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버릇없게 키워라!” (Raise your son as a naughty 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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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버릇없게 키워라!” (Raise your son as a naughty boy!)
  • 정석준 목사
  • 승인 2017.04.1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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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의 시사영어 27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예쁜 가방을 등에 메고 어린 소녀처럼 상기된 얼굴로 현관을 빠져나가는 아내의 인사이다. 최근 ‘조경사’ 준비를 하고 있는 그녀는 늙어 무능력해 지는 안타까움을 각종 자격증시험에 도전함으로 극복해 내고 있다. 

남편 목회의 뒷바라지로 환갑을 넘기고도 여전히 건강하고, 아직도 청춘의 열정이 있음에 감사해 한다. 대학원을 보내준 것도 아닌데, 꼬박꼬박 인사하는 그녀가 봄날보다 더 따뜻하고 사랑스럽다.  

“길에 떨어진 물건이 있어도 누구도 집어가는 사람이 없었다. 도둑이 사라졌기 때문에 행상인과 여행자들이 안심하고 노숙할 정도였다.” 혼란한 시국을 수습해 중국을 통일하고 당나라를 세운 당태종(He was the second emperor of the Tang dynasty of China.) 때의 이야기다.

연호를 정관이라 바꾸고 그의 치세기간에 국력이 강성하고 경제적인 최고의 번영기를 누려 소위 ‘정관의 치(His era, the ‘Reign of Zhenguan’ is considered a golden age in Chinese history.)란 말이 그 때 나왔다.

‘인류, 인간성, 인간애’ 등을 나타내는 영어 ‘Humanity’가 있다. ‘인간의 본성’이라는 의미의 라틴어 ‘후마니타스(humanitas)’에 기원을 둔다. 이를 복수형으로 해서 ‘인문학(Humanities)’이 생겼다.

사전적으로 “인간과 인간의 근원문제, 곧 인간의 사상과 문화에 관해 탐구하는 사색적 학문이다.(Humanities are academic disciplines that study aspects of human culture.)” 그리고 정말 쉽고 간단한 이해는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사색적 몸부림이다.’ 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5세기 중반 철학사상가이자 교수였던 ‘소피스트(sophist)’들이 젊은이들을 도시국가에 걸맞는 시민으로 육성하기 위해 실시했던 교육과정을 일컫지만, 사실 ‘인문학’ 형성의 유래는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고대인들은 오직 하나님 품안에서의 은혜에 만족했다. 그런데 그 시작처럼 이제 ‘인문학’이란 ‘하나님의 구속과 은총’에 대한 해방과 그에 따른 ‘인간의 자유’로 자리매김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도 ‘인문학 열풍’이 불더니, 급기야 “버릇없는 아이로 키우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자기 멋대로 하게 내버려둬야 창의력이 길러지고 무슨 일이든 해낸다는 논리이다. 철학가다운 발상이다. 그러나 다시 창조주 하나님을 인간 역사에 모셔드릴 때에야 비로소 사람은 정말 행복해 질 수 있고 존귀하게 여김을 받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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