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눈물은 무거워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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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눈물은 무거워야하는가
  • 여상기 목사
  • 승인 2016.12.1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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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기 목사·예수로교회

“겨울이 지나고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어야 돼. 봄을 기다리고 있잖아. 아무리 추워도 겨울이 안 밉고. 그러고 사는 거지 뭐.” 광화문 촛불 집회로 스산한 서촌 골목에서 수십 년째 과일가게 노점상을 하시는 박영모(77세) 할머니의 독백이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으면 추운 겨울이 밉지 않으시단다. 달관한 노안의 깊은 주름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지혜가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더 깊은 울림이 된다.

성탄을 맞이하는 대림절기다. 믿음은 기다림 속에서 영글어가고, 살아온 경험이 삶의 모판이 되어 다시 자신의 삶을 결정짓게 하는 믿음이 된다. 우리는 지난 한 달 반 사이에 정직한 땀을 흘리며 소박한 행복을 꿈꾸는 이들이 알지 못하는 어둠의 실상과 권력을 사유화한 민낯들과 맞닥뜨렸다.

정의와 의리의 모순 속에서 기형이 된 사회정서의 근본적인 윤리적 혁명을 부르짖는 몸부림이다. 밤새 녹아내린 촛농이 민초들의 눈물이 되었고 성숙한 시민의 위대한 혁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멸치 한 마리 때문에 수평이 무너지듯 아픔과 어려움 속에서도 참고 힘들게 일구어 놓았던 많은 일들에 대해 평가받고 인정받지 못했던 것들을 애통해 하지는 않았던가를 생각해본다. 밥벌이의 지엄함을 알지만 결코 현실에 함몰되지 않고, 어제와 내일에 흩어진 세속의 가시들을 맨몸으로 뒹굴더라도 아직도 시들지 않은 예수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야할 때이다.

지금 우리는 무신(無信)으로 나라가 흔들리고, 불신(不信)으로 민심이 요동친다. 교묘하게 속이는 것 보다는 차라리 옹졸하더라도 성실한 편이 낫고 아무리 훌륭한 거짓이라도 보잘 것 없는 진실보다는 못하다. 거짓이 아무리 빠르다 해도 결국 진실은 그것을 추월하고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아도 해와 달은 자신의 길을 간다. 편법은 다 불법이다. 어리석어도 자기가 어리석다는 걸 몰라서 그래서 탁란(托卵)을 품은 어리석지 않은 자고새의 눈물을 그대는 아는가(렘17:11).

눈물은 그것을 내보이는 사람의 마음의 결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눈물은 그래서 묵직한 중력을 머금고 있다.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는 피눈물도 있다. 설령 눈물을 보일지언정 그 눈물의 무게는 우리가 흘린 그것보다도 훨씬 더 무겁기를 바란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고 배를 엎을 수도 있다. 법은 신분에게 아부하지 않는다(法不阿貴). 정의가 권력이나 부(富)에 의해 농락되기 쉬운 상황일수록 도덕적 정의에 대한 감수성이 체질화 되어야한다. 곧은 것을 굽은 것 위에 두면 굽은 것이 곧아지는 법이다. 순(舜)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사람을 가려내어 고요(皐陶)를 들여 쓰니 탐관(貪官)들이 멀어졌고, 탕(湯)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 이윤(伊尹)을 들여 쓰니 오리(汚吏)들이 멀어졌다고 했다.

역사는 아무도 묻지 않는 것에 대답하는 귀머거리와 같다고 했다. 피와 땀과 눈물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하신 세 가지 선물이다. 예수의 피로 구원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회개의 눈물이 감사의 눈물이 되어, 얼굴에 흘린 수고의 땀이 평생의 식물이 되게 하셨다. 왜 눈물은 무거워야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 나심이 온 누리에 평화와 위로의 메시지가 되게 하소서. 메리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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