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아둘람교회’에서 황하의 물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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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의 ‘아둘람교회’에서 황하의 물결 시작된다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6.02.2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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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한족을 섬기는 중국 선교, 서울중국인교회 최황규 목사

온통 ‘중국’이다. 중국 최대 연휴 춘절을 맞아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을 얼마나 찾을까가 큰 뉴스거리다. 한국 경제의 한 축이 이들의 발걸음에 따라 좌우되는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한쪽에선 북한 핵 미사일 발사로 나라가 어수선한데, 중국 시진핑 주석이 제 역할을 해주지 않는 모습에 많은 한국인들이 실망하고 있다.

경제도, 한류도, 평화와 통일도, 더 나아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에서도, 중국의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제 모든 길은 로마가 아니라 중국으로 통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 중국의 친구로서, 미래를 준비하는 목사가 있다. 서울중국인교회를 담임하는 최황규 목사.
 

▲ 목자 없는 양같이 어렵게 살고 있는 한족들을 목양하며 자유와 복음을 실은 ‘황하의 물결’이 중국으로 흘러넘쳐가기를 기대하는 최황규 목사. 한때 ‘장신대의 전설’이었던 그는 목회를 포기하는 고뇌의 시절도 겪었지만 중국 반체제인사 ‘쉬버’를 만나 돕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새로운 목양의 길을 오게 됐다.

‘모든 길은 중국으로 통해있다’

그 동안 조선족과 한족들을 도우며 복음을 전한 이야기를 최근 ‘황하의 물결’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이 땅에 흘러온 황하의 물결, 중국인 난민과 조선족 70만, 한족 30만, 모두 100만명이 다시 복음과 자유의 물결이 되어 중국으로 흘러간다면 거기 통일과 선교의 미래가 열려지게 될 것이다.

그는 이런 비전을 보았다. 그 비전은 스스로 만든 게 아니었다. 하나님이 주셨다. 신학교 시절에는 장차 이런 일을 하리라곤 전혀, 꿈도 꾸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 그는 사무치게 방황하고 있었다. 장로회신학대학 신대원과 신학대학원을 수석으로 입학했고, 영어와 독어에 능통하여 동기들이 모두 장래 교수 감으로 여겼던 그였지만, 그는 초야에 묻혀버렸다.

“쑥스럽지만 한때는 제가 ‘장신대의 전설’이었어요. 항상 수석하고 장학생으로 다녔으니까요. 그런데 대학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접한 거예요. 고뇌의 수렁에 빠지게 된 거죠. 목사가 확신을 가지고 설교를 해야 하는데, 제 스스로가 답을 얻지 못한 거죠. 무척 괴로웠습니다.”

가난한 초가집의 편모슬하에서 자란 그는 중학교를 갈 수 없었다. 교회 목사님의 주선으로 비인가 중학교를 다닐 수 있었는데, 배지도, 교모도 이상한 그를 친구들은 놀려댔다. 그런 그에게 낙이 있다면, 매일 교회 가서 기도하고 성경 읽는 일이었다.

검정고시를 거쳐 집안의 반대를 무릎 쓰고 신학대를 지원했다. 면접 때, “성경을 26번 읽었다”는 말을 교수님은 믿지 못했다. 그렇게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누구보다도 장래가 촉망됐던 신학생 최황규는, 그러나 학교를 졸업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목사를 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번역을 하며 살았어요. 수입이 괜찮았어요. 한 달에 3, 4백은 벌었으니까요. 어느 날 이대에서 열린 북한인권 심포지엄을 별 생각 없이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마침 한국으로 탈출한 중국 반체제 인사 쉬버를 만납니다. 갈 곳 없던 그를 제 집에 머물게 했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를 살리려고 했어요. 민주화 운동을 했던 분들, 정부와 각 종교 인권 단체들을 찾아갔지만 거절당했어요. 다들 중국 정부의 눈치를 봤던 거죠.”

검도를 배웠던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밤마다 검을 준비하고 문단속을 하며 지내야 했던 시절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미친 짓 그만 하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살 곳을 찾아 피신 온 사람을 내칠 수 없었다. 결국 스위스에 있는 유엔난민 고등판무관을 통해서 그를 구할 수 있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그는 조선족을 돕는 일을 하게 된다.

“지금은 조선족을 위한 법이 다 만들어졌지만 그때만 해도 강제추방을 당했습니다. 한일 운동하러, 살기 위해 중국으로 갔는데, 오히려 ‘일본의 개’라고 비난당하고 중국인들에게 맞아 죽기도하고 어렵게 중국에서 살았죠. 이들이 92년 한중수교 전후로 고향 땅을 찾아왔는데 거부당한 겁니다. 이런 예가 없어요. 일본은 일본인 피가 한 방울이라도 있으면 다 동포로 받아줬거든요. 한국은 다른 지역 동포들은 다 받아주면서 조선족과 고려인들만 거부했어요. 가난하니까요.”

조선족보다 더 소외된 한족

‘절대 목사가 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이 이들의 고된 현실 앞에선 사치스러워 보였다. 서울조선족교회 목사가 된 그는 조선족들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데리고 반정부활동을 한다는 죄목을 씌워 많은 압박을 주었지만, 이건 생명과 인권의 문제였다. 독립운동을 하듯이 조선족을 위해 일한 결과 지금은 관련법들이 만들어졌다.

“조선족을 위해 일하는데, 언젠가부터 한족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족은 오리지널 중국인들이죠. 한국말도 할 줄 모르고요. 돈 벌러 한국에 들어온 한족들이 이제 조선족들과의 관계가 역전된 겁니다. 조선족들이 중국에서 한족들에게 당했던 무시와 멸시를 여기서 되갚아주는 겁니다. 한족들은 같은 중국인이라고 조선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조선족들 중에는 ‘니들도 우리 할아버지 나라에서 당해봐라’, 이러면서 사기를 치고 괴롭히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무시당하고, 뜯어 먹히는 모습을 보며, 목자 없는 양 같은 한족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왔다. 조선족은 이제 어느 정도 안정된 지위를 확보했다. 이제 더 어렵고 소외된 ‘나그네’는 누구인가. 하나님이 답을 주셨다. 한족들만을 위한 교회가 필요했다. 2003년, 가리봉동에 쪽방 하나를 얻었다. 한족 세 명과 함께 서울중국인교회 창립예배를 드렸다. ‘아둘람교회’가 시작된 것이다.

“성경에 보면, 다윗이 사울의 칼과 창을 피해 아둘람굴로 피신했을 때에 모든 환난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 모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희 교회가 그런 교회였습니다. 한국인에게는 떼 놈이라고 욕먹고, 조선족에겐 의지했다가 별별 사기를 당하고, 그런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 목자 없는 양같이 어렵게 살고 있는 한족들을 목양하며 자유와 복음을 실은 ‘황하의 물결’이 중국으로 흘러넘쳐가기를 기대하는 최황규 목사. 그가 세운 서울중국인교회 창립 11주년 기념예배 사진.

중국인이 세운 최초의 교회

가리봉동이 재개발되면서 교회가 이전해야 했다. 한국의 차이나타운이라고 하는 대림동 쪽에 적당한 교회 자리가 났는데, 보증금과 권리금까지 해서 7천 6백만 원의 큰돈이 필요했다. 교인들이라고 다들 어렵게 살고 있는 한족들이었다. 중국 선교를 해본 이들마다 ‘중국인들은 헌금에 인색하다’고 고개를 내저을 때였다. 그때 그를 울컥하게 했던 교인들의 말을 잊을 수 없다.

“목사님, 서울중국인교회는 우리 중국인들에게 아둘람교회입니다. 원통하고 고통당하는 중국인들의 피난처요, 방패입니다. 돈이 뭐가 중요합니까? 목사님, 걱정 말고 진행하세요. 우리 중국인들을 돕다가 모욕과 수치를 당하고 살해 위협까지 당하신 거 옆에서 다 지켜봤습니다. 목사님은 우리 중국인들의 진정한 친구입니다.”

이들이 6천만 원을 모았다. 국내 선교 역사상 최초로 한족들이 헌금해서 세운 교회가 됐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는 말씀처럼, 한족들의 진심이 모였다. 조선족 70만, 한족 30만, 중국인 유학생 6만, 유커 600만 명 등, 한국을 찾은 이들이 이 성전의 제단에서 자유와 복음을 실은 ‘황하의 물결’이 되어 중국으로 뻗어가는 꿈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는 중국인들이 온몸으로 한국을 체험하며, 자유주의의 용광로 속에서 머리부터 바뀌는 겁니다. 한류도 이들에게서 시작됩니다. 이들이 써보고 좋은 걸 중국에 가서 전파하거든요. 저희가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면서 이들이 자유와 복음의 전사가 된다면 앞으로 한국의 통일과 선교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족들이 사는 게 힘들어 중국대사관을 찾아가면 서울중국인교회로 가보라고 한다. 중국인들에게 ‘빠바 무스’(아빠 목사)라고 불리는 최황규 목사. 신학교 다닐 적에 장차 ‘교수 감’으로 주목을 받았던 그는, 지금 대림동 차이나타운 한 지하 교회에서 가난한 중국인들 뒤치다꺼리를 하며 하루를 보낸다. 그러나 그는 비전이 있다. 자유와 복음을 실은 황하의 물결이 중국 대륙으로 흘러넘쳐가는 내일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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