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 경제 고민하는 목사님, 함께 걷는 신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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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경제 고민하는 목사님, 함께 걷는 신앙인
  • 의정부=이인창 기자
  • 승인 2017.05.2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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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일자리 만드는 협동조합 ‘살길’

한국교회 소통의 현장을 찾아서 ⑫

“돈이 돈을 버는 사회를 바꾸고 싶었습니다. 큰 기업들은 문어발식으로 확장하지만 영세 상인들은 가난의 굴레를 벗기 힘든 지경입니다. 노력을 해도 소득은 오르지 않고 가족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아요. 그래서 작은 자본들을 모아 기업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알뜰살뜰 분배해 가면서 함께 사는 구조를 만들어 가보자는 것이었죠.”

목회 은퇴까지 이제 몇 년 남지 않은 의정부 송암교회 박남수 목사는 협동조합에 주목했다. 안락한 목회는 애초에 생각조차 없었다. 그래서 도전했다. 모든 조합원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 협동조합에서 상생의 모델을 발견하기로 했다. 

그리고 딱 1년 전 송암교회 교인들과 주변 지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협동조합 ‘살길’을 출범하고 사업장 하나를 일궜다.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 피자 파스타 전문점 ‘로산젤라’ 1호점이다. 

“교회에서 피자파스타 매장을 열었다고?”
일단 협동조합을 시작했는데 피자 파스타 전문점을 운영한다는 목회자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기약만 하다 마침내 박남수 목사와 연락이 닿아 ‘로산젤라’를 방문한 것은 지난 18일. 지하철 1호선 녹양역에서 1Km 정도 떨어진 ‘로산젤라’ 매장의 위치는 좀 당황스러웠다. 피자와 파스타가 팔릴 만한 곳이 아닌 것 같았다. 

의정부에서도 변두리, 그것도 주택가에 매장이라니…. 매장 주변은 다소 황량하기까지 했다. 그나마 5월의 가로수에 드러난 녹음이 시원한 느낌을 주어 다행이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손님이 많다. ‘로산젤라’는 모든 문이 시원하게 젖혀 있었다. 매장 안 테이블과 테라스 테이블에 손님들이 차고, 인근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2층 세미나실까지 이용하고 있었다.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 이래서일까? 그래도 그렇지, 도무지 영업이 될 것 같지 않은 피자 파스타 매장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방문에 앞서 찾아본 여러 블로그에 소개된 것을 보면 음식 맛이 꽤 괜찮은 듯 했다. 실제 주문해 먹어봐서도 훌륭했다. 

마주앉자마자 박 목사에게 협동조합을 만든 이유를 물었다. 그는 교회 밖에서 상생의 경제구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녹양동은 예전부터 가난한 동네예요. 주민들이 일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협동조합을 생각해 냈습니다. 미취업 청년과 경력단절 여성들이 일을 하는 곳을 만들려고 고민했고, 지인이 이태리에서 배운 요리방법을 전수해줘 로산젤라를 열게 됐습니다.”


설명하는 박 목사의 연륜에서 전해지는 차분함과 평온함이 인상적이다. 주방에는 실제 청년과 중년여성들이 일하고 있었다. 운영 노하우를 배우는 교육생들까지 있었다. 

양주 2호점에 이어 조만간 3호점을 준비 중인 교육생은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두다 박 목사를 알게 되었고 오픈을 앞두고 운영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출범 일 년만에 3호점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고용창출 효과는 분명하게 이뤄가는 듯 하다. 

이날 만난 메인 셰프로 일하는 안민세 청년은 메뉴 개발로 고민이라고 했다.  
“손님들이 맛있다고 하시지만, 간혹 불평하시는 분들도 분명 있거든요. 더 많은 손님들이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 늘 고민이예요. 앞으로 새로워져야 할 것들이 더 많아요.” 청년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고 했다. 

전금주 조리팀장은 “예전에는 직장생활을 했지만 아이들을 키우다보면서 새 일자리를 찾는 것이 어렵더라구요. 여기에서 일 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되고, 보람도 큽니다”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 의정부 송암교회 박남수 목사가 ‘로산젤라’ 매장에서 조합원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송암교회, 3년 동안 사회적 경제학교 운영
협동조합 ‘살길’의 문을 여는 데는 120명 남짓 송암교회 교인들이 뜻을 모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담임목사가 교회 밖 사역을 할 수 있도록 교인들은 이해주었다. 조합원으로 출자도 했다. 하지만 교회 재정을 사용하지 않고, 조합원들이 직접 출자하는 기본원칙을 지켰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송암교회가 이미 3년 전부터 교회 안에서 사회적 경제학교를 운영했기 때문이다. 교인과 지역주민 40~50명이 매주 교회에서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에 대해 배웠다. 처음에는 왜 이것을 교회에서 배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협동조합이라고 하면 농협 정도를 알지만 그 가치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죠. 공부하니까 우리 교인들도 좋은 것인 줄 알고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박 목사가 협동조합 ‘살길’을 열겠다고 했을 때 교인들은 조합원으로 기꺼이 가입했다. 박 목사는 목회자연금까지 받아서 출자금으로 넣었다. 그래도 협동조합 정신에 따라 한 사람당 의결권은 한 표이다. 

박남수 목사 개인적으로는 신한대 평생교육원에서 사회적경제 창업교육 과정,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협동조합 전문가과정을 배우며 준비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협동조합 가치는 정말 좋은 것이지만 운영은 만만치 않다. 의결권이 동일하다보니 주장들이 부딪힐 때도 있다. 갈등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로산젤라는 지금까지 잘 극복해오며 성공적인 길을 걷고 있다. 

현재 협동조합 ‘살길’의 이사장은 박 목사의 큰딸 박애린 집사가 맡고 있다. 박 목사가 창립당시 경인기장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어서 딸에게 사실상 떠넘겼다. 가족이 다 해먹는다(?)고 비판도 들을 수도 있지만, 박 이사장은 손사레를 친다. 

“요즘 아버지에게 왜 이런 힘든 일을 벌였냐고 하소연을 합니다. 매장에서 일하고 조합 보고서 만들면서 바빠요. 사람들의 불평을 듣기도 해야 하고요. 직접 돈을 가져가는 것도 아닌데 왜 온가족이 이 일을 하나 싶기도 해요. 그래도 좋은 뜻을 가지고 묵묵히 감당하는 아버지가 참 존경스럽죠. 그러니까 매일매일 이렇게 나와서 같이 걷는거죠.”

기자가 방문했을 때도 박 이사장은 매장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박 목사의 사모는 매장 분갈이를 한다. 다른 가족들은 주말에 나와서 매장 일을 돕는다. 삶의 가치와 신앙인의 역할을 아는 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년 사이에 매장이 세 곳으로 늘어나 20여명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최근에는 경기도 따복공동체 창업사업장 오디션에서 1등을 해 1천만원 상금을 받으며 가능성도 인정받았다. 

삶의 궤적으로 사역이 설명되는 목회자
박남수 목사가 지역사회를 위해 사회적 경제를 생각한 동인은 무엇일까. 그의 삶의 궤적이 이유를 잘 설명한다. 박 목사는 1970년대 암울했던 시대부터 사회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민주화운동을 하다 대학에서 제적을 당할 정도로 사회문제에 관심이 컸다. 

지금의 겉모습과 다르게 당시 그는 젊은 투사와 같은 면모를 지녔다.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수배를 당하면서는 어린 노동자들을 위해 교육전도사로 있던 교회 교육관을 빌려 야학 ‘시정의 배움터’를 만들었다. 그 역사가 이어져 후배들에 의해 ‘형제야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다행히 박 목사는 지난 2013년 재심 끝에 무죄가 선고돼 명예를 회복했지만, 한때는 학생운동 전력으로 교회 청빙이 쉽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1985년 당시 37살 나이로 교인 1천명이나 되는 서울시내 모 교회에 청빙을 받아 7년간 사역한 경험도 있다. 이후 총회본부 등에서 사역하다 부르심을 따라 1994년 교단파송 독일 선교사로 떠났다. 

독일에서 경험은 박 목사가 사회적 경제에 본격적으로 눈으로 뜨는 전기가 됐다. 그는 기장교단 소속이면서 독일 EKD 교단의 지원을 받았다. 동시에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을 위한, 지금 식으로 말하면 외국인근로자교회에 해당하는 한인교회 세 곳이나 담임했다. 

그는 그 과정에서 8년 임기 동안 독일교회가 사회적 경제를 위해 어떤 사역들을 하는지 직접 보고 듣고 경험했다. 그것이 지금의 사역을 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 특히 독일교회의 경우 디아코니아 사역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잘 발달해 있다. 

박 목사는 앞으로 선한 일을 하는 현장을 소개하는 미디어를 하고 싶다는 꿈도 지녔다. 다른 사회적 경제 아이템도 준비 되는대로 더 적용해 간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기반을 마련해주는 협동조합 이야기를 다루는 사회적 경제방송을 하고 싶어요. 주류 언론들이 작은 곳에서 선한 일을 하는 현장들을 도외시하는데 그런 현장을 발굴하고 싶습니다.”

로산젤라 영업실적도 더욱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사실 지난해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사태 중에는 다른 가게들처럼 크게 매출이 줄기도 했다. 하지만 탄핵정국이 마무리되면서 매출 상승세가 호전되고 최근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면서는 더 많은 손님들이 찾고 있다. 

매장을 오픈한 이후 별다른 홍보광고를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좋은 일을 하는 가게, 목사님이 하는 가게로 입소문을 타면서 단골손님이 크게 늘었다. 6월에는 매출액이 균형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박 목사는 “경력단절 여성과 취업이 어려운 청년들에게 기술을 전술하고, 필요하면 창업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가 돼 줄 것”이라며 “협동조합 살길은 삶의 진로를 준비해가는 플랫폼이 되어주겠다는 목표를 흔들림 없이 이뤄가겠다”고 각오를 다시 한 번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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