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형’관례와 예수님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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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형’관례와 예수님의 고통
  • 승인 2001.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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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와 대상
십자가의 사형집행은 페르시아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며 알렉산더 대왕이 이집트와 카르타고에게 십자가 형을 전해 준 것이다. 이어 로마가 이 사형법을 배워서 실시하게 되었다. 이 십자가형은 죄인을 사형할 때 극도의 고통과 내적 상처를 입히며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죽게 한다. 이처럼 치욕스럽과 잔인한 형벌인 십자가형은 노예나 이방인 반역자 또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대상이 된다. 일반적으로 로마시민은 군인들에게 넘겨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십자가형을 받지 않도록 법적으로 보호되었다.

십자가형의 종류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초기 십자가형은 나무나 수직으로 세운 기둥에 죄수를 그냥 묵었다. 이것은 죄수의 발이 신성한 땅에 닿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후 형을 집행하기 위한 십자가는 수직의 기둥과 수평의 가로목으로 짜여졌으며 여러가지 변형된 모양의 십자가 형틀이 점진적으로 만들어져 나오게 되었다. 역사학자들은 그리스도시대의 팔레스타인에서 로마인들이 T자형의 십자가를 선호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지역적인 특성에 맞춰보면 라틴형 십자가나 그와 다른 형태의 십자가로 이미 복합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처형방식
버림을 받은 죄수는 자신이 고통을 받아야 할 십자가 형틀을 정문 밖에서 처형이 될 집행 장소까지 어깨에 지고 가는 것이 관례였으며 죄수는 발가벗겨졌다. 십자가의 전체 무게는 136kg이나 되기 때문에 가로목만 가지고 가게 하였다. 가로목은 34~57kg의 무게를 지녔으며 죄수의 목덜미를 가로질러 고정시켰고 두 어깨로 균형을 유지하도록 했다.
십자가형 행렬은 백부장과 로마군인들에 의해 인도되었다. 이때 군인 중 한 사람이 죄수의 이름과 죄목을 적은 표지를 가지고 갔다. 나중에 그 표지는 십자가 꼭대기에 붙여 놓게 되며 로마군인은 죄수가 최종적으로 죽었음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십자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죄수가 십자가 위에서 꼭 죽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죽음을 재촉
한편 발에는 발기둥과 발지지대에 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못이 박혔다. 이것을 위해 무릎관절은 굽어져야 했고 굽어진 다리는 측면으로 회전되어지기도 했다. 못박음이 끝난 후에는 표지가 십자가 꼭대기 죄수의 머리 위에 붙여진다. 이때 군인들과 시민군중들은 죄수를 야유하고 조롱했고 군인은 죄수의 옷을 나눠 가지곤 했다. 십자가의 생존시기는 채찍질 정도에 따라 서너 시간 혹은 3~4일 정도였다. 채찍질이 부드럽거나 약했을 때 군인들은 죄수의 무릎 아래 다리를 부러뜨림으로서 죽음을 재촉하기도 했다. 또한 죄수의 상처나 눈, 귀 등을 곤충이나 새들이 와서 파고 찢고, 동물들도 물어뜯을 수 있도록 시체를 방치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러한 고통의 십자가를 예수님이 지신 것은 아들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심을 나타내시는 증거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으로 보내시고 처절한 죽음을 맛보게 하셔서 우리가 천국의 시민이 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송재동목사(한국기독교회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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