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 담긴 창조의 신비 놀라워 … 과학과 신앙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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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에 담긴 창조의 신비 놀라워 … 과학과 신앙의 조화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5.08.12 0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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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박사’에게 듣는 하나님의 손길
▲ 190여구 시신과 씨름하며 평생 코를 연구한 끝에 세계적인 ‘코박사’로 인정을 받고 있는 윤주헌 교수는 뒤늦게 받아들인 기독교 신앙을 통해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여정을 즐기며 많은 감사를 체험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선 코를 잘 관리해야할 것을 역설하는 그는 좋은 의사가 되는 일에 관심이 많다.

연세대 의대 이비인후과 윤주헌 교수

건강포털 사이트에서 코 질환 분야 베스트 닥터로 선정된 연세대학교 의대 이비인후과 윤주헌 교수는 평생 ‘코’를 붙잡고 살아왔다. 코 상피세포 배양에서 세계적 고수가 됐으며, 코로 시작하는 호흡기 영역에서 면역반응과 염증 조절과 관련해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았다.

의학에 여러 분야가 있고 그 분야를 전공한 이들마다 긍지가 있겠지만 유독 코를 연구한 윤 교수가 더욱 자기 전공을 자랑스러워하는 까닭이 있다. 창세기 2장 7절 말씀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코박사’ 윤 교수가 풀어놓는 코 이야기를 듣노라면 하나님의 창조에 담긴 섬세함과 신비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코가 건강해야 온몸이 건강해

“하나님께서 괜히 코를 얼굴 중앙에 놓으셨겠습니까? 코가 그 만큼 우리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거죠. 다른 것보다도, 코가 막혀 숨을 몇 분만 못 쉬면 죽잖아요. 그러면 어떤 분들은 입으로도 숨을 쉬지 않느냐고 하시는데 그게 바로 착각입니다. 입은 먹는 기관이죠, 숨은 코로 쉬어야 하고, 그래야 건강합니다.”

입으로 숨을 쉬면 모든 병에 노출되게 된다. 코로 들이쉰 공기가 목을 통과해 폐로 들어가기 전까지, 약 15cm 구간에서 신비한 일이 일어난다. 이곳을 지나가며 바깥 공기는 온도가 30도 이상 올라가게 되고 습도는 90도로 맞춰진다. 찬 공기, 건조한 공기가 그냥 폐로 들어가면 큰 지장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설계는 신비하다.

코 점막의 상피세포는 인체의 센서 역할을 한다. 공기 중에 있는 각종 바이러스, 세균, 먼지 등이 이 센서를 건드리면 인체에 경보가 울리고 핏속의 중성구가 문제의 장소로 몰려와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특히 코털은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고 이물질을 걸러주는 역할을 한다. 미관상 흉하다며 귀찮다는 듯이 코털을 짧게 자르거나 뽑는 건 자해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코털 하나도 심심해서 거기 심어놓은(?)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코로 숨 쉬는 게 건강에 매우 중요합니다. 이게 어려우면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몸 전체의 건강을 위해서도 좋습니다. 종종 감기 걸린 후에 냄새 맡는 기능을 상실한 환자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본인이 그걸 잘 못 깨닫습니다. 시각, 청각과 달리 비교가 잘 안되니까요. 그러나 후각에 문제가 생기면 유독가스나 유해물질을 못 느껴서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코는 여러 면에서 중요한 기관입니다. 하나님께서 코로 생명을 넣어주신 이유가 다 있는 것이죠.”

▲ 하나님께서 코로 생기를 넣어 인간을 창조하신 성경말씀을 윤 교수가 직접 일러스트레이터에게 부탁해서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절박한 상황에서 ‘받은 은혜’

이렇듯 그의 신앙과 전공은 서로 뗄 수 없는 의미가 있지만 처음엔 그걸 알 수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의 섭리였지만 말이다. 그의 가정은 3남매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 절에 등을 밝혀놓았을 정도로 불교 신앙을 따랐다. 교회에 대한 감정도 어렸을 때는 별로 안 좋았다.

“저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새벽에 일찍 일어나 공부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꼭 그 새벽에 교회에서 종을 울리고 시끄럽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교회에 대한 감정이 안좋았어요. 그런데 신기하죠. 어느 순간 보니까 우리 3남매 모두 다 교회 다니고 있더라고요.”

30대 중반에 처음 교회에 나가게 됐다. 이웃사촌인 홍익대학교 미대 교수가 윤 교수 부부를 교회로 인도했다. 낯선 풍경 속에서도 그의 귀에 들어온 말이 있었다. 무엇인가 “받아가라”는 것이었다. ‘처음 교회 나와서 뭔가 주려나 보다’, 하고 끝까지 기다렸지만 아무 것도 받을 수 없었다.

나중에서야, 뭘 받아가라는 말이 “은혜 받고 가시라”는 말인 줄 알게 됐다. 그만큼 초보신자였던 그가, 정말 ‘은혜를 받게’ 된 계기가 생겼다. 그건 절박한 상황에서였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됐는데요, 부모님 두 분만 남겨두고 가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하나님, 연수를 가 있는 동안 부모님 건강만 지켜주시면 제가 교회를 잘 다니겠습니다’라고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미국서 교회 다니며 공부 마치고 귀국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건강하게 지켜주셨습니다. 그때 신앙생활이 시작된 거죠.”

그처럼 과학적 사고방식이 몸에 배인 사람들은 성경책에 나오는 내용들을 자꾸 이해한 후에 믿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걸림돌이다. 그가 얻은 ‘해법’은 이것이다. 성경 말씀들을 이해보다는 순종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때가 되면 이해가 되는 시간이 찾아온다.

“우리 귀가 모든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듣는 소리의 영역대가 있어요. 우리가 못 듣는다고 없는 게 아닙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광선도 있지만 적외선이나 자외선은 보이지 안잖아요. 존재하지만 못 듣고 못 보는 게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보고 듣는 것으로만 판단하려고 합니다. 자꾸 따지고요. 그러면 신앙이 깊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신앙이 깊어지기 위해선 감사가 중요한 것 같아요. 성공 못했어도 감사함을 느끼는 것이 참된 신앙인이죠. 그런데 우린 항상 불만이 많잖아요.”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감사할 일들이 참 많다고 고백하는 윤 교수. 특히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이 이루어지고 내 힘만으로는 어려웠던 일들이 성취된 것을 볼 때가 있었다고 한다. 순간순간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기대 밖의 성과를 거둘 때도 있다. 그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느낀다.

▲ 학술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는 윤주헌 교수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하여

“미국에서 공부할 때에 저를 가르치던 교수가 굉장히 강퍅한 분이었어요. 독일계 미국인인데 굉장히 학생들을 힘들게 하는 분이었죠. 먼저 경험했던 동료들이 저보고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저는 그럴 일이 없었어요. 마침 제가 갔을 때에 막 전립선 암 수술을 끝낸 후였습니다. 그 덕분에 그분의 삶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제게 얼마나 잘해주는지요. 너무 감사했죠. 돌아보면 이런 일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교수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며, 가르치는 능력이 뛰어나 군의관 시절엔 자비를 들여 ‘직업군인의 건강’ 1천부를 찍어 나눠주고, 190여구 시신과 씨름한 끝에 저술한 ‘코임상해부학’은 전국 의대생과 의사들의 교과서로 쓰이지만, 정작 교회에선 가르치는 일이 어렵다. 그가 출석하는 온누리교회(도곡동)는 누군가 한 사람을 성경공부 시켜야 집사 직분을 주는데, 신앙을 가르친다는 건 그에겐 아직도 자신이 없는 일이다.

“제 신앙도 변변치 않은데 제가 누굴 가르치겠습니까? 또 직분이나 교권 때문에 한국교회에서 갈등이 많이 일어나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라도 그냥 평신도로 남아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생활 속에서 크리스천다운 삶을 사는 일은 그에게 소중하다. 지난 2014년 의대학장을 맡았을 때엔 과감히 연대 의대에서 학점을 없애는 개혁을 단행했다. 좋은 의사의 자격과 윤리는 성적순이 아니란 확신이 있었다. 실제로 미국에서도 상위 25개 의과대학에는 학점이 없다.

연세대 의대에 들어올 정도의 학생이면 이미 우수하고, 이젠 좋은 의사로서의 성품과 자질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아직도 등수 경쟁을 하는 ‘등수기계’로 머물러선 참된 의사가 가져야할 인성을 쌓을 기회가 없다. 의사라면 소외되고 약한 자의 마음까지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소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도 뒤늦게 철이 들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는 윤 교수의 고백에서,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연세대 의대가 찾아가려고 애쓰는 ‘좁은 길’이 보였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그 길은 바로 이 세상에 몸과 마음이 병든 이들을 찾아 ‘의사’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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