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상태바
'때'
  • 강석찬 목사
  • 승인 2017.08.17 10: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석찬 목사·예따람공동체

입추가 지나더니, 어김없이 아침저녁으로 언제 끈적끈적한 습도 높은 무더움이 있었느냐고 하며, 신선하고 서늘한 기운이 새벽 옷깃을 여미게 한다. 한낮이야 따가울 정도로 뜨겁지만, 씨앗들 영글게 하는 볕이니 투덜거릴 이유가 없다. 자연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만들어 두신 질서에 따른다. 기다리고 있으면, 황금벌판에서 고개 숙인 벼를 만날 것이고, 푸르렀던 산들은 오색찬란한 빛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때’를 자연에 두신 하나님의 섭리가 오묘하다. 자연만 그럴까? 우리나라의 해방은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선물이었다. 6.25의 고통의 때를 지나게 하시고, 오늘의 번영도 허리띠 줄이며, 부지런하게 살았던 지난 세대들에게 허락된 ‘때의 열매’이다.

Come September! 9월이 가까이 오면, 몸이 근질근질해지는 분들이 있다. 각 교단의 총회를 앞두고 출사표를 던진 분들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9월 총회가 지난 후, 교단을 대표한다는 그 분들로 인해 부끄러운 일들이 가십꺼리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게 일어나곤 했다.

요즘 별 네 개의 자리에 앉은 분의 이야기가 기독교를 창피하게 하고 있다. 고려대 명예교수 서지문교수의 글을 보면, “군 복무를 2년 내내 지휘관 가족의 몸종, 머슴 노릇을 하다가 마치는 공관병(公館兵)들의 사연은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자아낸다.” “이번에 그 비행이 알려져서 비난 대상이 된 육군 대장의 가족은 새벽 기도에 열심히 출석하는 크리스천이었다는 사실이 더욱 아이러니컬하다.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과 자신들의 행위 사이에서 아무런 괴리를 느끼지 않았을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서지문의 뉴스로 책읽기 (60)에서 인용)

물론 그들 가족이 기독교 전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육군 대장 자리가 누구나, 아무나 앉는 자리가 아니다. 수많은 직업군인이 별을 따 보려고 소망하고, 열심을 다하고 있음을 생각해 볼 때, 그들은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허락해서 얻은 자리라고 고백했을 것이 분명하다.
한 교단을 대표하는 총회장이란 자리 역시, 누구나 허락되는 자리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자리는 ‘때’가 되어 허락되는 자리임에 분명하다. 문제는 총회의 계절이 가까이 오면 “내 때다”라며, 출사표를 던지는 분들이 많다는데 있다. 그 ‘때’가 자연처럼 무르익어 하나님의 질서에 순종한 열매인가? 아니면 ‘셀프(self) 때’인가?

예수님은 “때가 찼기에”(막 1:15) 하나님 나라 복음을 위하여 세상에 나오셨다. 하나님의 때를 아신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목사가 되고, 일생을 살아 온 걸음이 분명할 터이니, “내가 총회장이 될 때야!”라고 출사표를 던진 분들은, 먼저 자신이 혹시 ‘함량미달’은 아닐까?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가까운 이들도 그분들이 혹시 명예욕에 사로잡혀 거금을 들여 정치를 하려 한다면,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면서라도 만류하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시론자는 출사표를 낸 분들께 드리는 부탁의 말이 있다. 주님의 교회를 대표하는 자리에 서는 자신이 손가락질 받을 일은 하지 않았는지? 예수님을 닮으려 나누고 나누며 가난한지, (그렇게 살았다면 출마의 비용이 없어야 옳다) 고급 승용차에 앉아 수많은 교인들 위에 군림하는 자신은 아닌지 맑은 눈으로 살펴보기를 바란다.
이번 가을 총회에서 ‘하나님의 때’가 되어 존경받는 총회장이 선출되는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