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기수문화, 버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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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기수문화, 버릴 때가 됐다
  • 서진한 목사
  • 승인 2017.05.2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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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한 목사·대한기독교서회

새 정부가 출범했다. 문재인을 좋아했든 싫어했든, 문재인 대통령의 새 정부는 엄연한 현실이 되었고, 국정수행 지지도가 80%를 넘어섰다. 허니문 기간임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높은 수치다. 문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 중에서도 다수가 대통령이 잘한다고 보고, 또 잘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개혁과 함께 통합을 내세웠다. 그 개혁 대상 일순위는 검찰이다. 검찰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검찰의 첫 인사는 윤석렬 대전고검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 일로 세간이 시끄럽다. 그가 박근혜 정권 초기, 국정원이 대통령선거에 개입한 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을 ‘원칙대로’ 수사하다 좌천당한 강골검사이기 때문이다.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은 국정농단 사건 특검 수사팀을 이끌었던 인물을 서울중앙지검의 책임자로 앉히는 데 대해 경계심을 강하게 드러냈다. 일각에서는 임명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기도 한다. 설왕설래할 만하다.

하지만 시끄러운 것은 그 때문만이 아니다. 서로 입장이 다른 언론들이 한목소리로 합창하는 것은 ‘충격적인 기수 파괴’다. 검찰은 철저히 기수 서열에 따른 상명하복 조직인데, 전임자보다 5기수나 낮은 23기 윤석렬을 요직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으니, 그 위의 기수들은 다 옷을 벗으라는 뜻 아니냐고 난리다. 검찰 조직은 매번 새로운 검찰총장이 임명되면 그 윗기수들은 검찰을 떠났다. 후배 기수 총장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뜻도 있지만, 후배 기수 아래서 일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검찰이 내세우는 ‘기수’란 무엇인가? 사법고시를 합격하면, 사법연수원에서 2년간 법조인 연수를 받게 되는데, ‘기수’란 그 연수원 입학의 기수를 뜻한다. 일반인의 상식에는 낯선 일이다. 검사직을 수행하는 데 연수를 언제 받았는가 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하거나 결정적일까? 한번 기수가 늦게 되면, 검찰 조직에서는 영원히 아랫사람이 될 수밖에 없단 말인가? 훌륭한 경력이 있어도, 능력과 인품, 통솔력이 뛰어나도, 혹은 나이가 많아도 끝내 기수의 벽은 넘을 수 없단 말인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윤석렬은 서울법대 4학년 때 사법고시 1차에 합격하고도, 2차에서 떨어져 최종 합격에 9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러니까 법대 학번은 웬만한 연수원 윗기수들보다 훨씬 높다. 그러나 검찰 기수 앞에서는 학번도 맥을 못 추는 것이다. 이 기수문화가 검찰의 왜곡된 상명하복 풍토에 일조했다.

살아온 세월과 경륜이 기수보다 더 근본적이다. 능력과 자질이 기수 서열보다 더 중요하다. 그것이 선진 민주사회의 기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벽이 없고 차별이 없는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라면, 차별과 벽이 있으나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사회가 현실의 민주사회다. 그것이 또한 기독교신앙에 합당한 사회다.

인간 생명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기수는 사회적 발전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사회적 제도와 구조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생명의 관점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동등한 가치를 가지며,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을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새 정부의 파격인사에 조직적으로 맞설 게 아니라, 검찰이 스스로를 돌아보아 기수 서열주의 문화를 극복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검찰만 아니라, 신앙인인 우리도 교회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서열문화를 성찰하고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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