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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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 승인 2003.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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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1일과 19일에 ꡒ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 기도회"로 수많은 기독교 교인들이 초 교파적으로 서울 시청 앞 광장에 모여 시국 기도회를 가졌다.

연초의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회개와 화해 그리고 희망을 갈망하는 하나의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의 함성을 쏘아 올렸다.

북한의 핵문제로 야기된 한반도의 위기 상황에도 강 건너 불 바라보듯 안일하기만한 국민 정서,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으로 인한 반미 감정 확산, 주한 미군 철수를 부르짖으며 벌어지는 군중들의 시위 현장 등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ꡒ한반도에 전쟁이 나도 개의치 않는다. 전쟁 나기 전에 외국 여행이나 한번 더 다녀오자ꡓ는 식으로 안보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

남남 갈등으로 이분화된 이때 기독교인들이 ꡒ주한 미군 철수에 반대한다ꡓ, ꡒ반미 감정을 부추기는 일은 중단하라", ꡒ북한은 핵 개발을 포기하고 NPT(핵 개발 확산 금지조약) 탈퇴를 철회하라ꡓ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애국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국가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를 판단할 줄 아는 식견을 말한다.

굳이 반미와 친미를 가르지 않더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사수해야 하는 것은 명명백백한 사실이다. 인간이 최대한으로 누릴 수 있는 삶의 자유 그리고 신앙의 자유란 자유 체제가 아니고는 엄두도 낼 수 없는 것들이다.

2000년 6. 15 남북공동 선언 이후 서울과 평양에서 만났던 이산 가족들의 상봉을 지켜보았는가?

반세기 동안 억압된 체제에 억눌려 지내느라 이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린 그들의 자화상을. 희노애락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획일적인 말만 늘어놓던 그들을. 전쟁으로 천만 이산 가족이 반세기가 넘도록 부모 형제의 얼굴도 잊은 채 편지 한 통 마음대로 주고받지 못하는 비통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하려는가?

50년 간의 한․미 동맹관계로 남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완전히 보장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98년 이후 노근리 사건과 매향리 사격장 논란, 독극물 방류 사건, 용산기지 아파트 건설 문제와 여중생 사망 사건 등을 계기로 반미 감정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ꡒ현재 한․미 관계는 최악의 상황" 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것은 지난 50년이래 냉전시대에 맺은 한․미 혈맹 관계가 탈 냉전시대로 접어들면서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감정을 억제하고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한 때다. 냉전시대와는 달리 한․미가 대등한 관계를 추구하고 불평등을 해소하며 서로가 존중하는 관계를 모색하되 반미 감정을 부추기는 일을 삼가야 한다. 미국 역시 강대국이 갖는 우월주의 노선의 오만함에서 벗어날 때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미 감정에서 비껴갈 수가 있다.

이제 우리 기독교인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이다.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된 지 1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국력을 신장시켜 주신 것을 감사한다.

가정과 개인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교권을 분열시키고 서로 이간질하며 사리사욕만 채우고 성경 말씀대로 살지 못했던 죄를 회개한다.

남남 갈등을 극복하지 못해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어도 방관자가 된 채 일신의 영달만 꾀했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리고 권력과 황금만능이라는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우리 자녀들을 악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것을 통회한다.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계속 기도 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에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애쓰는 국민이 더 많기 때문이다.

ꡒ주한 미군 철수 반대"나 ꡒ반미감정"을 외치는 물결에 휩쓸리기보다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무엇인지 식별할 줄 알아야한다.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기독교인들의 함성이 온 국민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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