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행함으로 드러나…‘이신칭의’ 왜곡 바로 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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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행함으로 드러나…‘이신칭의’ 왜곡 바로 잡아야
  • 정하라 기자
  • 승인 2017.09.21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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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500주년 특별기획 한국교회 개혁과제 ② ‘오직 믿음’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올해, 한국교회는 재도약과 후퇴의 기로에 서 있다. 1517년 마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교회의 진정한 변화를 촉구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달로 95개조 반박문이 전 독일에 퍼지게 되면서 시민의 지지를 받은 루터의 종교개혁은 독일을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종교개혁의 물결을 일으켰다.
 
루터 종교개혁을 배경으로 태동한 개신교는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표어를 내걸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는 종교개혁의 정신이 무색할 만큼 사회적 신뢰를 잃고, 세상 속에 빛과 소금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본지는 종교개혁의 역사적 배경과 영향을 조명하는 한편 오늘날 한국교회 개혁을 이루기 위한 과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운동의 중심사상에는 ‘오직 믿음’이 있었다.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는 구원을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 선행의 결함으로 이해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아담의 후손인 인간은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인간의 공로와 업적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인간이 선한 행실을 하면 할수록 인간 안의 의가 완성되어 가고, 어느 특정한 단계에 이르면 인간은 완전한 의인이 되어 구원받게 된다고 본 것이다. 
 
루터는 1505년 에어푸르트에 있는 어거스틴 은둔수도회에 들어가서 수도사 생활을 하면서 고행과 금욕의 삶을 지키며 살았지만, 자신의 구원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절망적이게 됐다. 성경의 율법과 규율을 지키려 하면 할수록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의 죄가 더욱 선명해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던 루터는 1516년에 이르러 성경과 어거스틴의 사상을 통해 비로소 복음과 구원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됐다.
 
로마서 1장 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믿음을 통해 성도들에게 아무런 공로 없이 주어졌다는 성경의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어떠한 행함이나 노력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로서, 성도들에게 내주하시는 예수님의 의가 의로운 삶을 살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구원을 해석하는 개신교의 핵심 교리인 ‘오직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됨’(칭의론)의 신학이 탄생했다.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순간, 우리의 죄는 용서받고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총신대 박용규 교수(한국기독교사연구소)는 “칭의론은 아무리 노력해도 죄의 본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아무런 값없이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이라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칭의의 교리는 종교개혁의 근간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믿음을 통한 구원을 확신한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진정한 ‘회개’를 통한 구원과 면죄부 판매의 부당성을 핵심으로 하는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내걸게 된다.
 
루터의 칭의론-“‘믿음’과 ‘행위’의 결합”
오늘날 개혁교회는 ‘칭의’의 교리를 강조함으로써, 성화를 위한 인간의 노력은 상대적으로 등한시 여기게 됐다. 그로 인해 구원을 믿음의 행위가 결여된 ‘값싼 은총’으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믿음’과 ‘행위’를 분리하는 이분법적 태도는 루터의 칭의론에 대한 잘못된 이해라는 평가다.
 
루터는 중세 가톨릭교회가 인간의 선행을 구원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 믿음을 강조한 것이지 선행을 간과한 것은 아니라는 것. 한국교회에 많은 윤리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도 ‘이신칭의’의 교리를 잘못 이해하고, 해석한 것에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의 한계를 절감한 이래 기독교는 곧바로 루터의 한계를 이해하고 이를 수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칼뱅은 ‘칭의’와 함께 중생을 강조했고 18세기 웨슬리는 성화를 강조했으며, 20세기의 오순절운동은 성령의 능력을 강조했다. 내적으로는 영적 성숙을 강조했으며, 외적으로는 기독교 사회윤리와 사회적 성화로 나아갔다.
 
박명수 교수는 “루터에게 교리와 신앙, 교리와 실천, 신앙과 삶은 괴리되지 않았으며, 칼뱅에게도 칭의는 성화와 분리되지 않았다”며, “한국교회는 칭의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개인의 신앙이 삶의 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한 목회자 초청 세미나에서 칭의론을 주제로 강의를 펼친 김세윤 교수(풀러신학대학원)는 오늘날 왜곡된 칭의론을 바로 잡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한국교회 개혁을 위해서는 칭의론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며 “의인이라 칭함을 받음(칭의)은 ‘무죄 선언 받음’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회복됨’의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세례(믿음의 시작점) 때 얻는 칭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최후의 심판에서 얻을 칭의의 선취’(미리 받음)에 불과하다”며, “현재 회복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은 백성으로서의 ‘삶’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화가 칭의의 뒤를 잇는 구원의 새로운 단계가 아니라 구원의 전 과정을 통칭하는 그림언어로서 칭의와 병행되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행함’ 믿음의 열매로 드러나야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했지만, 한국교계에 목회자의 타락과 윤리실종이 만연되고 있는 현실 속에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외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목회자와 성도들의 윤리적 문제는 한국교회 신뢰도를 크게 낮추고 세상 속에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어 큰 저해요소가 되고 있다. 최근 발생한 목회자 성문제, 교회 세습, 각종 재정문제, 종교인 납세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교회가 위기를 맞이한 근본원인은 믿음과 윤리를 분리된 관점에서 이해하는 왜곡된 칭의론을 복음이라고 선포했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루터는 믿음의 열매로서 선행이 반드시 뒤따르는 ‘행동하는 믿음’을 강조했지만 한국교회가 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믿은 후에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값싼 은혜만을 전파했다는 것이다.
 
정일웅 교수(총신대 명예총장)는 “한국교회는 믿음만 강조하고 실제로 이웃과 사회를 섬기는 ‘선행’은 강조하지 않아 값싼 은혜만을 전파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며 “‘이신칭의’에 대한 잘못된 신학적 설명과 오해를 바로잡고 믿음의 열매로 동반해야 할 선행을 가르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또 “선행이 구원의 선결조건이 아니라, 믿음의 열매로서 이웃과 공동체를 망각하고, 행동 없는 믿음만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르지 못함을 깨우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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