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설교의 위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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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설교의 위대성
  • 승인 2003.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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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영화나 텔레비전 연기자들의 연기에 관심을 갖길 바랍니다. 어느 장면에서 연기자가 정말로 눈물을 줄줄 흘리는 순간에 관심은 최고조에 달합니다. 그 감정표현은 그 연기자 자신이 처한 순간의 사건을 시청자가 함께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드는 일을 해냅니다. 본인은 그 때마다 옆에 있는 사람에게 꼭 묻습니다.

혹시 보조물을 넣은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감정이 복받쳐 나오는 눈물인지를 묻습니다. 그때마다 옆의 사람은 가짜가 아니고 진짜라고 일러 줍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저를 연기자의 순수한 감정을 이해할줄 모르는 수준이하의 사람처럼 여기며 이상한 눈길을 보냅니다.

“어떻게 저 연기자는 꾸며낸 이야기를 가지고도 저렇게 사실화시켜 시청자들을 끌고 갈 수 있을까? 어떻게 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자신이 그토록 깊이 파고들어가 빠질 수 있을까? 왜 우리의 설교자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실화인 본문을 가지고 회중에게는 가상된 이야기처럼 들리게할까?” 바로 여기에 설교자의 감정이 설교의 순간에 작동되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연기자는 허위를 사실로 받아 들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에 깊이 몰입되어 그 순간의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승화시켜 그렇게도 확실하게 시청자에게 파고 듭니다. 진정 설교자가 깊이 눈여겨 보아야할 부분입니다.

설교자가 감정은 메마른채 머리만 작동하여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데는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예를들어,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설교자 앞에서 느끼는 일들입니다. 그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위해 처절한 희생을 당하신 구원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설교자가 전하고 있습니다만 웬지 듣는 회중들의 마음은 그리 큰 동요가 없어 보입니다.

설교자 자신이 그 십자가의 사건에 도취되어 끝없이 감격하고 그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을 흘리면서 외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의 핵심이요 우리들이 하나님을 위대한 왕으로, 긍휼의 아버지로 높여드리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임에도 설교자는 약간의 감격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거의 모두가 하나의 지식으로 십자가 사건을 전하는 설교로 끝을 맺습니다.

부언하면, 설교자가 두뇌 만을 이용하여 설교를 하게되면 회중들도 머리만을 굴리면서 설교를 듣습니다. 설교자가 머리를 거쳐 가슴으로 설교를 하면 회중도 머리를 통하여 깨닫고 가슴 속 깊이 그 설교를 간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단에 선 설교자는 늘 감격에 도취되도록 처음 강단에 섰을 때의 열심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의 객관지식을 소홀히 취급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감동은 모르는데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앎으로 승화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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