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친히 찾아가셨던 '두로와 시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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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친히 찾아가셨던 '두로와 시돈'
  • 승인 2003.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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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급경사 고갯길을 숨가쁘게 오르내리던 대절 택시는 잠시 숨을 고르려는 듯 천천히 속력을 낮추며 달렸다. 해안도로를 얼마쯤 달려 도착한 곳은 풍요의 땅 시돈, 옛 부귀 영화의 자취는 간 곳 없고 사이다(Saida)로 불리우는 초라한 폐허의 도시만이 지나간 역사의 현장을 쓸쓸히 지키고 있었다.

시돈이 역사의 무대에 첫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득히 먼 옛날 노아 홍수가 있고 난 직후였다. 창세기 기자는 시돈을 노아의 손자 가나안(함의 아들)의 장남이라고 소개하고 있다(창 10:15). 아마도 가나안은 주전 4천년 경에 세운 바벨탑이 무너진 후 가족들을 이끌고 이곳 해안가로 와서 성읍을 만들고 장자의 이름을 붙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구약성경에서는 악한 왕비 이세벨의 고향이라는 이유 때문에 좋지 못한 인상을 지닌 성읍 정도로 기억되고 있다. 시돈의 이세벨은 한 여자의 그릇된 이교 신앙과 완악한 성격이 한 나라의 왕가와 백성들을 어떻게 철저히 멸망시킬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가나안 정복을 앞두고 모세는 장차 이 땅의 기업을 이어갈 스불론 지파가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신 33:19)라고 예언하였다. 이 예언대로 시돈인들은 바다와 모래로부터 엄청난 부를 얻어 번영의 시대를 열어나갔다.

그들은 바다에서 채취한 뿔고동으로부터 당시 왕족이나 부자들이 즐겨입는 자색옷의 염료를 추출해 내어 막대한 소득을 올렸고 시돈 해변에 널려있는 규석성분이 많은 모래를 녹여 고가의 유리제품을 만들어 수출함으로써 눈부신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돈이 있는 곳에 도적과 강도가 들끓듯이 시돈의 부귀와 번영은 주변 강대국들로 하여금 군침을 삼키게 했으며 그로 말미암아 시돈땅은 빼앗으려는 자와 빼앗기지 않으려는 자 사이에서 기우고 할퀴우는 비극의 아겔다마(피밭)가 되고 말았다.

한편 시돈에서 남쪽으로 40여 킬로 남쪽으로 내려간 곳에 자리 잡은 두로(지금의 지명은 Sur)도 역사적으로 시돈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다. 옛날에는 두로가 외딴 섬으로 되어 있어서 전략상 난공불락의 요새지로 알려져 있었지만 지금은 토사로 메꾸어져 육지와 하나가 되어 있었다.

비좁고 허름한 길거리를 지나 어렵사리 찾아간 옛 두로 항구에는 부서진 기둥들과 돌조각들만이 군데군데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전체 윤곽을 볼 때 두로는 고대 성읍으로서는 꽤 큰 규모였음을 알 수 있었다. 분명히 두로왕 히람은 솔로몬 왕에게 건축재료인 백향목과 목수들을 지을 때 이곳을 이용했었을 것이다(왕상 5:10).

두로는 에스겔과 예레미야의 경고적 예언에도 불구하고 애굽과 모압, 에돔,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고 바벨론에 대항했다가 13년간 성을 포위한 느부갓네살 원정군에 의해 예루살렘과 함께 완전히 초토화되고 말았다(B.C. 586)

그후 알렉산더 대왕 때 다시 한번 강력히 항거했지만 날아오는 돌맹이를 한사코 막아내며 바닷속으로 제방을 쌓은 헬라 군대에 의해 함락되어 3만 명은 포로로 끌려가고 2천여 명의 지도자들은 두 손을 묶인 채 목베임을 당하였다.

그후에도 계속해서 두로와 시돈은 수리아와 로마의 속국으로 억압을 당하다가 십자군 시대에 이르러서는 또다시 회교와 기독교가 불꽃 튀기며 싸우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 마당이 되었다.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십자군의 요새지들은 성지를 찾으려는 유럽의 신앙들이 얼마나 간절하고 뜨거운 것이었는가를 말없이 증언해주고 있다.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던 십자군 원정은 결국 이렇다할 소득없이 끝나고 말았지만 그들이 목숨바쳐 심어 놓은 믿음의 씨앗들은 오늘날 레바논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지도자들로 많은 열매를 맺었다.

물론 그것이 레바논 내전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기는 했지만 모슬렘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기독교의 깃발을 높이 들어올리고 있다는 것만 해도 로마 교황청이 표현한대로 “가시 속에 핀 장미"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시돈과 두로 지방을 찾으셨고 그 지역 사람들에게 설교하셨으며(마 15:21, 막 7:24,31, 눅 6:17), 사도 바울도 역시 이곳에 들렸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행 21:3~7, 27:3).

이방인의 땅 밟기를 꺼려하던 편견의 경계선을 넘어 이곳까지 숨가쁘게 달려오셨던 예수님의 거친 숨결이 또다시 정겹게 들려오는듯 했다. 주님! 이 시간 제가 한 가지 소원을 아뢴다면 그때 이곳 가나안 여자에게 하셨던 말씀, 다시 한번 들려주실 수는 없는지요.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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