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청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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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청진기
  • 여상기 목사
  • 승인 2017.02.2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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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기 목사·예수로교회

시린 마음들이 겨울내음을 품어낸다. 귓가를 스치는 칼바람 속에서도 봄의 생명은 잉태하고 하나님의 침묵은 새로운 역사를 운행하시는 위대한 기다림이 되리라.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고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라, 진정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영적 기갈의 시대다(암9:11). 하나님 없는 행복을 추구하던 사회의 부조리가 민낯을 드러내고, 위정자들의 전횡이 백성의 근심이 되어, 하나님의 한탄을 자아내고 있다.

가짜 뉴스가 봇물을 이루고, 사리에 맞지 않은 공론들이, 정국의 시야를 흐리게 한다. 김정남이 피살되고, 재벌총수가 구속되고, 가파른 정국이 불안해지고, 급변하는 지구촌의 뉴스들은 우리들의 기도를 절실하게 만든다. 열강의 틈새에서 생존의 전략은 언제나 역사적 한계를 드러내고, 경제지표의 지렛대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우리의 생각과 머리에 맴도는 지식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거리의 아우성 때문에 여리고성이 무너지지 않는다. 위대한 꿈을 말하기 전에, 먼저 일상에 소신을 살피고, 범사에 처신을 바로 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믿음의 경륜을 축적해야한다. 신앙은 말과 생각이 아니리 인격의 변화와 삶의 성화에 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음은 말씀에 깊은 뿌리를 내린 복 있는 자들의 형통이다(시1:3).

모름지기 하나님의 말씀이 역사의 다림줄이 돼야한다. 성경은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 하셨다(민14:28). 아직도 우리들의 가슴 속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와 침전된 죄의 잔상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음성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눈물을 회복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는 방법에는 환자의 표정과 피부색 등을 눈으로 관찰하는 시진(視診), 병력을 물어보는 문진(問診), 몸을 두드려보는 타진(打診), 아픈 부위를 만져보는 촉진(觸診) 그리고 내부 장기 소리를 들어보는 청진(聽診)등이 있다. 청진기를 뜻하는 ‘stethoscope’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가슴’을 뜻하는 ‘stethos’와 ‘본다’는 뜻의 ‘skopos’를 합친 것이다. 이는 1816년 프랑스의 의사인 르네 라에네크(René Laennec, 1781~1826)가 심장병을 앓는 비만여성을 진찰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종이를 둘둘 말아 한쪽 귀에 대고 다른 쪽 끝을 환자의 가슴에 대고 청진한 것에 연유한 이름이다.

최근 미국에서 예기치 않은 스키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무남독녀 외동딸을 잃은 한 부모의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그 딸의 장기를 기증하여 5명의 환자에게 새 생명을 찾게 해준 미담이 국내 방송에 소개된 바 있다. 딸의 심장을 이식받아 생명을 구원받은 여인이, 그 딸의 부모를 초청하여, 아직도 살아있는 딸의 심장 박동소리를 들려주는 장면이,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여인의 가슴에 대어준 청진기를 귀에 끼고 그토록 사랑했던 죽은 딸의 살아있는 심장소리를 듣는 아빠의 눈물은 모든 이의 눈물을 자아냈다.

하나님은 지금 한국교회와 우리들의 가슴에 당신의 청진기를 대시고 계신다. 하나님의 청진기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고 있는가. 그토록 듣고 싶어 했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의 박동소리인가. 목이 곧은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의 하모니인가.

셔우드 홀 선교사와 웰본 선교사의 남겨진 유품이 있다. 낯선 땅 이 곳에서 조선인들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기위해 숱한 시간을 동고동락 했을 홀 선교사의 ‘청진기’와 소금배 밖에 다니지 않던 진흙탕 길을 오직 복음을 전하겠다는 일념으로 두 발이 부르트는 줄도 모르고 걸었을 웰본 선교사의 ‘나막신’이 생각난다. 우리는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눈물을 보았는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3:2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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