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는 하나님이 주신 만나, 통일의 다리 놓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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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는 하나님이 주신 만나, 통일의 다리 놓을 것"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6.05.18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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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9개도 240개 군에 고구마밭 만들기 운동 펼치는 한민족고구마나눔운동본부 박형서 목사
▲ 북한고구마나눔운동본부 박형서 목사가 통일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너무 달고 맛있어서 “이렇게 달수가”라는 감탄이 나왔다. 겨우내 식량으로도 족한데 맛까지 있으니 정말 하늘에서 내려준 ‘맛나(만나)’가 아닐 수 없었다.

지난해 가을 북한 평안남도 평성시 은산군 한 마을에서는 고구마 수확이 한창이었다. 고랑마다 고구마 종순을 심어 여름에는 줄기와 잎을 따 먹고, 가을엔 땅 속에서 주렁주렁 달린 고구마를 캐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주렁주렁 매달린 커다란 고구마를 보며 놀랐고, 생전 먹어본 적 없는 달고 담백한 그 맛에 또 한 번 놀랐다.

북한에 맛있는 고구마를 선물한 주인공은 사단법인 한민족고구마나눔운동본부 박형서 목사다. 대표적인 구황작물로 알려진 고구마는 탄수화물이 많아 주식으로 쓰이는 영양식품이다. 하지만 더운 지역에서 자라는 고온작물인 탓에 북한에서 고구마를 기르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그나마 몇몇 곳에서 고구마 농사를 지었지만 품종이 좋지 않아 맛을 담보할 수 없었다. 그런데 2014년 박형서 목사가 고구마 종순을 싣고 북한으로 들어왔다.

농민들은 반신반의했다. ‘이렇게 추운 땅에 고구마가 자랄 수 있을까?’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비료를 전혀 주지 않고도 95% 성공했다. 한 뿌리에서 10~15개의 고구마가 달려 나왔고, 3천 평 밭에서 캔 고구마는 수십 톤에 달했다. 매년 이렇게만 수확할 수 있다면 굶는 일은 없겠다며 주민들은 기뻐했다.

러시아 선교사 북한을 품다

박형서 목사는 캐나다 국적의 러시아 선교사다. 1991년 12월 소련이 해체되면서 제일 먼저 러시아로 들어갔다. 당시 러시아는 혼돈 그 자체였다. 개혁세력과 보수 공산세력의 갈등이 심하던 상황. 하지만 박 목사는 혼란을 틈타 노방전도와 축호전도로 복음을 전했다. 체제의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이끈 것. 정말 놀랍게도 매일 신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개척 후 얼마 되지 않아 300명의 성도가 모여들었고, 고려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사역의 전면에 내세웠다.

“지금 생각하면 저의 손과 발, 혀의 역할을 위해 하나님께서 미리 흩어놓으신 것 같았어요. 세계 곳곳에 흩어진 한민족 디아스포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선교자원입니다.”

러시아 15병원에서 예배처소를 마련해주었다. 원장 아들이 신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한국인 최초의 러시아 원목으로 초청된 것이다. 러시아 병원은 목회 최적지이기도 했지만 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운명 같은 장소였다.

“북한 사람들이 러시아 병원으로 연수를 받거나 치료차 방문하게 되면서 친분을 쌓게 됐어요. 그 인연으로 북한 대사관에 떡을 돌리기도 하고, 북한 식당 직원들과 친해지고, 러시아 파견을 마치고 돌아갈 때는 그들에게 필요한 선물을 주기도 했죠. 그저 한민족이니까 더욱 마음이 가는 친구들이었죠.”

선교사는 ‘미제의 앞잡이’라고 칭하던 북한 사람들도 박 목사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한창 러시아 사역을 하던 1990년대 중후반은 북한에 기근이 닥친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러시아 성도들과 함께 북한을 도왔고, 병원에서 진통제와 해열제 등 의약품도 챙겨 보냈다.

러시아 선교는 성공적이었는데, 어느 날 문득 그의 마음에 깊은 회의가 밀려왔다. ‘러시아는 개방된 후 이렇게 자유롭고 잘 살게 되었는데, 북한은 아직도 기근에 시달리며 고통을 겪다니, 내 형제자매를 어떻게 할 것인가.’

박형서 목사의 고민은 깊어졌다. 머릿속은 온통 ‘무엇으로 그들을 먹일까’ 하는 것이었다. 박 목사에게 러시아가 ‘땅 끝’이었다면, 북한은 그가 미처 보지 못한 ‘땅 속’이었다.

“러시아에서 북한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만났지만 한 번도 북한을 방문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데 러시아에서 10년, 20년 시간이 흐르면서 이건 아니다, 북한에 있는 우리 민족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념과 전쟁으로 두 동강이 났지만 북한은 여전히 우리 민족이고, 우리 가족이다. 최근 북핵 개발 소식 등이 전해지면서 북에 대한 증오나 외면이 팽배해지고 있지만 믿는 자들의 마음은 늘 한결같아야 한다는 것이 박 목사의 지론이다. 용서와 화해, 사랑은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것이고, 성경 66권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다. 그에게 통일을 준비하는 나눔 사역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시급한 과제였다.

주렁주렁 고구마가 ‘희망’

손주까지 7대째 신앙의 맥을 잇고 있는 박형서 목사 가정은 할아버지로 인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됐다. 손주를 살리기 위해 ‘서양귀신’을 찾아갔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는 죽음을 목전에 둔 손주가 기도로 살아나는 광경을 목격하고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기적적으로 살아난 할아버지가 또다시 손주의 손을 잡고 교회에 나가곤 했다.

5살 무렵, 할아버지와 밭에 나가 고구마를 캐던 손주는 주렁주렁 달려 나오는 고구마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할아버지 이게 어디서 나오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할아버지는 “우리 형서 주려고 하나님이 땅속에 파묻어 놨지”하고 대답하셨다.

그렇다. 바로 고구마였다. 하나님이 이미 오래전에 준비한 고구마를 들고 그는 북한을 찾아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구온난화로 북쪽의 기후도 많이 따뜻해졌을 뿐만 아니라 비닐농법이면 충분히 고구마를 북쪽에서도 기를 수 있었다. 2013년 러시아에서 모종을 심고 고구마를 시험재배한 후 그는 가능성을 확신했다. 비닐 멀칭 방막의 결과 온도와 습도가 유지됐고, 잡초 고민도 덜었다. 2014년 고구마 종순과 비닐 포장재는 북한 국적기인 고려항공에 실려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지난해 엄청난 가뭄이었는데도 고구마 농사가 풍작이었어요. 첫해 3개 군에 고구마를 심고 저장고를 만들어주었지요.”

▲ 2014년 조성된 북한 고구마밭.

작년에는 양강도와 자강도, 강원북도 원산까지 장애자연맹과 고아원 인근에 고구마 밭을 만들었다. 박 목사의 목표는 북한 9개도 240개 군에 하나씩 고구마 밭을 만드는 것이다. 땅굴을 파고 저장창고를 만들면 겨우내 썩지 않게 보관할 수 있고, 주민들이 모두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다. 고구마 밭 하나를 꾸미는데 비닐방막과 저장창고까지 모두 300만원이면 충분하다.

“우리가 보내는 종순은 가장 좋은 종자에요. 호박고구마, 자색고구마 등 수분과 당도가 높아 맛과 영양 모두 충분합니다. 3개월 만에 수확할 수 있는 신품종 ‘달수’는 너무 달아서 이름이 달수에요. ‘이렇게 달수가’라는 감탄이 종자 이름이 되었다죠. 너무 맛있어서 고구마는 ‘만나’랍니다.”

러시아와 캐나다에서 북한고구마심기운동을 하던 박형서 목사는 지난해 서울사무소를 내고, 통일부 허가를 받았다. 한인 디아스포라들에게 도움을 호소하다가 우리 민족은 우리가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들어왔다. 함께 동역할 천사회원을 모집하고 있고, 기도 용사는 500명 가까이 채워졌다. 물론 지금 남북관계가 상당히 경색되어 있지만 ‘사마리아인’의 마음으로 북한 주민을 돌보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자세라고 박 목사는 강조한다.

“분단은 반드시 믿음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동족을 구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세계선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분단을 주신 것은 아픔이 분명하지만 마침내 그것을 극복해낼 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과 순종을 보게 되실 것입니다.”

땅 끝이 아니라 그 땅 속까지 보시는 하나님. 박형서 목사는 ‘고구마’가 남과 북을 잇는 다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고구마, 고구마 세 번만 해보세요. 고구마가 곧 복음화에요. 제 마음은 그렇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남과 북이 첨예하게 대립해도 고구마는 보내야 합니다. 그게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사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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