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낸다는 것은 무거운 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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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낸다는 것은 무거운 결단
  • 정성진 목사
  • 승인 2017.06.14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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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 목사·거룩한빛광성교회

누군가 고전 중에 고전을 뽑으라면 필자는 단연 사마천의 「사기」를 뽑고 싶다. 인문 중심으로 편찬된 최초의 역사서이자, 위인들의 인생철학을 담은 철학서이고, 삶과 죽음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한 문학서이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사기를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시련을 당했다. 한 무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48세의 나이에 궁형(宮刑, 생식기를 절단하는 형벌)을 받았다. 당시 목숨을 잃는 것보다 치욕스런 순간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사기를 완성하기까지 쉽게 목숨을 버릴 수 없었다. 당시 억울한 심경을 친구 임안에게 보내는 편지 <보임소경서>에 담았다.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사람의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이것은 죽음을 쓰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人固有一死 或重于泰山 或輕于鴻毛 用之所趨異也)”

이는 현실의 치욕을 이기지 못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벼운 죽음을 택하기보다 삶의 의미이자 목표인 역사저술을 위해 천금과 같은 삶을 살겠다는 사마천의 의지가 담겨 있다.

사마천 뿐 만이랴, 인류 문화사에 남을 명작들은 예외 없이 인생의 고난을 이겨낸 사람들의 고뇌에서 탄생했다. 또한 세상을 바꾼 이들 역시 삶을 선택하며 묵묵히 그 길을 걸은 결과이다.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인생은 크고 작은 파도를 맞아가며, 견디는 것이 우리네 인생일지 모른다.

이 시대는 죽음이 가벼운 시대이다.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처럼 자살이 유행처럼 돌고 있다. 사람이 막다른 길에 몰렸을 때 억울함을 호소하며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마음 아픈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 가난과 외로움으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의 명을 끊을 만큼 절박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어설픈 충고의 말은 무례하기 쉽다. 그럼에도 수백 번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더 쉬웠을 고난과 치욕 속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았던 사마천의 이 말이 위로가 되지 않을까?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말씀만 하지 않으셨다. 실제로 이 땅의 삶을 살아내어 고난에 참여하셨고, 삶으로 위로의 손길을 내밀어 주셨다.

다시 살아내기로 결단해보자.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신 분이시다. 우리를 이 땅에 부르신 주님의 뜻과 목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혹시 나에게 찾아온 아픔과 상처가 내 삶의 목적을 흔들어 놓는가? 조정민 목사의 고백을 들어보라.

내 상처가 나으면 나는 이제 백신입니다. 나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는 특효약입니다. 주위를 살피면 오직 나만이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정민, 사람이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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