡아 주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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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 들국화처럼’ 버려진 삶을 붙잡아 주신 하나님
  • 승인 2004.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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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긴 방황 끝내고 찬양사역자로 하나님께 돌아온 가수 박광현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 나 죄의 길에 시달려 주여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주소서’

회개의 찬송을 부르며 예배당에 무릎 꿇는 가수 박광현(39.지구촌교회)씨의 모습은 대중음악을 하던 옛날의 모습 보다 훨씬 평화로워보였다. 1980년대 후반을 즈음해 90년대 말까지 음악계에 한 획을 긋고 세상속에서 자취를 감췄던 박광현씨가 그토록 그리웠던 하나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 지구촌교회(담임 이동원목사)에 가면 그 누구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 드리는 가수 박광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은혜를 받은 후엔 묵상음반까지 만들며 하나님을 더욱 높이 찬양드리기에 힘썼다. 5년전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기타를 치며 묵상했던 찬양곡들을 지난해 3월 음반으로 제작한 것이다.

“예수님을 다시 만난 후 옛날의 제 음악이 싫어졌어요.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찬양 부르는 것이 더 행복하답니다. 지금까지 교회를 제외하고는 집에만 계속 머물렀어요. 이렇게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한 것이 굉장히 오랜만이죠.”

박광현씨는 세상속의 온갖 상처와 무수한 시험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교회를 떠나 세상과 사람속으로 나온다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었다. 4년전부터 부인의 꾸준하고 끊임없는 기도와 헌신이 비로소 남편의 마음을 변화시켜 놓은 것이다. 어린시절 예수님과의 조그만 추억조차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교회와 멀어지는 남편의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부인은 무릎 꿇고 기도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었다.

박광현씨는 중고등학교 시절 예수님을 믿었었지만 대학에 진학하면서 세상에 휩쓸려 있었다. 그가 하나님을 떠나 있었다면 부인은 다른 종교를 믿고 있었다. 그러나 결혼 후 시누의 국경을 넘은 전화전도로 마음에 감동을 받은 아내가 먼저 예수님을 구주로 마음에 모셨고 끈질긴 기도로 남편을 하나님께 돌려 보냈다.

지난 1997년 5집 음반을 발표하고 다음해인 98년 ‘55일간 콘서트’를 끝으로 10년 음악인생을 사실상 마무리 했던 가수 박광현. 히트제조기로 불리며 가요계를 누리던 그는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고교시절 작곡한 ‘안녕이라고 말하지마(노래-이승철)’가 인기정상을 차지하게 됐고 88년 대학 3학년 시절엔 자신의 독집음반 ‘한 송이 저 들국화처럼’이 연이어 히트를 치게된 것이다.

당시 박광현씨는 인정받는 싱어-송라이터였다. 자신이 노랫말을 지어 곡을 입히고 노래까지 부르며 끝없이 정상을 향해 올라 갔고 대중음악속을 향해 자신을 더욱 옭아 매었다. 록과 발라드의 조화, 포크와 블루스등의 음악적 형태를 중심으로 발표하는 음반마다 다양한 층의 팬들을 집중시켰고 가수 이승철의 수많은 히트곡을 비롯해 신승훈의 ‘우연히’, 김건모의 데뷔곡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의 원곡이 그의 작품 ‘잠도 오지 않는 밤에’였다.

그 기세에 걸맞게 음반 기획사를 겸업하게 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는 더욱 멀어져만 갔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순탄한 길만 허락지 않았다. 부와 명예를 양 손 가득 쥐었지만 가슴 깊이에서 다가오는 지독한 외로움과 알 수 없는 고통은 견딜 수 없을만큼 힘들었다.

“정말 어리석었었죠. 모든 염려와 근심을 주께만 내어놓고 간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으니까요. 전 자꾸만 세상에서 위로 받기 위해 노력했고 세상은 저를 위로할 수 없었죠”

결국 1990년 대마초 흡연혐의로 구속되기에 이르렀고 이후 계속된 음악활동 속에서도 주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소위 ‘잘 나가는 가수’였다.

당대 굵직한 메머드급의 가수 이승철 조덕배, 그룹 부활 들국화 B612의 유한승 등과 함께 최고의 인기가도를 달렸지만 95년 한차례 더 대마초 흡연혐의로 구속되는 찬바람을 맞아야 했다. 그렇게 세상과 조금씩 타협하면 할수록 깊은 늪으로 빠져 들었고 가족과 교회와도 단절되었다. 부인과 아이들과 나누는 대화는 점점 줄어들었고 갓 태어난 막내아들 창훈이에게도 온전한 사랑을 베풀지 못했다.

“집사람에게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요. 또, 너무 미안하죠. 집사람은 결혼 후 예수님을 영접하고 줄곧 저와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죠. 요즘은 매일같이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의 저 끝자락에 있을때도 하나님께서는 저를 놓지 않으셨고 집사람 또한 사랑과 관심으로 저를 붙들었죠. 지금도 그게 가장 큰 축복이에요.”

5년전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에 열릴 것 같지 않던 굳은 마음이 봄 눈 녹듯 녹아내렸다. “감히 말씀 드릴수는 없지만 회개의 영이 임했던 것 같아요. 가슴 속 뜨거움이 밀려오면서 닫혔던 마음이 순종의 마음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기도와 찬송이 입에서 나왔죠.”

그 주에 바로 가족과 함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었고 현재까지도 집과 교회생활이 삶의 전부이다.

“하나님을 만난 후 세상의 모든 것을 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하나님의 삶으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련이 닥쳐왔다.

그것은 바로 ‘간경화 중기 진단’과 ‘C형 간염 진단’이었다.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 채 누워 있어야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변화된 삶이었기에 병상에서도 기도와 찬양이 끊이지 않았다.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제가 예수님을 다시 만난 후 아프게 하셔서 말입니다.’

그랬다. 확실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어요. 다시 하나님을 만난 후 아팠기 때문에 천국소망을 꿈꿀 수 있었죠.”

복음적인 삶은 병마와 싸우는 주사까지도 그의 혈관에 자리하지 못하게 했다. 모든 처방약을 끊고 기도와 찬양을 드림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친 것이었다.

“제 마음이 더 아팠어요. 지금까지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거룩하게 하지 못하고 온갖 세상의 것들로 채웠으니 말이죠. 지금의 바뀐 삶이 아니었다면 아마 건강의 회복도 주시지 않으셨을거예요.”

가수 박광현은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고 사는 사람’으로 철저하게 변화됐다. 세상에서 교회로 다시 돌아왔을땐 ‘이제부터는 대중음악을 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기도하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 온 것이라곤 음악밖에 없는데 다른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음악을 시작하면서 대중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기로 기도했죠.”

음악을 하는 것 자체가 ‘영적 싸움’이라고 전한 가수 박광현. 그는 오랫동안 쉬어온 자신의 지난 세월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새롭게 태어난 시간이라고 고백했다.

“상업성이 있음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대중음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동떨어져 타락해가는 세상음악을 조금이나마 정화할 수 있다는 믿음과 비전으로 6집 음반을 기도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게 주어진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며 주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곧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주께서 가라시면 오지의 선교사적 역할도 감당할 수 있다며 자신있게 말하는 기쁜 모습에서 ‘잘 나가는 가수’에서 단순히 ‘그리스도 인’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가수 박광현으로서의 삶 자체가 변화되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부인과 세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아버지로 변화된 가수 박광현.

예수님께 다시 걸어오며 버려야 할 많은 세상의 것들을 과감히 버리고 교회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그는 지금 하나님 찬양의 노래를 힘차게 부르고 있다. 새로운 생명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 그 벅찬 감격이 찬양속에 담겨 있었다.

송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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