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발흥과 임시응변 대처
상태바
이단발흥과 임시응변 대처
  • 승인 2003.11.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교회의 많은 문제점들 중에 하나가 이단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사실 한국교회의 역사를 보면 교회의 부흥과 성장 만큼이나 이단의 발흥 또한 적지않았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일부 교단의 발표에 의하면, 대표적 이단 단체들과 기타 군소단체들을 합해 100여개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는 그동안 이들이 교회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과 피해가 상당했음을 잘 알고 있으며 지금도 이단의 발흥은 계속되고 우리 주변에서 활개치고 있다. 따라서 항상 교회의 숙제였던 이단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어떠한 이유로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의 무리들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이단으로부터 진리를 수호하는 일은 교회의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다. 이 문제에 있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과연 그동안 이단에 대한 규정과 정죄가 충분한 성경적 검증과 신학적 토대를 거쳐 이루어졌는가 하는 점이다. 교회사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이단논쟁의 역사는 시기와 모함과 질투의 역사였다.

마틴루터는 예수그리스도가 세워놓은 진리와 교회의 전통을 부인하고 훼손시키는 로마가톨릭에 대항하여 종교개혁 운동을 전개하여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지만 종교개혁은 본격적인 이단논쟁이 시작되는 계기도 됐다. 종교개혁자들 간에 신학적 신앙적 견해로 인한 성경해석의 차이는 결국 파벌이 형성되는 원인이 됐고 루터파 칼빈파 즈빙글리파 멜랑히톤파 등으로 나뉘어지는 형국이 됐다.

하지만 이같은 분열은 논쟁으로 진행됐고, 처음의 순수성과는 거리가 먼 세력확장과 영향력 확대의 치졸한 내부의 영역다툼으로 변질됐으며 결국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무서운 싸움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루터파는 재침례파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칼빈파는 삼위일체에 대한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셀베루스를 화형에 처했으며, 즈빙글리와 루터는 성례전에 대한 의견대립으로 적이 되어야 했다.

하기야 사도 바울도 나사렛 이단의 괴수로 고발 당했던 점을 상기해 보면, 이단의 정죄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하고 의견이 다른 반대자들을 숙청하기 위한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었던 셈이다. 중세의 이러한 이단논쟁은 오늘날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그동안 우리 한국교회의 이단연구는 이단의 발흥과 준동에 비해서 매우 미미했고 그마저도 몇몇 개인의 생각과 판단에 의존한 취약한 점 때문에 불합리한 요소들을 안고 있었다.

이단의 규정과 정죄는 성경에 의해 보다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 나하고 견해 차이가 있고 시각차이가 있다고 해서 이단으로 매도한다면 한국교회 목회자 치고 그 누가 이단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사소한 견해 차이나 성경해석의 차이를 갖고 무조건 이단으로 매도해서는 않된다고 본다.

교정과 권면으로 온전한 복음으로 돌아오도록 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단의 문제는 우리 한국교회의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이단으로 정죄당한자들은 배척과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온전한 복음안에 인도돼야 할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다.

/목사·샛별교회 담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