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손으로 그린 편견없는 세상-수화동아리 말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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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손으로 그린 편견없는 세상-수화동아리 말그리기
  • 승인 2001.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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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낮의 지하철 7호선. 젊은이들 5~6명이 무언가 적힌 종이를 승객들에게 나눠준다. 그리곤 이내 한 여학생이 승객들을 향해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오늘 저희들이 여러분들께 간단한 수화를 알려 드리려고 나왔습니다. 나눠드린 종이를 보시면 간단한 기초 수화가 적혀 있어요. 저와 함께 해보실래요?” 여학생은 말을 마치기 무섭게 한글 자음과 모음을 수화로 전한다. 쑥쓰러운 듯 구경만 하고 있던 승객들은 어느새 손가락을 펴들고 여학생을 따라 움직여 본다.

“이번엔 자기 이름을 한번 써보세요. 그리고 간단한 수화도 한번 따라해 보시구요. 오늘 집에 가셔서 가족들에게 한번 해보시면 좋겠어요.”“엄마, 아빠 사랑해요.” “아들아, 딸아 사랑한다.” 승객들은 손가락을 어설피 움직이며 열심히 따라한다.

“어떠세요. 오늘 가르쳐 드린 수화는 잊지 않고 하실 수 있죠? 여러분 지하철에서 만나시는 장애인들에게 친절히 대해주시구요, 저희는 오늘 하나님을 전하러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마음속에 기쁨이 넘치구요, 너무 행복해요. 여러분도 하나님 믿고 천국에 가시기 바랍니다.”참으로 독특한 전도방법이다. 지하철 전도나 노방전도를 떠올리면 미간부터 찡그리게 되는데 이 청년들의 모습은 지하철 승객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한국성서대학 수화동아리 <말그리기>. 하나님을 위해서 얼굴에 두꺼운 철판(?)을 깔고 전도에 나선 주인공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기독교가 어떤 것인지 구구절절 선전하지 않아도 그들의 손짓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밝은 표정이 하나님을 느끼게 한다.
<말그리기>는 92년에 생긴 동아리로 수화를 배우고 자원봉사를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있다. 현재 동아리 회원만 60여명. 성서대학내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곳이다. 동아리 회장 김미현양은 마가복음 7장의 말씀을 통해 동아리의 비전을 설명했다.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처음엔 이 말씀이 맘에 들지 않았어요. 명확한 지상명령이 담긴 것도 아니고, 그런데 말씀을 자꾸 묵상하다 보니 정말 동아리가 해야 할 일이 이 말씀에 담겨져 있는거에요.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려면 수화를 알아야 하거든요.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가면 할 일이 끝나는 것이죠.”그래서 그들의 사명은 전도에 있다. 사탕전도지를 들고 거리로 나가면 노점을 하시는 분들중에 농아인을 많이 만난다. 수화로 몇마디 대화를 나누고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즐겁단다.

지하철 선교는 2년전에 한번 시도했다가 역무원에게 호되게 야단 맞은 뒤 중단됐던 선교방법이다. 아직도 지하철 선교는 불법(?)이지만 <말그리기> 회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지하철로 나선다.
이제 갓 대학에 들어온 새내기 임연희양(인문사회학부 01학번)은 그중에서도 가장 당찬 동아리 회원이다. 지하철에서 사람들 앞에 서려면 떨리기도 할텐데 아마도 무대체질인 것 같다.

“처음엔 창피했는데요, 이제는 안그래요. 사람들에게 수화를 가르쳐 주는 것이 즐거워요.”다행히 최근 모 방송국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농아인으로 나와 수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때문에 지하철 승객들도 거리낌 없이 따라하곤 한다.
<말그리기>는 전도 외에 정기적인 봉사활동도 펼친다. 지난해부터 인근 평화복지관 치매노인들을 돌봐드린다. 수화동아리라는 이름답게 농아인 봉사를 나가고 싶지만 사실 농아인들은 의사소통이 어려울 뿐 육체적인 불편함이 없어 도움이 굳이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매일 누워만 지내는 치매노인들은 어린 학생들이 찾아와 함께 산책하고 이야기하고 안마를 해주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부활주간에는 삶은 계란을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전해 드렸어요. 정말 좋아하시던걸요.”특수선교를 비전을 삼은 사람들. 아직은 세상에 호기심일 많을 법도 한데 이들의 소망은 오직 하나, 예수님의 향기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장애인을 편견없이 보아주는 것도 이들의 소망이다.

이미 장애인사역을 하고 있다는 구선아양(사회복지 2학년)은 “장애인은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는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죠. 선교하는 사람들은 그런 갇힌 사고에서 탈피했는데 일반인은 여전히 자신과 뭔가 다른 사람으로 본다는 것이 더 큰 문제에요. 우리 동아리가 열심히 하면 일반인들의 의식도 바뀔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요.”사진을 찍기 위해 특별한 포즈를 요구하는 기자에게 “주님을 사랑해요”라는 문구를 만들어 보이는 어린 친구들의 해맑은 얼굴에 구김없는 세상이 보인다. 작은 소망을 향해 즐겁게 사역하는 <말그리기>.
이들이 손을 모아 그리는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현주기자(Lhj@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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