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금수저 물고 태어났어! (I was born with a silver spoon in my mo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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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금수저 물고 태어났어! (I was born with a silver spoon in my mouth.)
  • 정석준 목사
  • 승인 2017.02.28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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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의 시사영어 ⑯

고등학교 시절 도시락 반찬에 햄이나 소시지 부침과 계란프라이를 싸왔던 친구가 있었다. 그는 숟갈이나 젓갈 대신에 스테이크를 먹는 삼지창(fork)을 들고 다녔다. 졸업할 때까지 오직 반찬은 김치뿐이었던 나로선 무척 그의 도시락이 고급스러워 보였다.

무엇보다도 국물이 흐르지 않는 마른 반찬, 그것도 먹어보지도 못한 고기반찬이 그랬다. 그의 부모는 동네에서 목욕탕을 운영했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선 늘 부잣집 아들로 불렸다. 교복 안에 당시 하얀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다니던 그는 영락없는 귀공자였다. 

힘써 떼를 쓰는 아들이 안쓰러워 엄마는 몇 번 계란 프라이를 해주셨지만 도무지 그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표현할 마땅한 방법이 없이 살다보니 최근에 다시 등장한 “금수저 흙수저 논란”은 차라리 시원한 해답으로 다가온다.

18세기부터 사용된 말이라는데, 재미있는 것은 당시는 부의 상징이 ‘은’이였기 때문에 영어로는 ‘silver’가 쓰이는데,(The English language expression silver spoon is synonymous with wealth.) ‘은’으로는 심에 차지 않는 우리네들은 드디어 ‘gold’을 사용해 ‘금수저’로 탈바꿈시켰다. 그러나 ‘a gold spoon’ 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원래 시작된 표현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결국 가난한 집의 자녀들이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는 분명함은 “그는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He was born with a silver spoon in his mouth; someone born into a wealthy family)”는 사실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자식들은 부모에게서 이것을 요구하고, 부모들은 어떻게 해서든 이 ‘금수저’를 자식 입에 물려주려고 애를 쓴다.

상당히 긍정적인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단순 논리만 가지고 매달리면서 사회는 늘 큰 사건들이 끊이질 않는다. 심지어 종교인들조차 그 자식 입에 금수저를 물려줄 핑계 삼아 불법을 저지르다 평생 쌓아온 명예와 사명의 부르심에 먹칠을 하고 패가망신하게 됨을 본다.

학생들의 퇴진요구를 완강하게 버티며 본인의 교육정책에 흔들림이 없는 듯 보이던 이화여대 총장도 결국 이 ‘금수저 논란’엔 두 손을 들고 역사에 없는 사퇴를 했다. 누구도 이 세상에 사명 없이 오는 자가 없다. 어른 아이 없이 ‘금 숟가락’에만 매달리지 말고, 있고 없고를 떠나 어렸을 때부터 “상대적 박탈감(comparative Deprivation)”을 잘 다스려가는 지혜와 인내의 끈기를 가르칠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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