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성장 신학 버리고 유기적 공동체인 ‘작은 교회’ 추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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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성장 신학 버리고 유기적 공동체인 ‘작은 교회’ 추구해야
  • 김동근 기자
  • 승인 2013.04.16 2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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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성장주의의 시대, 한국 교회를 말하다

‘안나가’ 거꾸로 하면 ‘가나안’, 기성교회 거부하는 성도들 말해
미래교회는 마을중심, 봉사중심의 작지만 영향력있는 공동체돼야

성장지상주의를 추구했던 한국 교회는 이제 내리막을 걷고 있다. 사람들은 교회가 전하는 복음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지난 11일 명동 청어람에서는 한국 교회 성장주의를 비판하며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신앙에 대해 이야기한 책의 저자 4명이 모여 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의 진영의 저자들은 오로지 한국 교회를 위한 실천적 대안을 제시했다. <편집자 주>

한국교회 교회론은 ‘성장주의’
한국개신교의 ‘탈성장 시대’는 외부 환경의 변화 이전에 개신교의 악화된 내부 환경이 정점에 도달하면서 자초한 성격이 강하다. 게다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잇는 노회나 총회, 교계연합기구 등 제도나 구조가 정산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해결가능성도 희박하다. 이런 조건에서 ‘교회 성장’이란, 상당한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유력한 집단에서만 가능한 사건이 되거나, 기존의 목회적 관행과 거리를 두고 파격적으로 틈새나 벤쳐를 시도하는 가운데 성공 사례가 나오는 이례적인 경우 외에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 된다.

자주 경험하는 것이지만, 한국 개신교에는 ‘성장주의’외에는 교회론이 없다. 큰 교회는 성공한 교회고, 성장하지 않는 교회는 나쁜 교회다. 우리는 교회의 좋고 나쁨,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다른 기준을 갖고 있지 못하다. 성장으로 귀결되는 모든 것은 정당화시킬 준비가 되어있고, 성장을 일으키지 못하는 어떤 것도 무능한 것으로 치부되는 생각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한국 교회에는 ‘공룡이 되어서 생긴 문제’와 ‘공룡이 되지 못해 생긴 문제’만 있는 셈이다.

우리가 교회론을 말할 때는 ‘양적 평가’와 ‘질적 평가’를 뒤섞거나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면, 조직이 커지면서 사람들 간의 교류와 소통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이때 사람들은 질적 차원의 체감적 만족이 낮아지는 것을 경험하지만, 그 문제는 엄밀히 말하면 양적 측면을 개선함으로써 해소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설교 내용이 신학적으로 부실하거나 목회자가 신앙 윤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질적인 측면에서 다룰 문제다. 이 둘을 혼동하거나 뒤섞는 범주 오류는 교회의 존재가치를 영구적으로 손상시키고, 문제의 원인을 오도하게 한다.

교회의 존재양상을 전형적인 구조와 내용으로 구분해서 본다면 고체, 액체, 기체로 비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체형 대안은 대다수의 교회들이 처해있는 현실로, 주어진 구조나 틀은 변화시키는 제도개혁보다는 그 틀을 운영하는 주체를 바꾸는 방식을 말한다.

이 대안의 핵심은 세대교체 등의 인적 청산이 될 것이다. 액체형 대안은 제도적 변화를 과감하게 시도하는 것이다. 대체로 인적 변화와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새 술은 새 부대에”란 구호가 설득력있게 사용된다. 기체형 대안은 아마도 가장 해체적인 방식이 될 것인데, 교회 경험이 조직이나 구조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의 ‘사건’으로 경험되는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바라기는 한국 교회 안에 고체형 대안이 7, 액체형이 2, 기체형이 1 정도의 비율로 등장해주면 좋겠다.

양희송 대표(청어람아카데미)

작은 교회, 개신교 신앙 위기의 대안
한국의 개신교 신자 비율은 인구대비 18.3%(2005년 통계. 8,616,438명)인데, 그중 대형 교회의 수는 거의 1천 개에 육박한다. 한편 1만 명 이상의 교회를 초대형 교회라고 부르는데, 지난해 churchrelevence.com이 발표한 미국 초대형 교회 리스트에 따르면 70개 정도의 교회가 여기에 속하며, 이중 2만 명 이상의 교회는 7개다. 그런데 교회성장연구소 홍영기 소장이 저술한 ‘한국 초대형 교회와 카리스마 리더십’은 13개 교회를 초대형 교회로 분류하고 있고, 이 책에 준해서 ‘복음과 상황’이 추산한 초대형 교회는 14개다. 이 중 성인출석교인 2만 명 이상의 교회는 7~8개나 된다. 요컨대 한국에서 교회 대형화 현상은 미국보다 더 뚜렷하다.

한국사회는 1990년대를 기점으로 저성장 시대에 돌입했고, 1995년 이후에는 마이너스 성장에 직면하게 됐다. 과거 대성장 시대, 사회와 교회간의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호 연동성이 높던 시대에 교회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심지어 청년 계층에서는 선호도가 높은 종교로 개신교가 꼽혔었다. 그때에도 개신교는 일방주의와 배타주의적 성향이 강한 ‘무례한 종교’였지만, 그것에 대한 사회적 저항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대성장 시대 개신교의 성장주의 담론이 이농자 등 사회 주변계층을 대대적으로 포용했고 능동적인 사회적 생산자층으로 재무장화함으로써 사회의 긍정적 시선이 많았다.

탈성장주의는 두 가지 층위를 모두 포함하는 용어다. 첫째는 외적 변화의 층위고, 둘째는 내적 요청의 층위다. 전자에는 성장지상주의의 청산을 도모하는 탈성장주의 기획은 교회뿐 아니라 전 지구적인 시대의 요청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 함축되어 있다. 후자는 한국 교회의 성장 지상주의가 너무 지나친 탓에 어떠한 대안적 기획도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대형 교회 중심적인 내적 제도의 청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작은 교회는 규모가 작고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형 교회가 가질 수 없는 요소를 가질 수 있다. 구체적으로 작은 교회는 더 소통적이며 덜 배타적이다. 또한 작은 교회는 자기 소유의 공간을 가질 수 없기에 목사의 공간과 평신도 공간의 이분화를 특징으로 하는 전형적인 교회 공간을 실현시킬 수 없다. 때문에 목사와 평신도는 소통적이며 친화적 성격이 더 강하다는 것을 뜻한다.

교단들을 가로지르는 ‘작은 교회간 연합’이 요청된다. 이때 권위주의적 모델을 지향하는 조합 형식의 조직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신학적, 신앙적으로 작은 교회적 공공신학의 형성을 위한 활동이 요청된다. 이것은 신학연구자, 목회자들, 교인들이 함께 하는 다각도의 소통공간을 필요로 한다. 이런 노력들을 통해 작은 교회는 오늘 우리사회의 공공성에 기여하는 개신교적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개신교 신앙의 위기에 대한 탈성장주의적 대안이 될수 있을 것이다.

김진호 연구실장(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교회 양극화의 극복 방안
요즘에는 1년에 3천여 개 교회가 문을 닫는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교회의 양적 성장은 더욱 어려운 지경이 되고 있다. 특히 교인들이 큰 교회로 쏠리는 현상 때문에 개척 교회나 작은 교회의 경우 훨씬 더 어려운 형편에 처해 있다. 크리스천리더십연구소의 자료에서는 80-90%가 성인 교인 수 150명 이하인 소형교회라고 하고, 이중 대부분이 30-50명 규모의 교회라고 해 큰 교회로 교인들이 몰리고 작은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더욱 줄어드는 이른바 교회 간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서울, 경기 등 수도권 지역의 목회자들이 양극화에 대해 다른 지역에 비해 더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는데, 이것은 수도권에 많은 교회가 몰려있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양극화 현상의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는 기존 교인이 교회를 옮기는 이른바 ‘수평 이동’이다.

최근 한국 교회가 신뢰를 상실하여 전도하기가 더욱 어려워진 현실에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도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을 가리켜서 ‘가나안 성도’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가나안 성도라는 말은 기독교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만 현재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찾아 다녔듯이 새로운 교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가나안이라는 말을 거꾸로 읽으면 ‘안나가’인 것과 같이 교회를 나가지 않는 또는 의도적 기성교회를 거부하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러한 가나안 성도들을 통해서 파악하는 종교적 특성은 권위에 대한 복종보다는 자기식의 신앙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현대인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종교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입장에서 취사선택을 해 자기 자신의 종교를 만든다는 것이다. 가나안 성도들에게서도 이러한 경향이 포착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기독교에 대한 관념이 기존 권위와 충돌할 때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권위에 복종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기독교를 스스로 구성하는 것이다.

교회는 스스로 공동체임을 표방하지만 그 공동체의 성격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뤄가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개인을 무시하는 공동체는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라고 할 수 없다.

작은 교회는 교회의 공공성을 회복하는데 더 적합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작은 교회가 갖는 장점은 첫째로, 교회의 공동체성의 구현에서 유리하다. 둘째로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역동적인 참여를 할 수 있다. 셋째로 작은 교회는 아래부터의 리더십을 통해 쌍방향 의사소통 구조의 구현이 가능한 구조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의 근접성이다. 대부분 작은 교회는 지역 사회 안에 그것도 주로 주택가 안에 존재하고 있다.

작은 교회 정신이 몇몇 교회의 작은 몸부림으로 그쳐선 안된다 양극화라는 교회 쏠림현상으로 큰 교회만 성장하고 작은 교회는 고사 상태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다가 공동체성을 상실한 교회에 실망하여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는 한국 교계에서 새로운 대안 문화가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종교사회학)

‘생명망 운동’이 한국교회 살릴 것
건강한 작은 교회란 지역생명망을 짜는 작은 교회로서 더 이상 성장형 대형 교회를 닮는 작은 교회가 아니라 새로운 교회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작은 교회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교회의 생태계를 만드는 건강한 작은 교회란 지역사회의 복지 생태계, 학습생태계 문화 생태계를 형성하며 마을만들기,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생명 사회경제를 담지만 공공신학을 작은 교회의 신학으로 삼는 교회여야 할 것이다.

미래교회는 교회 중심적이 아니라 마을 중심적, 성장 중심이 아니라 봉사 중심으로 작지만 영향력이 있는 교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핵심적인 것은 이제 교회와 목사는 교인과 교회 대상만의 교회와 목사가 아니라 지역사회, 마을 단위의 마을의 교회와 목사, 지역사회에 선한 관계와 영향력을 가진 교회와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와 목사가 지역의 교회와 목사, 마을의 교회와 목사로 변화돼 지역 에큐메니즘에 기초해 지역과 마을의 생명망을 짜고 생명을 살리는 생명 교회와 생명망 목회를 시작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생태계에 새롭게 적응하는 교회의 척 시작과 사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을교회를 추구하는 생명망 목회, 그 몇 가지 예를 들면 첫재, 마을과 지역사회를 강조한 생명목회로 생명망을 짜는 목회다. 이 생명망 목회의 첫 번째 단계는 지역사회를 섬기는 복지선교로 출발한다. 둘째, 지역과 교회를 잇는 학습생태계를 구성한다. 교회학교와 마을도서관과 지역아동센터를 잇는 학습생태계 등이다. 셋째, 교회 안의 신앙적 생태계와 교회 밖 마을을 지역심방의 개념으로 묶는 영적 돌봄망이다. 성서교육과 함께 인문학교육과 시민교육을 함께 실시한다. 넷째, 기도훈련과 심방제도는 궁극적으로 교인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봄에는 교인심방, 가을에는 지역을 위한 기도와 지역심방을 연결해 지역과 마을을 심방한다. 다섯째, 지역사회를 위해 기도하는 지역 심방팀과 지역 기도망짜기를 연결해 지역선교를 실시한다.

이제 한국 교회는 자기 몸집의 성장에 몰두하기보다는 이러한 지역사회와 마을의 대안적 생명망 짜기에 적극 참여함으로서 전국의 마을과 마을의 교회마다 지역의 생명을 살리는 지역의 생명망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길 바란다.

이원돈 목사(부천 새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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