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웰’이 행복의 조건…웰빙에서 웰에이징, 웰다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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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웰’이 행복의 조건…웰빙에서 웰에이징, 웰다잉까지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6.03.15 2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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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호스피스의 개척자’ 샘물호스피스선교회 원주희 목사
▲ 한국 ‘호스피스의 개척자’로 지난 23년 동안 8천명이 넘는 환자들의 마지막을 돌봐주고 2,207명에게 세례를 준 원주희 목사는 호스피스 사역이 시한부 환자가 죽음 속에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는 인생이 되게 하는 마지막 터미널과 같은 사역이라고 소개한다.

 

지난 7일 밤 새벽, 경기도 용인 샘물호스피스병원에 입원해있던 노숙자 최 아무개 씨가 세상을 떠났다. 노숙자 생활을 했던 그에겐 돌봐줄 가족이 아무도 없었다. 딸이 하나 있었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분노와 회한에 매여 살던 최 씨는, 그러나 그 전날 밤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평안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겨우내 죽은 것 같던 병원 동산에 생명의 봄물이 오르던 아침이었다.

떠나기 전, 그는 1인실에서 그전까진 세상에서 받아보지 못한 극진한 서비스를 받았다. 이 병원은 1인실부터 3인실까지 있는데, 다른 병원과는 달리 돈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증상에 따라 제공된다. 

생이 얼마 남지 않았던 노숙자 최 씨는 1인실에서 마지막을 안락하게 보냈다. 어쩌면 살아있을 때 차별과 소외 속에서 살았던 그였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아쉬움이 없었다.

 

죽음보다 천국 생각나는 곳
더 이상 치료의 가능성이 없는 말기 암 환자들이 와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게 되는 이곳은 일반 호스피스병원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비용이 저렴하다. 교회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후원금과 1천 여 명 자원봉자들의 수고 덕분이다. 

그러나 병원은 지중해의 근사한 호텔처럼 아름답고 깨끗해 ‘죽음’보다는 ‘천국’이 떠오르게 한다. 인생의 마지막 호텔 같은 이곳은, 그래서 들어오는 환자나 맡기는 가족이나, 버려지고 버렸다는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기다리는 대기자 수가 너무 많은 것이 늘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까지 8천명 넘는 분들을 여기서 보내드렸습니다. 그중에서 세례 받고 가신 분들이 2,207명이고요. 신자들도 죽음 앞에선 많이 흔들립니다. 그분들도 붙잡아드리죠. 가족과 깨진 관계, 하나님과 부서진 관계도 회복되도록 돕습니다. 버려지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는 마지막 터미널이죠.”

샘물호스피스선교회 회장으로 이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원주희 목사는 23년 전에 처음 호스피스 사역을 시작했다. 중앙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판문점 의무장교로 근무하던 그는 1976년 8.18 도끼만행사건을 통해 죽음을 처음 직면했다. 금방 전쟁이 터질 듯 엄청난 압박 속에서 하나님을 찾았다. 

제대 후에 영등포에서 큰 약국을 운영했다. 돈 셀 시간이 모자라 집에 대충 쌓아두고 출근하던 시절이었다. 느닷없이 폐결핵 판정을 받았다. 의학, 간호학, 약학으로는 죽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신학대에 들어가 목사 안수를 받았고요, 1993년에 용인 가창리 농가에서 처음 샘물호스피스를 시작했어요. 호스피스가 뭔지도 모를 때였죠. 그때만 해도 인근 주민의 반대가 심했어요. 저를 보고 ‘시신과 장기를 팔아먹는다’, ‘암 환자들이 목욕한 물이 논에 흘러들어 그 곡식을 먹으면 암에 걸린다’는 소문이 돌았죠.”

 

▲ 환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 원주희 목사.

생의 끝이 고통스럽지 않게

악조건 속에서 호스피스 사역을 하다 보니, ‘사’자 직업을 네 개나 땄다. 약사, 목사에 이어 대형버스 기사, 장의사까지, 이 일 저 일 다 도맡아야 했다. 흙집에 살면서 시신을 들 것에 들고 다녀야 했고, 냉동시설이 없어 한 방에서 시신과 며칠 동거해야할 때도 있었다. 

“지금은 예전에 저희를 쫓아냈던 분들이 후회한다고 합니다. 저희 병원이 커지면서 이 동네가 좋은 마을이 됐거든요. 이 동네 분들의 사후 관리도 저희가 도와주고, 또 1천명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출입하면서 이 지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거든요.”

원 목사는 샘물호스피스 사역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한 올바른 문화를 갖도록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의 마지막을 중환자실에서 ‘약의 고문’을 받으며 고통 가운데 마감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죽음에 대해 모르는 게 세 가지, 아는 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는 아무도 모르고요, 누구나 죽고, 혼자 죽고,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는 건 누구나 압니다. 죽음이야말로 꼭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마저도 죽음을 터부시하면서 입에 올리기조차 싫어합니다.”

‘죽음, 알면 이긴다’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을 때는 거의 안 팔리다가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로 제목을 바꿨더니 팔리더라는 일화를 소개하는 그는 그만큼 ‘죽음’을 사람들이 기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다 보니 끝까지 무의미한 치료를 포기하지 못하고 환자는 환자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 가운데 살고, 가족들 역시 편치 않은 사별을 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경제적 손실도 클 수밖에 없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는 기독교인들까지도 큰 차이가 없는 건 잘못된 ‘웰빙(well-being) 목회’의 탓도 있다고 한다. 숨지기 전까지도, 기도하면 살아난다는 기복주의적, 현세주의적 신앙관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제 성숙한 한국교회를 위해선 ‘웰에이징(well-aging)’과 ‘웰다잉(well-dying) 목회’가 필요하다.

 

죽음을 알면 삶이 달라져

“호스피스 교육을 지금까지 1만 8천명을 시켰어요. 중고등학생, 청년들도 이곳에 호스피스봉사 수련회를 옵니다. 1박 2일 동안 죽음 교육을 시키는 거죠. 관 속에도 들어갔다 나와 보고 유언장도 쓰면서 죽음 교육을 받으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삶이 달라져요. 이화여고에서는 20년째 계속 학생들을 보냅니다. 그만큼 좋으니까요.”

그의 지갑에는 유언장 요약본이 담겨져 있다. 물에 빠질 때까지(?) 대비해서 비닐봉투에 담아놓았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면 본인이 먼저 준비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전통에 수의나 묘지를 준비해두면 장수한다는 속설도 있다. 

“마지막을 다 준비해서 마음이 편안하니 스트레스 안 받고 장수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더 일찍 죽습니다. 교회에 들어오면 유언장부터 쓰라고 해야 합니다. 그걸 가르치지 않으니까 죽음 앞에서 다들 흔들려요.”

▲ 10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호스피스 사역을 돕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봉사를 통해 오히려 많은 은혜를 받는다고 한다. 원 목사는 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이 사역에 함께 참여해주길 바라고 있다.

매일 아침이면 원 목사 앞에 차트가 놓인다. 하룻밤 사이에 가신 분들, 또 남아있는 분들, 여기 들어오려고 대기하는 분들의 명단이 적혀있다. 처음 보는, 세상 모든 종류의 암들이 거기 나열되어 있다. 그 옆에 환자 이름이 있다. 6개월부터 이제 며칠 남지 않는 분들까지 다양하다. 오전 11시, 저녁 7시 두 번 드리는 예배가 어떤 환자에겐 마지막 예배가 될 수 있다. 

병원에서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고 무거운 마음으로 이곳에 들어오던 환자들에게 어디선가 찬송 소리가 들린다. 긴장이 누그러진다. 마음이 편해진다. 
아직 아무런 약을 처방하지 않았는데도 찬양 소리에 평안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오늘도 이곳에선 또 누군가가 ‘소풍’을 끝내고 평화롭게 본향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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