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물어내면 되잖아!” (Don’t worry, We’re going to pay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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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물어내면 되잖아!” (Don’t worry, We’re going to pay you.)
  • 정석준 목사
  • 승인 2017.05.3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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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의 시사영어-30

옛날 고등학교의 검정교복, 풀어서 채우지 않은 칼라(collar) 사이로 하얗게 드러난 와이셔츠 깃은 참 부티가 났다. 몇몇은 그룹을 지어 일부러 그런 모습을 하고 다녔다. 물론 학생복장 위반이었다.

일부러 지각하고, 교실 뒤에서 떠들고, 공부하는 아이를 놀리고, 심지어 동급생의 돈까지 빼앗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마치 엘리트인양 우쭐거렸다. 당연히 동네 부잣집 아이는 단골회원이었고, 공부 못하고 가난하지만 비위 좋은 넉살꾼은 같은 패라는 소속감으로 몰려다녔다.

영국 최고의 자제 층들만이 가입할 수 있는 모임이 있었다. “라이엇 클럽” 이라 불렸던 이 회합은 상류사회의 ‘갑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영화이야기이다.(The Riot Club is a 2014 British drama film directed by Lone Scherfig and written by Laura Wade.) 그러나 실화를 각색해서 사회에 경각심을 준다는 의미로 제작된 이 영화는 정말 관객들로 하여금 치를 떨게 하고,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를 떠안게 했다. 

이 영화의 포스터 전면에 헤드라인으로 장식된 문구 “filthy(더럽고), rich(부유하고), spoilt(버릇없고), rotten(부패한).”들은 이미 이 영화의 줄거리를 말하고 있다. 그룹모임을 빙자하면서 그들은 시골의 한 레스토랑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는다. 손님들이 자릴 뜨게 하고, 술에 취해 기물을 파괴한다.

그리고 항의하는 주인에게 교만스럽게 늘어놓은 대사중 하나가, “걱정마라, 우리가 다 물어낼게, 우린 항상 그래. (Don’t worry, We’re going to pay you, We always pay.)”이다. 특유의 ‘polish(전형적인 영국식 액쎈트)’ 억양으로 내뱉는 말투는 ‘신사의 나라’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킨다.

‘정당방위’를 내세워 ‘불기소’처분을 받고, 주동자는 오히려 정치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다만 그룹의 원래 이름이 ‘riot(폭동, 소요, 시위.)’가 아니라, ‘ryot(농부, 경작자, 소작인.)’이었다는 선배의 마지막 말이 뒤숭숭한 여운을 가질 뿐이다.  
 
국내영화 ‘베테랑’과 비슷한 줄거리다. 언제나 상위 1퍼센트라고 생각하거나 주장하는 이들은 그들만이 이 사회에 큰 업적을 쌓고, 가난한 이들을 먹여 살리며, 선택 받은 고상한 삶을 산다고 자위한다. 그리고 그 대가로 무슨 짓을 해도 사회는 이를 용납해야 한다고 믿는다. 

무엇인가 이 사회에 큰 것을 남겨보겠다고 하면 할수록 감당할 수 없는 악행이 자행되는 일은 어쩌면 영원히 풀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모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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