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파면과 사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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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파면과 사순절
  • 서진한 목사
  • 승인 2017.03.17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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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한 목사·대한기독교서회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향해 가신다. 그 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권력자들의 손에 넘어가 죽임을 당할 것임을 세 번씩이나 말씀하신다. 부활을 언급하지만, 처형이 주음(主音)이니, 그 분위기는 비장하고 어둡다. 베드로가 놀라 안 된다고 항의하다가 호된 꾸지람도 듣는다. 그럼에도 예루살렘 성이 가까워오자, 제자들은 그곳에 들어가면 누가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인지를 놓고 다툼을 벌였다.(막 10:35~41)

참 어이없는 일이다. 그들은 스승의 말씀을 들었으나, 듣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스승이 하고픈 말이 아니라, 자신들이 듣고픈 말만 들었다. 스승은 ‘십자가’를 말했는데, 제자들은 ‘영광’만을 들었다. 결국 유다는 스승을 배신하고, 베드로는 부인하고, 다른 제자들은 뿔뿔이 도망치고 말았다.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판결 주문(主文)이다. 헌재는 판결문에 선고 날짜만 아니라 그 시각을 ‘11시 21분’으로 명기했다. 대통령 직무의 엄중함 때문에, 그 직무와 권한이 끝나는 때를 정확하게 명시한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민간인 신분으로 국가 최고 보안시설에 머문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사흘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청와대 퇴거에 온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청와대의 전언으로는, 박 전 대통령은 탄핵 인용 결정이 나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탄핵 인용 사태에 대해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참 어이없는 일이다. 여론조사나, 검찰과 특검의 수사결과를 보지 않더라도, 탄핵 인용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재판 선고를 예단할 수 없음은 일개 범부도 안다. 그러니 그 많고 유능한 비서진 그리고 대리인 변호사들은 대통령에게 모든 가능성을 보고하고, 각각의 사태에 대비하게 했어야 했다. 그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니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대통령을 보좌하고 대리한 사람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들만을 비판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 누구도 대통령에게 탄핵이 인용될 수도 있다는 등의 심기를 건드리는 말을 감히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여당과 청와대 주변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주위에서는 탄핵이 기각 혹은 각하될 것이라는 말만 했고, 대통령은 그것을 굳게 믿었다고 한다. 결국 보좌진과 대통령 사이에는, 해야 할 말이 아니라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허용되었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듣고 싶은 말만 들으면, 주위에는 쓴 말은 사라지고 단 말만 남는다. ‘아니오’라 할 사람은 사라지고, ‘예’라 할 사람만 남는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임기 내내 이어진 것도 그 탓이다. 대통령이 불편하거나 듣기 싫은 말도 들을 수 있었다면, 농단은 감소하거나 중단되었을 것이다.

사순절, 주님의 수난과 십자가를 생각하며 참회하는 절기다. 그래서 사순절의 시작은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는 ‘성회(聖灰) 수요일’ 혹은 ‘참회 수요일’이다. 신앙인들은 쉽게 ‘회개’나 ‘참회’를 말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혼자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허물은 진리의 빛 앞에서만 온전히 드러나기 때문이며, 우리는 우리 잘못을 깨닫기에도 부족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보고픈 것만 보고, 듣고픈 것만 듣는다면, 끝내 진정한 참회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성경을 보고, 온갖 좋은 말을 들어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개인만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다. 한국교회가 아무리 종교개혁을 외쳐도, 비판과 비난, 고언과 충언을 들을 귀가 없다면, 개혁조차도 자기 하고픈 일 중 하나를 하는 데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순절기를 지내며, 대통령 파면을 지켜보며, 자꾸 스스로를 흘끔흘끔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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