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장들의 성명서 유감(遺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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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장들의 성명서 유감(遺憾)
  • 서진한 목사
  • 승인 2017.08.30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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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한 목사·대한기독교서회

지난달 말 ‘한국교회 교단장회의’ 명의로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교계 언론들은 앞다퉈 기사를 실었고, 그 전문이 광고로도 게재되었다. 성명의 내용인즉, 개헌안에 ‘성평등’이라는 단어를 넣는 것은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일이니,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계 언론들이 연일 후속 기사를 게재했고, 지난 금요일에는 교단장회의의 한국기독공공정책협의회, 한국교계국회평신도5단체협의회, 한국복음주의신학회가 내로라하는 명사들, 여러 교단장과 함께 국회에 ‘집결’해서 같은 취지의 ‘한국교계 긴급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동성애, 어느새 한국교회에 가장 큰 문젯거리가 되었다. 그래서 교계 단체들은 차별금지 법안 발의만 아니라, 지자체의 차별금지 조례까지 막고 나섰다. 그런 와중에 국회 개헌특위에서 성평등 보장 규정을 논의한다니, ‘긴급’하게 나서서 성명서와 여론으로 국회의원들을 압박해야 하게 생겼다.

신실한 기독교신앙인으로서 동성애를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사회가 빠르게 세속적으로 흘러간다고 느끼고 분연히 일어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수 신앙인이 느끼는 위기를 대변하는 것이 교단장들의 임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성명서를 연이어 발표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그런데도 ‘유감’인 것은 이즈음에 딱 그 문제에 대해, 딱 그런 종류의 성명밖에 더는 나온 게 없다는 것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남북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종편방송은 온종일 전쟁 이야기로 도배를 한다. 북의 도발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발언도 종잡을 수가 없다. 급기야 선제타격할 수 있다고 했다.  교단장회의가 성명을 발표할 즈음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게다가 트럼프는 선제공격으로 수천 명이 죽는다 해도 한반도에서 죽는 것이지, 미국에서 죽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도 했다. 망발이다.

미사일, 미사일 하면서 사드문제로 격론을 벌이지만, 남북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휴전선에 배치한 북의 재래식 무기 장사정포 수백 문이 불을 뿜을 것이다. 시간당 2만 발 이상의 포탄이 발사될 거라고 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서울 경기는 단시간에 쑥대밭이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나갈지 모른다. 끔찍한 일이고,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헌법에 성평등 문구 삽입 ‘결사반대’, 좋다. 신앙에 반하는 일이라면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교단장들이라면, 한반도의 전쟁 또한 ‘결사반대’했어야 한다. 평화수립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핵심 명령이고, 기독교신앙의 핵심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북의 지도자더러 경고했어야 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추구하라고 촉구했어야 하며, 동맹국 국민의 생명을 경시하는 트럼프를 꾸짖었어야 한다. 권력자의 잘못을 꾸짖는 것, 그것은 옛날 예언자의 일만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교단장들의 일이고, 목사 장로들의 일이며, 모든 신앙인의 거룩한 책무이다.

이 불안한 시기에 교단장들이 한마음으로 평화를 촉구하며, 국민들을 위로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떨칠 수 없다. 그랬다면 그 시의성과 적절성 때문에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싶다. 교계 언론들도 교단장회의 성명서 내용을 확대 재생산하기만 했으니, 이참에 언론의 비판적 기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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