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을 나누며 사는 것, 그게 가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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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나누며 사는 것, 그게 가족이죠"
  • 승인 2003.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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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자녀 키우고 기도로 두딸아이 입양한 - 이 준 희 집사
“곰 세마리가 한 집에 있어 아빠곰 엄마곰 애기곰~” “우리집은 곰이 여섯마리야, 엄마 아빠, 오빠, 언니, 은지, 그리고 나 예지.” 아이들의 재롱에 집안에는 웃음꽃이 끊이질 않는다. 21개월된 은지가 이제는 제법 “엄마~, 아빠~”하며 말을 시작한다. 하나님이 주신 또 다른 삶의 시작. 그것은 입양이라는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송파구 석촌동에 위치한 작은 빌라에는 예지네집이 있다. 샤론피아노교습소 간판이 붙은 이곳에 여섯식구가 살게 된 것은 불과 3년전의 일이다. 엄마 이준희집사(47·송파제일교회)의 느닷없는 입양계획에 반대하는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2000년 1월1일 새천년이 시작되는 기대감으로 모두들 들떠있을 때 이준희집사 가족 역시 영종도로 나들이를 나갔다. 길이 막혀 꼼짝없이 서있는 도로에서 이준희집사는 “우리 입양하자”고 말을 꺼냈다. 갑작스런 제안에 모두들 의아했지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사실 이집사가 입양을 놓고 기도한 것은 이보다 훨씬 전이다. 30대중반에 뒤늦게 하나님을 알아 신앙생활을 시작했을 때 이유없이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자궁을 적출하는 대수술까지 하고서도 몸은 나아지지 않았다. 단지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면서 서원했다.

“하나님, 저를 살려주시면 버려진 아이를 데려다 키워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겠어요.” 서원기도가 뭔지도 모르는 초신자의 기도는 그렇게 시작됐다. 10년넘게 온몸의 신경과 척추에 이상이 생겨 고생만 하다가 그저 “저지르고 보자”며 결단한 것이 10년이 훌쩍 지나서였다.

2000년 7월 생후 39일된 예지가 입양돼 왔다. 가족들은 꼼지락거리는 갓난아기의 출현을 마냥 신기해했다. 예지는 아무탈없이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이준희집사는 아이를 입양하기전 척추디스크로 물리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오히려 예지를 키우면서부터 몸도 좋아지고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회복됐다. 예지로 인해 모두들 행복했다.

예지가 15개월쯤 됐을 무렵, 이집사는 두번째 입양을 강행했다. 예지의 입양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던 가족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반대했다. 고등학생이 된 둘째 다정이는 “엄마, 내가 이담에 한명 입양해서 키울께요.

그러니까 지금은 예지만 키우자”며 엄마를 설득했다. 가족뿐만이 아니었다. 교회에서도 한명 더 입양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물러설 수가 없었다. 이미 1년전, 아이가 태중에 들어서기 전부터 시작된 기도였다.

“성령님의 강한 요구가 있었던것 같아요. 은지가 입양되어 들어오던 날 얼마나 행복하던지…. 세상을 다 얻은 느낌이었죠. 사는게 이런거구나. 행복이 이런거구나 실감했어요. 가족들의 반대를 딛고 입양한 아이라서 그런지 더 애착이 가고 한없이 사랑스러웠습니다.”

둘때 은지가 입양돼 온것은 2002년 1월 17일. 공교롭게 은지도 언니 예지처럼 생후 39일만에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은지를 키우는 것이 예지처럼 수월하지만은 않았다. 보름동안은 안아도 울고, 젖병을 물려도 울어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그렇게 가족과 얼굴을 익힌 은지는 보름이지나자 잘먹고 잘자는 순한 아기로 변해있었다.

이제 막 말을 시작하는 예지와 “응애, 응애~” 갓난 울음을 터뜨리는 은지로 인해 이준희집사 가정은 새로운 기쁨을 맛보고 있었다. 은지에게 이상징후를 발견한 것은 입양후 6개월쯤 지나서였다. 생후 7개월에 들어선 은지는 왼쪽 얼굴과 팔 다리 등 근육에 약간 이상이 보였다. 입양가족모임에서 자주 연락을 하는 한 엄마로부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뇌에 이상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탯줄을 자르자마자 친엄마와 떨어져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아이가 이제 또 장애를 안고 살아야한다니 정말 눈앞이 캄캄해지는 고통이 밀려왔다. 병원의 검사날짜를 받아 뇌파검사와 MRI를 찍고 결과를 기다리는 이준희집사의 입술이 바싹 말라들어갔다.

‘정말로 장애가 있다면 어떻게 하나… 하나님 우리 은지 지켜주세요. 은지가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니 너무 마음이 아파요. 제발 은지를 지켜주세요. 장애도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순순히 따르겠어요.

하지만 아이가 세상을 밝게 볼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장애만 주세요. 은지의 생명을 주관하신 하나님, 주신 생명을 끝까지 사랑해주세요.’이집사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결과가 나오던 날, 이집사는 교회집사님들과 함께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은지가 선천성 뇌기형이라고 했다. 뇌의 형태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고 좌우뇌를 분리하는 막이 없다고 했다. 이럴 경우 인지발달이 떨어지고 외쪽 근육이 마비되는 증세가 나타난다고 설명해주었다.

순간 멍한 느낌이 들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두 아이를 다정이에게 맡기고 교회로 향했다. 영아부 선생님들이 은지의 검사결과를 물었지만 이집사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끝내 참고 있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나님 어떻게 해요.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한데요. 우리 은지 불쌍해서 어떻게 해요. 하나님 우리 은지 도와주세요.”

은지가 장애판정을 받고 1년이 지났다. 태중에 들기전부터 기도로 빚어진 아이. 하나님은 은지를 사랑하고 계셨다. 뇌기능도 점차 좋아져 인지발달도 원만히 진행되고 있고 남보다 빨리 재활치료를 시작한 덕에 왼쪽 근육도 부드럽게 풀려가고 있다.

겉으로 보아 장애아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감당할만큼만의 시련을 달라던 이집사의 기도는 그렇게 하루하루 응답되고 있었다.

“가족들이 원망의 말을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어요. 반대하던 입양을 하더니 장애아가 들어왔다고 뭐라 그러면 어쩌나…. 주변에선 파양하라고 권유했어요. 파양이라뇨. 내자식인데 아프다고 다시 내다버리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다행히 가족들은 아무도 저를 원망하지 않았아요. 오히려 격려하며 잘 치료해서 정상아로 만들자고 희망을 주었죠. 그래서 가족인가봐요. 서로의 마음을 보듬을줄 아는 그런 마음이 너무 고마웠어요.”

은지는 일주일에 4번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는다. 교회 식구들이 특별헌금으로 치료비를 모금해주었고 이집사는 놓았던 피아노레슨을 다시 시작했다. 하루종일 허리피고 누울 시간이 없어도 이집사는 마냥 행복하다.

한가지 아픔이 있다면 은지로 인해 장애아를 입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히려 입양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점이다.

“예지와 은지를 잘 키우는 것으로 보여주는 수 밖에요. 많은 분들이 입양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에요. 내가 한명을 입양하면 고아원에 버려지는 아이 한명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 그 사실만이 중요합니다.”

이준희집사 가정은 두 아이의 입양을 비밀로 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것이 아이들의 정서에 더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말을 알아듣는 예지에게는 틈틈히 이렇게 이야기한다. “예지를 딸로 달라고 하나님께 정말 많이 기도했단다. 너는 항상 소중한 존재야. 하나님게 크게 쓰임받는 사람이 될꺼야.”

새로 가족이된 두딸아이때문에 행복하다는 이집사는 친자녀들에게 소홀한 것이 못내 미안하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들이 든든한 후원자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남편 김산석집사의 나이 이제 50이 됐다. 은지 동생을 또 입양하고 싶다지만 남편의 나이가 입양제한에 걸려 더이상의 입양은 어렵다. 사랑이 넘치는 가정 예지네 집. 그곳에는 우리가 미쳐 깨닫지 못한 행복의 비결이 숨어있었다. “그저 정을 나누며 사는 것이 가족이 아니겠냐”는 소박함, 바로 그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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