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길에 찾아오신 하나님, 이젠 세상이 달리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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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에 찾아오신 하나님, 이젠 세상이 달리 보여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6.03.22 2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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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 체험한 자의 소원
▲ 대기업 간부로 지내며 하나님을 잊고 살다가 명퇴 당한 후 실명 되어 다시 하나님을 찾은 후에 새 삶을 살고 있는 분당청솔학원 경비 이석철 집사는 자신의 기가 막힌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게 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밝혔다. 사진 뒤로 그에게 감사해하는 학생들의 수많은 편지들이 눈길을 끈다.

분당청솔학원 경비 이석철 집사

“할당된 지면만 채우는 형식적인 인터뷰라면 사양합니다.” 분당청솔학원 경비로 일하는 이석철 집사(72, 갈보리교회 출석)는 처음부터 세게 나왔다.
기독교연합신문이라고 밝히자, “기독교세요?”라며, 반가운 얼굴로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읽고, 아,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는구나, 하고 깨닫게 할 수만 있다면 저는 다른 소원이 없어요.”

대기업 간부로 일하다가 명예퇴직 당하고, 손대는 일마다 망하고, 멀쩡하던 눈이 장님이 되고, 캄캄한 절망 속에 자살을 기도했던 그였다. 그러나 기적처럼 하나님을 만난 후, 시력을 회복하고 행복한 일터에서 하루하루가 즐겁다.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눈물을 비치며 목울대를 삼키는 목소리로 “아직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셨다”고 고백할만한 사연이 그에겐 잇달았다.

 

명퇴 후 시력까지 잃어
2002년, 본부장으로 일하던 태평양그룹(현 아모레퍼시픽)에서 명예퇴직을 당하기 전까지만 해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살았다. 모태신앙이었던 그는 대학을 들어가기 전까지는 교회 중고등부 회장에 기독청년 모임의 회장도 하면서 교회를 잘 다녔다. 이런 체험도 있었다.

“6.25 때 대구로 피난 가서 초등학교를 들어갔는데 일주일 다니고 아파 누웠어요. 2학년 새 학기 될 때까지 아팠는데, 어느 날 눈을 뜨니까, 엄마, 아빠, 교회 전도사님, 목사님이 제 위에서 저를 보고 있는 거예요.”

입관예배를 드리던 중이었다. 목사님의 기도만 끝나면 이제 어린이 이석철은 관 속에 들어갈 순서였다. 그때 눈이 떠졌다. 입관예배 중에 난리가 난 건 두말할 것도 없다. 악몽 속을 헤매다가 하나님의 손을 붙잡았는데, 그 순간 눈이 떠졌다. 

“그런데 대학을 들어가고, 군대 갔다 오고, 사회에 나와 일하면서 삼십 오륙년을 완전히 하나님을 떠나 살았죠. 그땐 제가 엄청 교만하고 완악했어요. 내가 잘났어요. 나보다 잘난 놈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죠.”

그의 나이 51세 때, 사회 분위기가 달라졌다. 컴퓨터 시대가 도래했다. 수작업에만 익숙했지, 컴퓨터에 무지했던 그는 회사에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됐다. 평생 “카렌다에 빨간 글씨만이라도 놀아봤으면 하며 365일 일했던” 그는 한순간 실업자가 됐다. 

“그 동안 건방만 떨었지, 막상 사회에 나오니까, 할 줄 아는 게 없는 거야. 이것저것 막 덤벼들었다가 손대는 것마다 홀라당 망한 거지. 서초동 아파트에서 성남 반지하 월세방으로 내려갔지. 뭐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느 날, 눈앞이 뿌옇게 되더니 앞이 안보였다. 심근경색 시술을 받은 적이 있었던 그는 흉부외과를 찾아갔다. 별별 검사를 다했다. 이상이 없었다. 내과를 가보라고 해서, 이름도 모르는 검사를 다 해봤지만 소용 없었다.

이번엔 안과를 가보라고 했다. 역시 문제가 없었다. 이번엔 신경외과. 거기서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흉부외과, 내과, 안과, 신경외과 담당의들이 그를 불렀다. 지팡이를 짚고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갔다가 어이없는 일을 당했다.

 

암흑 속 십자가가 보였다

“나보고 그 사람들이 ‘원인불명에 치료불가입니다’라고 해요. 두 달 동안 2천만 원이 들어갔는데, 그게 의사가 할 말입니까?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내일부터 입원하라는 겁니다. 아니, 원인불명에 치료불가인데, 웬 입원이요? 날 임상실험 대상으로 삼겠다는 거죠. 이해가 되십니까?”

사회적 지위도 잃고, 가진 돈도 다 깨지고, 몸은 원인불명에 치료불가라니, 이젠 희망이 없다. 끝이다. 친구들도 다 떠났다. ‘그 놈이 돈 꿔달라면 안 줄 수도 없고 주면 떼이는 거고, 그래서 그 놈에게 전화 올까봐 겁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더 이상 식구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다. 그래, 끝내자.

“소주와 혈관확장제를 준비해서 택시를 타고 산으로 데려달라고 했어요. 더듬더듬 올라가니까 어떤 바위가 있더라고요. 약을 먹고 소주 마시면 끝이죠. 그런데, 그 순간 ‘너 마지막이 이건 아니다’라는 마음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너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상처를 받겠니.’ 탁 때려요. 그렇지, 이건 아니지. 거기서 한참 울다가 다시 내려왔어요.”

무더운 여름, 가까운 초등학교 운동장 계단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어느 날 뿌연 검정 하늘 앞에 커다란 네온사인 십자가가 앞에 나타났다. 저게 뭐지? 십자가네. 그 순간,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집에 돌아와 집 앞 교회 집사님을 불러 새벽기도회에 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엔 그 자리에 앉아 그냥 있었죠. 기도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렇죠, 그 동안 내가 잘났고 하나님은 한 번도 찾지 않던 놈이 이제 와서, 하나님, 잘못했어요, 그 말이 안 나와요. 나올 수가 없죠. 일주일이 넘었나, 그날도 엎드려 있는데, 누가 뿅망치로 나를 세게 때리는 거예요. 누구야, 소리쳤는데, 그 집사님이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저 혼자 있다는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아, 하나님이시구나!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둑이 터졌다.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집사님이 갖다 준 사각휴지 한 통 다 쓰고, 두루마리 휴지까지 다 적셔도 눈물, 콧물은 멈추지 않았다. 그 다음날부터는 새벽기도회 가자마자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하며 별별 회개가 다 쏟아져 나왔다.

“와, 하나님이 아직도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나를 잊지 않으셨구나, 그게 신기한 거예요. 그렇게 매일 눈물로 회개한지 보름 쯤 지났나요, 저녁에 답답해서 집 앞 길에 나갔는데, 버스 불빛이 보이는 겁니다. 나중엔 번호판도 희미하게 보이고요. 아내가 놀라고, 자식들이 축하한다고 난리가 났죠.”

 

▲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석철 집사.

‘청솔 할아버지’의 소명
눈이 회복된 후에, 구청에서 연락이 왔다. 구직 신청한 곳에서 일자리가 있다는 소식이었다. 바로 지금 근무하는 분당청솔학원 경비 자리였다. 찾아갔더니 담당자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학원 출입문 앞 의자 앞으로 저를 데려가더니, ‘여기서 일하실 수 있겠느냐’고 미심쩍어 하더라고요. 몇 차례 물었어요. 당연히 일할 수 있다고 했죠. 그 다음날부터 지금까지 14년이 됐네요.”

출입문 앞에서 학원 강사나 학부모가 지나가면 벌떡 일어나 45도로 인사를 건넨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대기업 간부로 있을 때에는, 한 번도 이렇게 경비 자리에 앉으리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다. 그땐 사실 인사만 받았지, 회사 경비하고 눈도 잘 맞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경비 자리에 있고 보니, 참 많은 것들이 보였다.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전 정규직이 됐어요. 여기서 저같이 일하는 분이 80~90분 쯤 되는데, 다 용역회사에 속해있고, 저만 혼자 정사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3년 전에 대표이사님이 저를 정사원으로 만들어주셨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그의 자리 뒤편 벽에는 빨주노초파남보 총천연색 편지로 가득하다. 그 동안 ‘청솔 할아버지’에게 감사한 학생들이 주고 간 편지들이다. 잿빛 암흑 속에서 건저져 이제 무지개를 타고 새 삶을 살고 있는 그는, 어린 나이에 재수하며 고통 받는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선생님’이다.

“너무 힘들다고 자살하려고 했던 아이도 있어요. 제가 쫓아가서 잘 타일러서 지금 대학 졸업하고 취직 준비하고 있죠. 그런 이야기는 너무 많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저를 이렇게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그 고난을 겪게 하신 것 같아요. 그때는 정말 원망으로 살았는데, 지금은 하루하루가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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