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전달력 40%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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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달력 40%의 비밀
  • 승인 2003.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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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는 언제나 만족이나 완벽에 도달하지 못한다. 한 설교자의 최선이 있을 뿐 결코 만족한 결과나 반응은 기대하기 힘든 항목이다. 그래서 설교자는 설교의 발전을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설교사역이 끝날 때까지 진행해야 한다. 이것이 설교자의 바른 길이다.

위대한 설교자 일리온 존스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설교에서 만족을 느낀다면 그 설교자는 이미 내리막 길을 걷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 만족은 바로 교만과 이어지고 그 교만은 패망과 직결된다.

이 패망은 한 개인을 실패의 종장으로 이끄는데 그치지 않고 교회를 암흑의 세계로 몰고가는 주원인이 된다. 그래서 죄 중에 가장 무서운 죄가 설교의 교만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솔직히 오늘날 설교현장에 오르는 설교자 치고 카리스마가 없는 설교자는 거의 없다. 설교자로 섰을 때 조금의 흠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하늘에서 보내진 사신처럼 그 음성과 자세와 어감이 이어진다. 거기에 더하여 회중은 아멘의 함성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터뜨린다. 그러나 그 현장에서 냉정한 머리로 설교를 듣노라면 설교자마다 많은 결점이 보인다.

그때마다 저 설교자에게 자신이 행한 설교의 문제점을 들려주고 조언을 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외국에서는 목사의 설교가 끝난 다음에 그 주일의 설교를 가지고 토론을 하는 소그룹이 있다.

어떤 모임에서는 목사없이 토론이 진행되어 토론의 결과만을 목사에게 들려주는가 하면, 어떤 모임에는 설교자가 합석하여 기탄없는 평가를 듣는다. 그리하여 설교의 발전을 가져온다.

그러나 한국의 문화권에서는 그러한 설교평가의 모임이나 시간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실 수직문화권에서 사고와 행동이 성장해온 한국인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감히 윗사람의 위치에 있는 이가 내려준 말씀을 평가하고 거북스런 부분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진술한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사항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우리 설교자들은 고작 자신의 배우자가 지적해주는 것을 설교평가의 전부로 삼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처해있다. 설교에 대한 넓은 가슴은 갈수록 좁아져 간다. 거의가 큰 소리의 ‘아멘’으로 응답해 주길 바랄 뿐 조용히 찾아와 설교에 대한 쓴 말을 들어주길 원하지 않는다.

설교학에서는 설교의 완성을 위해서 설교의 내용과 전달이라는 두 축이 건실해야함을 강조한다. 내용없는 화려한 전달은 거짓선지자의 모습이며, 내용만 가득하고 전달이 빈약한 설교는 허공을 향한 독백에 불과하다.

이상적인 설교는 내용60%, 전달 40%비율을 갖고 만들어져야 한다. 따라서 설교전달은 중요한 요소로, 목회자들이 간과해서는 않될 사항이다.

/장신대 설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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