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연중의 문화칼럼] 스티그마, 그리스도의 흔적
상태바
[추연중의 문화칼럼] 스티그마, 그리스도의 흔적
  • 운영자
  • 승인 2015.01.15 15: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연중의 CCM프리즘 (15)

스티그마(stigma)는 고대 헬라 사회에서 노예나 죄수, 범죄자, 반란자 등 그들의 신체에 찍는 일종의 ‘낙인'(烙印)을 가리켰다. 이는 치욕이나 오명, 결점 등을 상징하는 단어로써 외면과 배척을 받는 부정적인 성향을 지닌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교회용어사전’을 보면 기독교적 관점에서 이 의미는 다르게 해석된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스티그마'의 복수 형태인 ‘스티그마타'(stigmata)를 ‘성흔'(聖痕)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한다. 성경에서도 갈라디아서 6장 17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자기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고 증언하는데 이때 ‘흔적’을 뜻하는 부분에 ‘스티그마’가 인용된다. 가장 치욕스럽고 수치스러운 단어가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의미가 변한 것이다.

필자는 매년 1월, 이 단어를 떠올리며 추억하는 한 친구가 있다. 그는 그리스도의 흔적을 따라 살기 원했고 치열한 삶 가운데 그 흔적을 남기고 예수님과 같은 나이인 33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유능한 의사였으며 음악 칼럼니스트였고 예배모임의 리더였다. 그는 평소에도 환우들의 병소뿐 아니라 마음 속 깊은 곳까지 돌보았고 의료파업으로 모두가 병원을 떠났을 때도 환자 우선이라는 소신에 따라 혼자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켰던 의사였다.  

그의 가방은 항상 책과 음반으로 가득했다. 좋은 책과 음반이라는 판단이 서면 사비를 털어 다량으로 구매해 그것이 필요하다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통해 회복과 치유를 경험하고 기로에 서 있다 살아나는 작은 기적을 체험하기도 했다. 그는 항상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 그대로를 내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의사였던 그는 군의관으로 늦은 나이에 군복무를 시작했다. 가끔 퇴근길에 필자가 근무하던 회사에 있는 북카페에 들러 함께 차를 마시고 기독교 문화의 동향이나 새로운 음반이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2005년 12월, 심한 감기에 걸렸다며 만나자던 약속을 미루게 됐는데 그때가 마지막 통화였다. 감기와 같은 증상으로 시작된 병은 유행성 출혈열로 밝혀졌다. 몇 주의 투병 끝에 친구는 본향으로 떠났다.

그가 남긴 흔적은 선명하고 진했다. 그의 미니홈피에는 수천 개의 애도의 글이 달렸고 추모의 열기는 점점 더 뜨거워졌다. 한 일간지에는 그에 대한 추모의 글이 실리도 했다. 사후에 그가 글로 남긴 ‘흔적’들을 모아 두 권의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당시 그리운 마음에 책을 구매했다가 한동안 펼칠 수 없었다. 보는 순간 내가 마주할 상황이 눈앞에 선했기 때문이다. 한참 후에 책을 들었을 때 우려했던 결과를 마주쳤다. 몇시간의 통곡 끝에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에게 주신 ‘흔적’을 따라 살았고 남은 이들의 가슴에 슬프지만 깊은 ‘흔적’을 남기고 갔다.

매년 1월 5일이 되면 9년 전 하늘의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 치열하게 남긴 그의 고백을 다시 되새기며 그가 살아 있다면 남겼을 흔적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그 청년 바보의사, ‘스티그마’ 안수현을 추모하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